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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청 Oct 28. 2024

세상에서 포기하기 가장 쉬운 것

내가 들어있는 구덩이

  많은 상황과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가장 먼저 포기했다. 무엇보다 쉬운 일이었다. 내가 타인보다 심성이 곱고 착해서라거나 마음이 여려서는 아니었다. 다만 나를 먼저 위해줄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을 뿐이다.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조각이 내내 마음에 맺혀있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천지 분간도 못하던 시절, 첫째로 태어나 알아서 자라 손이 좀 덜 가길 바라던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한 마디.


  “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 


  도덕성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던 때부터 그 말은 왜인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듯 내 물렁한 마음을 쪼아대었다. 자꾸자꾸 쪼아 들어가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안착해 둥지를 틀었다.     


  자라온 환경 탓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영향은 조금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나를 지킬 줄 모르고 자라왔다. 이런 행동을 하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굳이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은데. 그건 보기에 좋지 않고 아주 나쁜 거잖아.     


  오직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남의 것을 취하거나 탐하는 행동은 진심으로 보기에 안 좋은 이기적인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하고 존중하는 행동마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나는 결국 나를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무척 쉬웠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나를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운동하지 않았으며 나를 위해 화장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먹은 것이 아닐 때가 많았고 나를 위해 잠들지 못한 때도 많았으며 내가 한 연애의 90%는 나를 위한 연애가 아니었다. 나를 버려가며 남의 인정과 칭찬, 그리고 사랑에 목말라했다. 다 자라 둘러보니 나처럼 커온 사람들은 세상에 아주아주 많았다. 그들은 대체로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마음속 얼음덩어리 안에 자신을 가두고 또 다른 모습의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듯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버려두고 방치해 두었던 나를 주워 들고 먼지 툭툭 털어 소중하게 걸치고 싶었다.     


  아주 작은 일을 거절하고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부터 시작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내내 기분이 더러웠다. 포기한 나를 되찾는 데에는 이렇게 거지 같은 기분이 필수적이다. 남이 아닌 내가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일을 거절할 수가 있어? 네 시간쯤은 쉽게 포기할 수 있잖아. 조금 더 노력하면 해줄 수 있는 일인데 너 하나 붙잡겠다고 거절해?     


  그게 말이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달라졌어. 예전엔 남의 칭찬과 인정을 원했다면 지금의 나는 나를 원해. 불안정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나. 한참 동안 먼지 쌓인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나 말이야. 나는 나를 되찾고 싶어.     

  이렇게 내 안의 두 자아가 정신없이 말다툼을 하는 동안 진실로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긴 시간 포기했던 나를 찾아오기 위해 느껴야 하는 필수적인 감정임은 틀림없었다. 이제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아. 가장 먼저 나를 선택할 거야. 구덩이에 굴러들어가 나올 생각조차 않던 내 손을 잡고 빛이 이쪽에 있으니 한 발짝 올라와 보라고 말해줄 거야. 빠져나오는 동안 무릎도 까지고 발목도 시큰거리겠지. 그런데 해보고 싶어. 


  나는 나를 구덩이에서 꺼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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