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청 Oct 24. 2024

과거로 돌아가 멀리멀리 도망쳐

살아내던지, 도망치던지

  원래 후회 같은 걸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때로 되돌아가 같은 상황에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영 생기지 않는다. 베스트는 항상 지금이었다. 그렇다고 현자와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해 봤자 무얼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고 거기에 쏟는 시간과 감정이 아깝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꾸만 내 안의 시계를 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 몸을 두고 나는 때때로 대학생 시절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퉁퉁한 몸에 교복을 두르고 안경을 쓴 채로 공부를 하던 때, 또는 서툰 화장을 하고 술을 퍼마시던 그때. 물론 시계를 어디로 돌려놓아도 마음에 드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베스트는 지금이지만 자꾸 마음은 시계를 돌리고 또 돌렸다.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끝없이 돌렸다. 백개의 채널을 돌려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 TV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과거는 아무리 돌려보아도 흡족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 ‘후회스러웠다’!     


  그렇다면 무엇이 후회가 되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기로 하자. 

  

  크게 여섯 가지 정도의 카테고리가 떠올랐다. 

  

1. 잠자는 시간을 생각 없이 줄인 것

2. 마음을 넓게 쓰지 못한 것

3. 예민하게 굴었던 것

4.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것

5. 적극적으로 경제생활에 참여하지 않은 것

6. 그리고 시간을 낭비한 것. 


  가장 크게 후회되는 점은 마지막에 서술한 ‘시간 낭비’와 관련된 것이다. 역시 청춘에게 주어진 젊음은 너무나 아깝고 사치스럽다. 오늘 펑펑 써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충전이 되는 그날 치의 젊음.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젊음의 시간을 급류처럼 흘려보냈다. 새삼 떠내려간 시간들이 아깝고 후회스럽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없었다 한들 후회라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시계를 돌려 장면 장면으로 돌아가 새 삶을 살든 어쩌든 과거의 한 때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 나의 지난 장면들을 단 한순간도 그리워한 적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가 그립다. 이것을 인정하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과연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아닐 것이다. 아마 똑같이 예민하게 굴고 시간을 펑펑 써댈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 나에게 다시 소리치고 싶다. 너의 그곳, 과거에서 차라리 멀리멀리 도망쳐. 너는 어디에서도 꿈꾸던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을 거야. 그립고 후회되는 지난날들이 결국 너를 만들었고 그것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지금의 너는 무의미하거든. 베스트인 내가 되기 위해 나는 그때의 삶을 똑같이 살아내야 한다. 똑같이 살아내던지, 도망쳐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되던지. 


  그렇게 나는 현재에서 과거를 후회하고, 과거로 돌아가도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져 안달이 난 이상한 사람이 된다.

이전 03화 어차피 매일 죽어가고 있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