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용기
나는 내가 꽤 끈기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지내왔다.
‘쟤는 뭐 하나 시작했다 하면 끝을 봐’
‘한 번 하면 끝까지 한다니까’
류의 말을 듣고 자란 걸 보면 끈기가 없진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걸 ‘끈기 있다’라고 봐야 하는 건지 불분명해진다.
마흔 줄이 다 되어서야 내 끈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일단 나는 큰 틀에서 진득한 면이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그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일기를 꾸준히 써보겠어!’라는 결심을 했다고 하자.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남들보다 정말 꾸준히 일기를 쓰기는 쓴다. 그런데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하루 이렇게 써보고는 ‘아냐, 이건 일기라고 할 수가 없어’ 하고 때려치운다. 다음 날 포기했다가 그다음 날이 되면 다시 펜을 잡고 새로운 일기장에 또다시 일기를 양껏 적어본다. 그리곤 뒤이어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각종 서적과 인터넷을 뒤지며 쓰던 일기를 갑자기 접는다. 이런 식으로 나는 끊이지 않고 일기를 '쓰기는 쓴다'. 이렇게도 썼다가 저렇게도 썼다가 포기했다가 난리를 친다.
좋게 말하자면 실행력이 우수하다. ‘날로 새로워라’, 매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호기로운 기개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용기와 기개의 뒷면은 끈기가 없다는 것이 된다.
간혹 ‘그래도 하는 게 어디냐’라는 부러움 섞인 말들이 들리지만 정작 당사자인 내 속은 미어터진다. 어제 시도했던 방법이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좋아, 이대로 한 달을 지속해 보자. 이게 가능하면 3개월, 1년 쭉쭉 가보는 거야. 그럼 1년 뒤의 나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있겠지? 이미 상상 속의 나는 성인군자가 되어있다. 하지만 다음 날 눈 뜨고 일어나면 어제 내가 했던 시도들은 세상 바보 천치가 했던 것인 양 발 끝으로 톡톡 밀며 ‘훠이 훠이’ 하게 된다. 어떻게 저걸 해놓고 다른 내가 되리라 기대했던 거지? 다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승냥이처럼 어슬렁거리며 다른 방법론을 찾는다. 이런 쪽으론 또 끈기 있게 들이대는 것이다.
기준이 높은 것일 수도, 변덕이 심한 것일 수도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겉에서 보면 끈기 있어 보이지만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땐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나를 끊임없이 걷게 만든다. 나는 끈기가 없고 금방금방 포기해. 오늘 하던 것을 내일 때려치우기도 해. 그러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도 있어. 그렇게 시작에 시작을 덧바른다. 시작으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두터워졌다. 겨울 솜이불처럼 포근해진다. 끈기의 열기가 등을 떠밀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시작이다!
호호, 당신은 끈기가 없어서 끊임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