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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청 Nov 11. 2024

욕망의 비눗방울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때는 내 이름으로 된 책 1권만 쓰면 인생 다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이름을 남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름 석 자가 종이에 인쇄되어 최소 백부 이상은 찍힐 테니 그 정도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 안일하고 단순한 생각이었다.


  책만 내면, 그렇게만 된다면 돈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올 줄 알았다.

  책만 내면, 사람들이 줄 서서 사줄 줄 알았다.

  책만 내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줄 알았다.

  책만 내면, 나는 전업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만 내면... 사춘기 중학생도 이것보다는 더 발전적으로 사고할 것 같다.     


  이런 순진 멍청한 내 생각의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 간파당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내게 물었다.


  “그래서요? 책을 내고 나면요? 그다음엔 뭐 하시게요?”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인륜지대사인 결혼마저도 식장 입장까지만 생각하고 식을 올렸던 나는 책 출간 역시 ‘책 냈다!’에서 사고가 끊겨버렸다. 그러게. 나는 내 이름이 쓰인 책을 내서 뭐 하자는 걸까. 그때 깨달았다. 책 출간에 대한 내 생각은 모래로 이루어진 성이었다는 것을. 언제든 와그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논리도 없고 환상만으로 가득한 책에 대한 욕망. 아니, 모래성인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저 비눗방울이 올망졸망 뭉쳐있는 모양새였다. 후 불면 날아갈 욕망 덩어리.     


  그렇다고 책을 내고 싶어 꾸준히 글 쓰는 연습을 했는가?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었다. 책을 내면 유명해질 줄 알았고, 그 ‘명예’라는 열매만 쏙 따서 받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얄밉다. 그렇게 욕망의 비눗방울 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톡! 톡! 터져가며 미세하게 크기가 줄어들어갔다.     


  몇 년 전, 책을 출간한 두 분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분들은 아주아주 행복해 보였다.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냐는 물음만을 기다려 온 사람들처럼 툭 치면 수많은 대답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보여 입술이 달그락거렸고 무언가에 취해있는 듯 발그레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분들에게서 나의 비눗방울을 보았다. 기쁘고 초조해 보이는 탐스러운 비눗방울. 조만간 하나씩 터질 것이 뻔한 비눗방울. 그것들이 모두 터지고 나면 예전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땅바닥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두 분의 책은 빠르게 서점 매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들었다.

  

  매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유명 작가의 책, 또는 무슨무슨 수상작, 아니면 출간된 지도 모르고 묻히는 책... 출판사에서도 내 책만을 중점적으로 홍보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 책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나다. 내 책이 유용하고 재미있으리란 건 내 사정이다. 비눗방울들은 모두 터지고 사라져 지표면에 드디어 발바닥이 닿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써보고 싶어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손 끝에 달린 글주머니에서 글들을 짜내어 써본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어디서 내줄지도 모른다. 심지어 누가 읽어줄지도 모르는 나의 책. 한 권 낸다 해도 내 삶은 달라질 것 없이 매일의 밥 짓기와 설거지가 같은 시간에 정해진 양으로 수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야 발바닥이 닿은 지표면에 작은 모래알들을 하나씩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자갈들과 섞어 빈 틈 없이 쌓아 올려 단단한 마음으로 만들 거야. 내 욕망의 비눗방울들을 간신히 터트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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