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름 일기를 토대로 식사 전략 짜기
배부름 일기를 토대로 내 식습관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고쳐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 번에 바꾸려 했다간 큰 화를 입게 되리라! 여태껏 그래왔지 않은가. 이것은 없애고 저것은 새로 추가하는 동시에 그것을 바꾸는, ‘공사가 다 망하는’ 전략. 살을 빼야지, 다짐할 때마다 의지만 앞선 채로 많은 것을 바꾸려다 며칠 만에 고꾸라졌다. 이제는 다이어트할 기력도 없다. 딱 세 가지만 바꿔보자. 우선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식습관을 찾았다.
-아침을 거른다.
-점심을 급하게 먹다가 과식한다.
-야식을 먹다 구토하면 위의 두 가지가 최소 이틀 동안 반복된다.
종이에 적으며 확인하니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아니 식이장애가 나아질 수 없는 생활패턴이라는 게 훤히 보였다. 이 세 가지를 잡으면 식이장애 증상도 그럭저럭 완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결코 쉽지 않다. 늘 도중에 실패했으니까. 그런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까. 아침을 거르면 미처 하루치 칼로리를 다 채우지 못해 결국 야식으로 터진다. 이미 터진 입은 폭식으로 이어져 결국 토해내고 다음 날 아침을 맞는다. 입맛이 없어 전날처럼 거르는 아침. 그리고 그날 밤은 또다시 야식으로 이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모르겠다. 뭐라도 해보면 되겠지. 일단 지킬 수 있는, 최대한 간단한 식사 원칙을 세웠다.
1. 아침에 먹을 간단한 메뉴를 미리 준비하자.
2. 점심 식사는 한입에 30번씩 씹어 삼키자.
3. 저녁 식사를 빼놓지 않고 먹는다. 그래도 야식이 먹고 싶거든 먹자.
아침은 늘 바빴다.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이 아닌, 가족들이 먹을 식사를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한식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남편, 입이 까다로운 편식쟁이 둘째, 아침부터 고기를 원하는 첫째 덕분에 아침밥을 차리다 보면 정작 준비한 나는 금세 질려버린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입맛은 사라지고 기운이 빠진다. 이때를 넘기지 말고 꼭 챙겨야 생활의 리듬이 잡힐 것이다. 요리하느라 이미 지쳐버렸으니 최대한 간단한 것을 미리 준비해 놓자. 무첨가 두유와 삶은 계란, 그리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블록 즉석국을 구입했다. 과일과 생야채를 함께 챙겨 먹으면 좋겠지만 그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맛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시간엔 손이 덜 가는 음식으로 영양을 먼저 채워야 좋다.
직장을 그만둔 터라 점심은 혼자 차려 먹는다. 예전엔 학교 급식실에서 때맞춰 차려져 나오는 따끈한 밥과 반찬을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역시 남이 만들어 준 밥이란! 그렇지만 학급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늘 밥을 마시듯 식도로 쏟아부었다. 요즘 챙겨 먹는 혼자만의 점심은 급식에 비해 볼품없다. 그래도. 일단 천천히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천천히 먹어야 한다, 한 끼에 최소 20분은 넉넉히 잡고 먹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필수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빠른 식사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겐, 게다가 다이어트가 아니라 식이장애를 고쳐야 하는 상황에선 굳이 타이머까지 맞춰가며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또 하나의 굴레이자 강박이 될 것이다. 단, 한 숟가락에 30번 정도는 꼭 씹어 삼키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빨리 먹는지 파악하려 평소대로 먹었더니 세상에, 한입에 열 번을 씹기도 전에 꿀꺽 삼키더라. 밥을 정말 물처럼 마셔왔구나. 그러니 먹고 나서도 뭔가 입가심할게 자꾸 당기고 부족한 느낌이 났지. 30번씩 씹어도 총 식사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는다. 30번 씹는다고 입안의 음식물이 죽처럼 되진 않았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내가 무얼 먹는지 제대로 인지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다 먹고 난 뒤, ‘어, 내가 뭘 먹었더라?’ 또는 ‘벌써 다 먹었어?’하는 일은 없었다.
세 번째 원칙은 내가 정하면서도 갸우뚱했다. 야식은 당연한 금기사항 아닌가? 이것은 다이어트 최대의 적. 당연히 참아야 하고 먹어선 안 되는 그 무엇. 지금부터 흰 곰을 떠올리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머릿속에 흰 곰 한 마리가 들어앉게 되는 것처럼 야식은 멀리 할수록 자꾸만 생각난다. 눌린 식욕은 결국 시간과 상관없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고... 그게 내게는 야식이었다. 참고 참다가 먹어서 나를 혐오하는 지경에 닿을 거라면 차라리 허용해 버리자. 먹고 싶을 땐 다 이유가 있겠지. 단, 저녁 식사를 거르지는 않기로 했다. 저녁 6시 이전에 먹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규칙도 지워버리고 7시든 8시든 식사가 준비되는 시간이면 즐겁게 먹는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결심씩이나 할 정도로 힘겨웠다. 평범하게 밥에 국, 그리고 반찬을 먹고 나서도 나중에 허기가 지면 그땐 정말 야식을 먹어야지. 결심을 하고 먹는 야식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벌써 궁금해진다.
이 세 가지 당연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규칙은 포스트잇에 적어서 내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 두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찾아드는 걱정. 이렇게 먹다가 살이 더 찌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안 먹어도 쪘잖아! 이 지경이 됐는데도 살이 찌네, 빠지네 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