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인분 찾기 연습
산신령이 뿅 하고 나타나 ‘너는 이만큼이 1인분이니라’ 하고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마흔 넘게 살았으면서도 여태 나의 ‘1인분’을 모르겠다. 얼마큼 먹어야 내 몸에 이롭고, 활기를 돌게 하는 적정량인지 알 수가 없다. 식당에서 나오는 공깃밥 한 개 분량으로 정하면 되려나. 아니 그런데 그것마저 식당마다 다르잖아?
어렸을 땐 음식을 먹으며 양이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많이 먹으면 배부르고, 맛있으면 더 먹고 싶었다. 부족한 듯 먹으면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허기를 느꼈다. 그러니까.... 평범한 식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먹는 ‘양’이 문제가 된 것은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1살 때, ‘통통하다’, ‘동생 거 네가 다 뺏어 먹었냐’라는 외부의 압박이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구나.’
그 뒤, 다이어트를 위해 내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저녁을 안 먹는 것이었다. 내 몸에 계산기를 들이댔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를 건너뛰면 그만큼 들어가는 칼로리가 적어지니 살이 빠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 물론 거기에 따른 지나친 허기, 늘 있던 끼니가 사라졌다는 박탈감, 억눌린 식욕이 추후 미치는 영향은 알리가 없었다. 기다란 홈키파 캔으로 종아리를 오르락내리락 문지르며 곧 살이 빠지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을 뿐이다.
늘 세끼를 꼬박 챙겨 먹던 성장기 어린이가 한 끼를 굶는다. 지난밤, 심한 허기로 앞 구르기 뒤구르기 하며 먹고 싶은 음식들을 상상했었다. 배고파. 너무 배고픈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얼른 냉장고를 뒤져보고 싶은데.... 그러나 견뎌낸 보람이 있었다. 정말 다음 날 아침,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아픈 줄 아셨고, 나 역시 뭔가 가녀려진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오, 이게 되는구나? 몸이 받기 시작한 타격은 생각지 못했다. 물론 어린이에게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널렸고, 저녁을 굶는 행위는 곧 중단되었다. 나는 한때 잠시 다이어트의 꿀맛을 본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른이 되자 내 몸은 철저히 내가 책임져야 했다. 대학교엔 날씬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무리 지어 다녔다. 그 속에서 헐렁한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있던 나는 청초한 꽃다발을 감싸는 포장지의 역할이었다. 살을 빼면 그 친구들처럼 나도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싶다, 날씬해져보고 싶다는 욕망이 폐부를 찔렀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이어트는 그 뒤로 십수 년 이어졌다. 글로 풀어내는 것마저 지겹다. 여자들의 그렇고 그런 흔한 다이어트 생활이다.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량은 늘렸다. 헬스와 요가도 했으며 가끔 과식을 할 때면 미친 듯이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뛰었다. 핸드폰 바탕화면엔 늘씬한 비키니의 여자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길고 긴 다이어트 이야기는 이 몇 문장으로 갈음하겠다. 어차피 살 쭉 빼고 다시 요요 처맞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일이며 나조차도 지긋지긋해서 쓰고 싶지 않다.
그러는 동안 ‘먹는 양’에 대한 기준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이 승자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더라도 나는 속으로 바쁘게 계산했다. 이만큼만 먹으면 얘네들보다 적게 먹는 거야. 나는 몸을 관리하고 있으니까. 칼로리를 최대한 줄이는 게 좋은 거야. 그게 최고지. 술자리에 가면 술인 척 맹물을 마셨고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에도 속이 안 좋다며 자리를 피했다. 저녁 대신에 단백질바를 씹었고 녹차를 한 바가지씩 마셨다. 몸에 좋은 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살이 빠지면 자존감이 올라갔다. 물론 식이장애는 어두운 뒷면에 부지런히 새겨지고 있었다.
식이장애 회복을 위해서 나의 1인분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폭식 후 구토가 일상이 된 사람들은 기준량보다 일부러 적게 먹으면 해소되지 못한 식욕이 쌓이게 된다. 그렇다고 참지 못해 많이 먹으면 망했다는 생각, 다시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 나를 처벌하고 싶다는 생각에 토해낸다. 긴 시간 앓은 뒤론 소화가 힘들어 토해낼 때가 더 많았다. 도무지 얼마를 먹어야 배가 적당히 부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양을 알 수만 있다면 식이장애도 수월히 치료될 것 같은데.
나의 1인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내가 먹는 양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를 먹을 때쯤 적당한 포만감이 드는지, 먹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무엇보다 ‘마지막 한 숟가락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게 중요했다.
-이제 한 입만 더 먹으면 딱 좋게 배부르겠구나.
-더 이상 먹으면 불편해질 것 같다.
-여기까지 먹고 식사를 마치자.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배부름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식사 일기와는 결이 다르다. 무엇을 먹었는지 끼니마다 쓰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길고 긴 다이어트 중 내내 해오던 일이었다.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몸에 알맞은 음식량이었다. 일단 쓰다가 그만둘 게 뻔한 변덕 심한 나를 위해 아주 간단하게 기록해 보기로 했다. 종이에 1부터 5까지의 척도를 그리고 여기에 식사 때마다 딱 두 개만 적었다. 식사 전의 허기 상태와 식사 후의 포만감 상태.
-1: 지나친 배고픔, 배고픈 지 오래되어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상태
-2: 꼬르륵 거리는 정상적인 배고픔, 간식보다 식사가 생각나는 허기진 상태
-3: 원초적인 배부름. 허기가 간신히 가셨고 조금 더 먹을 수 있는 상태
-4: 딱 좋은 배부름. 더 먹을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은 상태
-5: 과식, 명치가 답답해지고 금세 토하러 나가고 싶어지는 상태
1단계는 한 끼를 건너뛰고 다음 끼니가 될 때쯤 느껴졌다. 그러나 폭토를 할 때는 어김없이 5단계였다. 나는 3, 4단계에 맞게 식사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칼로리는 무시하고 위장의 상태만 내내 생각한다. 고비는 늘 척도 3이었다. 눌려왔던 식욕은 어떤 음식이건 더 먹게 만들었다. 맛과는 상관없는 일. 그냥 다 먹어 치우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더 먹으면 과식으로 이어질 텐데, 그렇다고 숟가락을 놓자니 뭔가 아쉽고 허전하다. 이 순간에 먹는 한입이 ‘마지막 한 숟가락’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4단계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이 부분을 늘 견디지 못했다.
매 끼니마다 일기를 충실하게 작성하진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며 단계를 무시하고 먹어버린 때도 있고 일기를 집어던지고도 싶었다. 결국 과식해서 명치가 아파 토해내는 일이 있더라도 일기를 포기하진 않았다. 여기에서 끝낸다면 단순 반복 노동만 하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일기를 해석하며 회복의 단서를 얻는 것이다. 매일 밤, 배부름 일기를 책상에 펴놓고 성찰했다.
‘아, 오늘은 아침에 입맛이 없었지. 1단계여서 안 먹고 싶었지만 나중을 생각해서 억지로 몇 입 먹었어. 점심엔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밥을 적당히 먹었고, 딱 좋은 4단계를 느꼈어. 그런데 저녁이 문제였네. 1단계의 허기는 아니었는데 먹다 보니 4단계를 금세 놓치고 5단계까지 가버렸어. 왜 그랬을까?’
그렇게 3주 정도 배부름 일기를 기록했다. 쭉 살펴보니 묘하게 반복적인 패턴이 있었다.
-아침을 건너뛰면 그날은 반드시 저녁에 폭식한다.
-점심은 시간 때문에 급하게 먹느라 배부름을 측정하기 힘들다.
-결국 점심을 과하게 먹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저녁에 입맛이 없다가 야식이 폭주한다.
-저녁을 적당히 먹는 것이 제일 힘들다.
-아침을 굶고 야식을 먹다 폭토까지 가면 이틀 뒤까지 이 행동이 반복된다.
-월, 화, 수요일까진 일기도 성실히 잘 쓰고 4단계의 비중도 높다.
-목요일부터 흔들리며 특히 금, 토요일에 5단계까지 가는 날이 많다.
내 몸에 대한 설명서를 손에 쥔 기분이었다. 한참 사용하다 망가지기 직전에야 설명서를 들여다보다니. 이제 기록에 기반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전략을 짜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