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름의 공포
내 소화기관의 기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건 다이어트를 시작하고부터였다. 먹던 양을 줄였다. 조금씩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그 양에서 또 줄이고 싶어졌다. 젊은 날, 혈기 왕성한 힘을 오로지 식단 줄이는 데에 몽땅 썼다는 소린데. 물론 혈기 왕성한 점은 거기에만 작용하진 않았다. 참고 참던 날들이 이어지다 폭발하게 되면 평소 새 모이처럼 먹던 나는 새 30마리쯤의 모이가 될 만한 양을 폭식했다. 과연 젊은이였다.
그러나 적은 양을 먹는 것에 익숙해진 위장은 갑자기 들어온 음식 폭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급체했고, 그때마다 명치에 돌로 찍히는 것 같은 고통이 가해졌다. 어린 날에는 손을 땄다. 엄마가 내 엄지 손가락에 무명실을 휘휘 둘러 감았다. 엄지의 끝이 아주 팽팽해지고 퍼렇게 될 무렵,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뾰족한 바늘 끝으로 그곳의 피부를 찔러내었다. 피다. 검붉은 피가 바닥에 또르르 떨어진다.
다이어트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는 말은, 요요 역시 때마다 찾아왔다는 뜻이다. 다시 찌면 식단을 또 줄였고 체중이 가벼워졌다. 가벼운 몸으로 얼마간 지내다 보면 되돌아간 생활 습관 탓에 뺐던 체중은 연어처럼 되돌아왔다. 다이어트와 요요의 횟수가 더해지는 것에 비례해 폭식의 횟수도 늘어났다. 음식을 의지만으로 참아왔다. 그렇게 강제로 억눌린 식욕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운동’으로 풀어보았다. 음식 생각이 날 때마다 근력 운동을 하거나 나가서 걸었다. 날씬해질 내 몸을 떠올리면 꼬르륵 거리는 소리도 내심 들을만했다. 그러나 운동을 마무리하고 나면 더욱 극심한 허기가 찾아왔다. 다이어트 초반엔 타오르는 의지로 눌러낼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들은 고장 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다시는 모아지지 않았다.
폭식이 반복될수록 급체하는 일도 잦아졌다. 처음엔 3인분 정도를 한 번에 먹고 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정한 1인분의 양을 먹어도 체하기 시작했다. 용수철만 고장 난 줄 알았더니 위장도 함께 맛이 가버렸다.
급체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당장 피를 철철 흘리고 어디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속이 답답하고 명치에 무언가 꽉 끼어있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특히 밤에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다. 어떻게든 소화시키려 노력해 보았다. 소화 잘되는 요가도 해보고 새벽 중에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걸었다. (예전처럼 손가락은 따지 않는다) 매실청을 탄 따뜻한 물을 마셔보고 약 보관함을 뒤져 체할 때 먹는 소화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나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구토’
스트레스로 폭식하고 구토하는 일은 있었지만 체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분명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위장관에 남아 있으니 이런 답답한 느낌이 들겠지. 바로 화장실로 가서 으레 해오던 대로 구토를 시작했다. 생각만큼 음식물이 잔뜩 나오진 않고 쓰디쓴 위액이 넘치게 나왔다. 그러나 걸려있던 음식물 쪼가리들이 빠져나온 탓인지 구토 후에 뱃속이 너무나 편안해졌다. 소화제를 먹어도 풀리지 않는 내게 방법이 하나 생긴 것이다.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끊임없이 먹는 것은 아니었다. 체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열심히 양을 조절해서 먹었다. 하지만 폭식과 구토가 줄어들지 않았기에 소화기관은 조금씩 나빠져 갔고, 1인분을 먹었음에도 체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토하고, 그래서 소화가 안 되고, 그래서 체하고, 그래서 토하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나중엔 ‘허기가 가실 정도로만’ 먹어야 뱃속이 편안해졌다. 무언가를 먹었을 때 배가 부르다?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체한다는 이야기였다. 포만감이 무서웠다. 살은 찌기 싫은데 먹고는 싶고. 그렇게 운동하며 누르고 누르다가 결국 폭식으로 터지고. 폭식과 구토, 소화불량과 구토. 이중으로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소식좌’인 걸로 오해할 판이었다. 더 먹고 싶어도 곧 찾아올 체기 때문에 멈추었다. 뱃속의 꼬르륵 소리를 없앨 만큼만 먹었다. 당장은 허기가 가셔도 두 시간 뒤면 다시 배고파질 것이다. 그래도 일단 멈췄다. 그러나 그때 제동 걸린 식욕은 어느 날 스노우볼처럼 커다랗게 찾아와 내 몸을 흔들어 놓는다.
체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면 달라졌을까. 늘 머릿속을 헤집던 생각, ‘살은 찌기 싫은데, 먹고는 싶고’. 아무도 내게 살을 빼라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정한 울타리에 기어 들어갔다. 울타리는 점점 좁아져 내가 서 있을 땅도 한없이 작아져만 가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머릿속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건 삶의 진리처럼 당연한 사실이 되어 있었다. 폭식과 구토로 인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단점은 망가진 소화기관이었다. 그런데도 가끔씩 그것을 망각하고 미련하게 선을 넘을 때까지 먹어 버린다.
이제 음식을 보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욕망했다. 배부르고 싶어, 아냐, 배부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악순환을 끊고 소화기관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1인분 정량’을 먹는 것이었다.
1인분의 양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식당 공깃밥 1개 분량도 많을 수 있고, 넘치는 고봉밥이 1인분일 수도 있다. 내게 맞는 1인분을 찾기 위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의 만족감과 포만감을 측정하는 귀찮을 일이 동반되어야 했다. 뇌를 빼고 흡입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지금 먹는 게 무슨 맛인지, 내가 다 먹어 가는지, 심지어 내가 먹는 게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생각 없이 ‘그냥’ 먹고 싶었다. 그렇게 먹은 결과가 지금이다. 이미 체중계를 처박아 두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 폭식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먹는 동안을 천천히 느끼며 나의 1인분을 찾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지속되지 않을 식단 일기를 썼다. 목적은 ‘나만의 정량 찾기’. 내용은 간단했다. 끼니때 먹은 것의 구성물과 먹은 후의 포만감 척도(1부터 5까지)를 체크하는 것뿐이었다. 오랫동안 쓴다면 이마저도 틀에 매인다 생각할 것이 뻔하기에 딱 1주일만 써 보기로 했다. 그때의 내 나이, 마흔 하고도 둘이었다. 날씬한 몸이 아니라, 소화할 수 있는 삶이 필요한 나이로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