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몸이야
다이어트를 인생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체중계도 눈앞에서 없어졌고, ‘먹으면 안 되는 목록’에 스스로 올려버린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사실 언제든 먹어도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이걸 먹으면 살이 찔 거야, 이건 몸에 나쁜 음식이야. 그중 가장 어이없는 생각은 ‘너무 맛있으니 먹으면 안 되겠어’였다.
어쩌다 입에 맞는 음식을 만나면 미각의 희열이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섰다. 어릴 적 처음으로 감자칩을 입에 넣어 바삭한 감촉을 맛보았을 때에도, 딸기 맛 요플레를 처음 먹어 새콤함을 느꼈을 때에도 맛있다는 환희와 기쁨보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건 맛있어서 위험한 음식이야.
-나는 앞으로 이 음식을 끝없이 탐하게 될 거야.
-그러니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아야겠어. 눈에도 들이지 말자.
무지막지한 사고회로가 작동하면서부터 음식에 대한 억압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꾹 눌러온 것들은 언젠가 밀폐된 박스 안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결국 참고 참다가 걷잡을 수 없이 폭식을 하곤 했다. 맛있어서 억압된 음식들은 때에 따라 달랐다. 어떤 시기에는 치즈케이크가 목록에 오르기도 했고 또 다른 시기에는 시리얼이기도 했다. 한때는 이 탐식을 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계속 먹어 질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 입에 너무나 맛있었던 해당 음식들은 맛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 입에 욱여넣어 더 이상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또는 꾹 참고 아예 구입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마흔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집안에 간식이나 주전부리를 미리 구입해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음식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희망이며 동시에 절망이었다.
이제 ‘먹으면 안 되는 목록’을 제거해야 한다.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언제든 먹어주자. 그것이 밤 10시가 될지라도 먹어보기로 했다. 혹시 야식을 먹어본 적 없냐고? 물론 많다. 하지만 멀쩡한 제정신으로 원하는 걸 원하는 시간에 먹어본 적이 없을 뿐이다. 식욕이 터져 폭식을 할 땐 만취자의 정신상태와 비슷해진다. 시리얼을 우유에 네 번, 다섯 번 맛도 모른 채 우적우적 집어넣지 않는 거야. 우유 위에 떠 있는 바삭한 식감, 시간이 지나 우유에 젖은 눅눅한 식감, 시리얼의 단맛이 풀어져 우러난 다디단 우유까지, 내가 뭘 먹고 있는지 생각하고 느끼면서 먹자. 두 그릇, 세 그릇 먹어도 괜찮아. 더 이상 식탐에 취한 상태에서 먹지 않는 거야.
그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올가미를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덕분에 요 며칠간 야식을 먹고 싶은 충동이 사라졌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밥 두 그릇도 꾹꾹 눌러 거리낌 없이 먹었다. 많이 먹은 나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운동하지 않았다. 가볍게 산책한 걸로 하루 운동을 마무리할 때도 있었다. 자주 가는 쇼핑 사이트에 다이어트 식품이 할인가로 떠 있어도 구입하지 않았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등장하는 각종 살 빠지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영상들은 ‘관심 없음’에 체크해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리즘은 꽤 건강한 목록으로 채워졌다. 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나만 알게 되는 변화. 쫓기는 듯한 마음은 사라지고 조금 더 넉넉해졌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 오후는 열심히 장을 보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해야겠다. 커다란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집에서 가까운 마트를 향해 걸었다. 걷는 것은 내게 큰 고통이었다. 오로지 에너지를 태우기 위한 일이었으니까. 걷는 내내 나를 자책하고 내 존재를 혐오했다. 과거를 후회하고 스스로를 징벌하는 마음을 다졌다. 그렇지만 살을 빼기 위한 목적이 사라진 걷기는 생각보다 꽤 유쾌하다는 걸 얼마 전 깨달았다.
여러 상가를 지나고 난 뒤에야 마트에 도착한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다. 불이 꺼져있는 상가의 유리창은 마치 거울처럼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그것이 문제였다.
아침이면 일어나 체중을 재는 행위도, 화장실에서 하루 서너 번 윗옷을 가슴께까지 걷어 올려 허리 맵시를 체크하는 행위도 멈추었다. 세수할 때를 제외하곤 아예 거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식이장애를 고쳐가고 있는 나를 굳이 자극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그것도 전신의 실루엣을 갑자기 맞닥뜨리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스친 건 단 몇 초뿐이었지만 아주 깊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어... 그러니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둥글둥글하게 무너진 어깨의 선과 전체적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께, 헐렁한 옷을 입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대충 예상할 수 있는 허리둘레, 조거팬츠를 입었지만 살짝씩 드러나는 어벙한 하체, 그것은 ‘뚱쭝한’ 몸이었다. 뚱뚱하다라고 표현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통통이라 부르기엔 좀 과하다 싶은 이상한 몸. 이럴 수 없어, 저 유리에, 또 그 옆의 유리에, 또 다른 유리에도... 자꾸만 내 모습을 찾아보게 되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은 봄철이라 얇은 가디건이나 셔츠로 몸을 대충 가릴 수라도 있지. 이제 곧 더워져 반팔 하나만 입으면 어떻게 이런 몸을 드러내고 다니지?(나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거 너무 아줌마 같은 펑퍼짐한 몸 아니야?(이미 아줌마인데도!) 나를 자기 관리도 안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또 만날 사람이 아닌데!) 몇 초 만에 머릿속엔 다이어트 선식과 다이어트 한약이 둥둥 떠다녔다. 오늘 구입할 과일도 결국 과당이니 이걸 먹다간 살이 찌고 말 거라는 생각에까지 닿았다. 비합리적인 줄 알면서도 끝없이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줄줄 흘러나왔다. 이럴까 봐 그동안 체중계도 없애고 거울도 보지 않은 것이었다. 단번에 홀리듯이 바뀌어버릴 나를 알기에.
-그만.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낮게 뱉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혼잣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튀어나오는 방법이다. 나를 공격하는 생각들도, 수치심과 두려움도, 불안한 마음도 그만. 파도처럼 솟구치는 생각이 잦아들 때까지 ‘그만’이라는 두 글자를 주문처럼 나직이 되뇌었다. 어깨가 강하게 굳어있고 뒷목은 잔뜩 움츠려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남이 내게 화살을 쏠까 두려워 가장 먼저 나에게 쏘았다. 내가 쏜 화살은 타인의 화살보다 덜 아플 테니까. 그렇게 난사된 화살 구멍 사이로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상가 유리에서 눈을 거둬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길을 걷고 있는 다리가 있었고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왼쪽 팔뚝이 있었다. 골반과 척추가 묵직하게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으며 움츠러든 목을 들자 어깨가 따라 쭈욱 펴졌다. 오른손으로 허리를 쓰다듬었다. 말랑하고 뭉툭한 뱃살이 만져진다. 조거팬츠 허리선 위로 뱃살이 조금 넘쳐있는 모양새다.
내 몸이야. 이것이 내 몸.
어떤 감정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로 담담히 말했다. 이것은 내 몸. 박혀있는 화살들을 뽑아내고 40년 이상을 지탱해 온몸에게 감사를 전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