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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면] 옷과 [안 되는] 옷

무엇부터 시작할까

by 김지현

마흔이 넘은 내 인생에서 다이어트를 삭제하기로 한 날,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발바닥이 아픈 것을 참아가며 억지로 운동하지 않아도 된다. 저녁 6시가 넘어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한동안 금지해 왔던 땅콩버터를 먹어도 된다! 갑자기 몸 안이 희열로 가득 찼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나는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일단 눈앞에 보이는 저 징글징글한 체중계부터 치우기로 결심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에 들렀다가 공복 체중을 재는 것은 하나의 루틴이었다. 공복 제충을 재는 것은 ‘가려니까 긁는다’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맞이하는 숫자. 늘어날 때도, 줄어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500g의 오차 안에서 들쑥날쑥했다. 체중은 물만 마셔도 오른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 감정은 그렇지 못하다. 조금이라도 오르는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더럽다.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어제 내가 뭘 많이 먹었지?

-운동을 조금 덜했나?

-그때 그걸 먹지 말았어야 했나?


인간이라면 당연한 생리작용을 했으면서도 자꾸 되짚어 본다. 내가 무얼 ‘잘못해서’ 체중이 늘어났는지. 체중의 증가는 곧 형벌과 다름없었다.


체중이 약간 줄어든 날은 단전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오른다. 내가 해냈어. 그래, 어제 간식을 안 먹길 잘했지. 먹었으면 어쩔 뻔했어? 내 인생을 망칠 뻔했잖아. 잘됐어. 오늘 하루는 가볍게 시작할 수 있겠다!


... 언젠가부터 체중으로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체중 무당’이 되어버린 나는 고작 몇백 그램만으로도 그날그날의 감정 기복이 심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 체중이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은 체중계 외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을.


무척 궁금하겠지만 이제 평생 체중은 알고 싶지 않다. 생각난 김에 바로 실행했다. 체중계는 창고 깊숙한 곳에 넣었다. 언젠가 다시 찾을 날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아침의 루틴을 수정할 때가 왔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옷장이었다. 문을 열자 ‘빠지면’ 옷들이 쏟아졌다. 지금의 몸에는 맞지 않는, 극한의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구입했던 작은 사이즈의 옷들. 이들은 ‘살 빠지면 입어야지’하고 버리지 못한 옷들이다. 언젠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거야. 이렇게 철저히 식단을 조절하며 운동고 있으니까. 40대의 아주머니는 신체 나이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서랍을 열자 이번엔 ‘안 되는’ 옷들이 가득했다. ‘빠지면’ 옷들보단 사이즈가 조금 더 큰 것으로, 분명 몸이 꾸역꾸역 들어가긴 하는데 입고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옷들을 칭한다. 이것들이야말로 나를 희망 고문의 절정으로 이끄는 집약체들이다. 조금만, 아주 조금 더 빼면 입고 돌아다닐 수 있겠는데! 하며 켜켜이 쌓아둔 지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이런 식이라면 ‘안 되는’ 옷들은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일단 뒤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빠지면’ 옷들과 ‘안 되는’ 옷들을 전부 다 꺼내어 산처럼 쌓았다. 뒤이어 모조리 의류 수거함으로 이동시켰다. 내 옷들만으로 한 개의 수거함이 꽉 차버렸다. 예상외로 아깝다는 생각은 참새 발톱의 때만큼도 들지 않았다. 새로 생겨난 옷장의 빈 공간만큼 마음이 시원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은 매일 옷을 입을 때마다 슬라임처럼 나에게 들러붙어 말을 걸었다.

-어서 살 빼서 나를 입어야지. 안 그래? 그 몸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웃기지 마!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어 있는 옷장을 채울 시간이 왔다. 그동안 이 악물고 피해왔던 일을 할 차례다. 내 몸에 적당한 치수의 옷을 구입하는 일. 언젠가부터 프리사이즈라고 나온 옷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명칭은 프리인데 입은 나는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가슴께가 부담스러웠고, 허리 쪽은 조금씩 들러붙기 시작했다. 예전엔 ‘프리’라 붙은 옷들은 잘 맞아서 사이즈 표를 구체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내 몸에 살이 붙은 탓도 있으나 실제로 옷 사이즈도 작아졌다. 이럴 땐 강력하게 옷이 잘못된 것이라 탓해본다. 자기 합리화라고 해도 좋다.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인터넷 검색창에 죽어도 치기 싫었던 그 단어를 쳐 보았다. ‘빅사이즈’. 내 생애 빅사이즈 옷은 절대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살이 쪘다는 것을 넘어 사회가 정해놓은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났다는 소리잖아?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아온 나에겐 이것 역시 체중만큼 하나의 징벌이었다. 살이 찐 너는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야. 그러니 빅사이즈 옷을 입는 형벌에 처하노라! 그런 무식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만 검색해 보니 빅사이즈 옷은 이름이 주는 거부감처럼 크지는 않았다. 그저 이름만 빅사이즈 청바지, 빅사이즈 반바지, 빅사이즈 카라티, 빅사이즈 슬랙스. 심지어 그냥 66 사이즈에도 ‘빅사이즈’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아니, 내가 육아에 빠져있던 사이 ‘거대한’의 뜻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사회가 정해놓은 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틀’은 44, 55, 66일까, 아니면 S, M, L일까? 나 역시 사람들을 그저 신체 사이즈로만 평가하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그러니 살을 빼야 해. 수치스러워.


폭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금니로 꾹 깨물어 삼켰다. 가장 자주 입을 것 같은 색의 청바지 두 벌과 티셔츠를 구입했다. 입어보고 만족스럽게 지퍼가 잠긴다면,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입을 것이다. 빅사이즈 옷을 구입했으니 사고방식도 그만큼 넓혀보기로 했다. 무한한 나를 좁은 틀에 가두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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