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탐구
한 번의 폭식과 구토가 휘몰아친 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PT 수업에 임했다. 도대체 왜 나는 중간이 없을까. 일단 헬스장에 가면 윗옷이 땀에 쫄딱 젖을 정도로 지나치게 운동을 한다. 아마 이번 수업도 그럴 테지.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PT 룸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신 트레이너 선생님은 바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오늘은 몇 가지 기구 운동을 추가로 배우고 지난번 배웠던 운동에 중량을 추가했다. 바른 자세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기구의 무게로 인해 버티기 힘들었다. 팔과 다리가 달달 떨렸지만 선생님께서는 잘한다, 할 수 있다, 하시며 응원해 주셨다. 10개만 하면 딱 좋을 것을, 기어이 15개 3세트를 마무리하고 만다. 분명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차고 턱 밑으로 땀이 흐른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심박수를 올리는 운동을 이어서 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작을 하는 날이었구나. 일반 스쿼트 자세도 간신히 새로 배운 나에게 선생님은 점프 스쿼트와 극악의 버피 테스트를 이어서 시키셨다. 무릎에 무리가 갈까, 종아리가 너무 굵어질까 늘 피해 왔던 동작들인데 그걸 모아서 해내야 하다니. 어쩔 수 없이 구더기 씹는 표정으로 해낸다. 나는 해내는 사람이니까. 늘 그래왔으니까. 3세트를 마무리 짓고 나니 내 다리는 갓 태어난 기린 같았다. 곧 토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심박수가 높아 본 적은 근 5년 만에 처음이다. 많이 걸었으면 걸었지, 항상 무릎의 통증이 신경 쓰여 뛰지 못했던 나는 점프를 시도해 본 것 자체로 나의 용기를 높이 샀다. 내일 무릎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아침 식사는 아주 가볍게, 점심은 치킨이었지만 절제해서 먹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니 모든 음식이 소화가 된 모양이다. 허기가 온몸을 잠식했다. 저녁을 뭘 먹어야 하지. 가족들을 위한 불고기를 해놓았다. 그러나 나는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을...
갑자기 닭가슴살 생각을 하니 힘이 쭉 빠졌다. 살을 빼려면 어쩔 수 없지. 갓 태어난 기린의 몸으로 집까지 간신히 기어가 샤워를 했다. 거울 속 나는 여전히 퉁퉁했다. 꼴도 보기 싫다. 도망치듯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저녁을 준비한다. 배고픈 채로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씹어 삼켰다. 생 야채는 도저히 먹기 힘들어 드레싱을 뿌렸다. 그래도 맛없는 건 매한가지. 샐러드드레싱을 바다처럼 담아 양배추를 담가 먹어도 맛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맛있는 훈제 닭가슴살과 감칠맛 나는 드레싱인데도 마음이 허전하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터지고 말았다. 이왕 먹는 거 건강하게라도 배를 채우자며 방울토마토와 단백질 스콘을 왕창 먹은 나는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구와 마주하였다. 분명 나는 세 끼니를 정해진 시간에, 건강한 식재료들로 포만감 있게 챙겨 먹었다. 그렇지만 식욕을 억누를 때와 그 상태가 비슷한 걸까. 손에 잡히는 건 무조건 입에 넣었고, 토해냈다. 이윽고 정신은 말끔해졌다.
먹고 토한 나를 자책하며 잠이 들다 새벽에 잠시 깼다. 허망한 상태로 천정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깨우쳤다.
-지현아, 식이장애 회복과 다이어트는 함께 존재할 수 없어.
그걸 잊고 있었다. 나에겐 어떤 욕구와 목표가 우선인가. 분명 시작은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먼저였던 것 같은데 운동을 하면 할수록 식욕은 억눌리고 ‘보기 싫은 나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니었다. 내 안의 욕구를 파악해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다시 식이장애의 굴레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전처럼 사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식이장애는 늘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차근차근 할 일을 한다. 일단 배우고 있던 PT 수업을 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하다간 완벽하게 이전의 상태로 고착될 것이 눈에 선했다. 운동에 대한 내 의식 상태를 원점으로 돌려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면 할수록 식욕이 자극되는 이상한 운동. 분명 근 성장과 체지방 분해에 도움은 되지만 식이장애에 도움은 되지 않았다. 목표에서 ‘다이어트’를 제거하고 ‘건강한 삶 살기’로 가다듬는 작업을 시작하자. 마흔 넘게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루 두 시간 운동이 없다니! 목표에 다이어트가 없다니! 다이어트는 살을 제거하는 일이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마음을 더하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