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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세 가닥

아무도 모르게 늙어가기

by 김지현

“어, 잠깐만. 방금 여기 반짝거렸는데?”


흰머리가 났다. 나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게 나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노화로 인한 신체의 통증과 기능 감소, 주름의 증가 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흰머리만큼은 당황스러웠다. 언젠가 나겠지. 나도 나이를 먹어 할머니가 될 테니까. 하지만 다들 백발이 성성해도 나만은 영원히 검은색 머리로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야 어제도, 오늘도 머리색이 줄곧 까맸으니까. 7살짜리도 안 할 생각 같긴 한데 염색도 없이 살던 내게 이 검은색은 너무나 익숙하고 보잘것없는 색이었다.


그런 평화로운 모발 세계에 갑자기 하얀색이 침투했다. 말이 하얀색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섬세하게 빛나는 은색이었다. 알고 나니 더욱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내 몸에서 이렇게 빛나는 털이 자라고 있어. 무얼 먹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라난 걸까. 다른 사람의 두피에 내려앉을 씨앗이 바람에 날려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면 탈모는 문제 거리가 되지 않았을 거야. 씨만 뿌리면 송송 자라나는걸.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뽑아낸 흰머리가 세 가닥이었다. 이걸 새치로 봐야 하나, 흰머리로 봐야 하나 잠시 고민되었지만 나이와 가족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흰머리라 여겨야 했다. 타인이 뽑아준 세 가닥의 흰머리를 한 손에 받아 들고 한참을 황망해했다. 이것은 나를 감정적으로 무너뜨렸다. 방어막이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물어진 것이다.


친정엄마의 흰머리가 생각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30대 중반인 시점부터 엄마의 옆머리엔 흰머리가 속속 솟아났다. 특히 정수리보다 귀 바로 위쪽에 몰아서 많이 났었는데 나와 동생은 누워있는 엄마의 바로 그 부분을 뒤져가며 흰머리 뽑는 걸 즐겼다. 용돈은 받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을 뽑아내는 자체가 쾌감이 상당했기에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쏘옥 뽑으며 그것의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 흰머리가 나는 게 당연하지. 엄마는 늙어가니까. 곧 있으면 할머니가 될 테니까. 나도 언젠가 늙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떠올리지 못한 채 그녀의 흰머리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원숭이처럼 가만히 누워서 실눈을 뜨고 수면의 경계를 더듬던 엄마는 무슨 꿈을 꾸고 계셨을까. 그녀는 분명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흰머리는 노화의 상징이다. 신체의 통증도, 주름도 대부분 자신이 먼저 인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흰머리는 그렇지 않다. 남이 먼저 알아봐 주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나의 노화를 남에게 들키다니. 나조차 몰래몰래 속이고 있었는데 들켜버렸어. 비상이다! 이로써 숨겨왔던 ‘나의 늙어감’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윽고 서늘하게 새겨지는 당연한 사실. ‘너도 곧 할머니가 될 거야’


아직도 왼손엔 아까 뽑은 흰머리 세 가닥이 놓여있다. 역시 완벽한 하얀색이 아니다. 손바닥의 위치를 바꿀 때마다 이쪽에서 빛났고 저쪽에서 또 빛났다. 새초롬한 나의 흰머리. 돋보기처럼 햇볕에 각도를 잘 맞추어 반사시킬 수만 있다면 그 빛으로 내 눈이 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늘 하루 노화에 대한 나의 단상이다. 모르고 싶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몰래 늙어가고 싶다. 무엇보다 나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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