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생각의 꼬리
남편은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뜨뜻한 방구석에서 몸을 좀 지지고 나서 기지개 한 번 펴고 다 나았다며 다시 맥주캔을 든다. 그런 그가 며칠 전, 1박 2일 출장 중 놀라운 소식을 전화상으로 전해왔다.
“왼쪽 눈이 부어오르고 있어.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잔병치레도 없는 사람이 병원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는 사실에 먼저 충격이었고 해당하는 부위가 심상치 않은 눈이라는 사실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아니 그동안 같이 살 부대끼며 지냈으면서 왜 여태 말을 안 했지? 약간의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이것을 섣불리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꼬옥 병원에 가보라고, 걱정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혼자가 되니 맘껏 걱정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졌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민으로, 연민은 안타까움으로, 안타까움은 결국 가장 외면하고 싶었던 두려움에 가 닿았다.
‘혹시라도 큰 병이 생겨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어쩌나?’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집의 전등은 전부 다 내가 갈았다. 변기도 내가 뜯어 교체했다. 무거운 짐도 내가 다 들어 나른다. 페인트칠은 이제 껌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에 본격적으로 닿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현실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홀로 남겨진 여성의 마음이 되었다.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돌아다녔다. 분주했다. 가상으로 만들어 낸 남편의 투병기간을 떠올렸다. 남편의 직장이며 병원비도 함께 따라왔다. 그에 대한 생각이 충분해지자 이제 남겨진 아이들에게로 걱정이 전염되었다. 두 아이들을 나 혼자 키우려면 식비부터 학비까지 얼마가 들 것이며 내가 다니는 직장의 월급 하나로 충당이 가능한지, 양육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은 있는지 머리로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듬뿍 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남겨진 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남은 나, 사람들은 미망인인 나를 어찌 바라볼 것인가, 이제 나는 남편과 상의해서 처리하던 모든 일을 혼자 진행해야 할 것인데 그게 가능한가(물론 쭉 그래왔지만), 보험 가입에서부터 아이들 문제집 선택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종종 상의하곤 했었는데 이젠 나 혼자 해야겠구나, 극도의 피곤한 삶이겠는걸. 그렇게 생각이 만 삼천이백오십 바퀴 돌고 나니 이번엔 남편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태도로 있어야 할 것이며 남편이 인싸인 덕분에 맞이해야 할 손님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 나는 어떻게 응대해야 할 것인가, 그동안 두 아이는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등등.
생각이 맛있게 꼬리를 물었다. 꼬리를 먹어가고 몸통도 먹어치워 갈 때쯤 다른 꼬리를 물어댔다. 그렇게 하룻밤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와 바로 병원에 들렀다.
“다래끼가 난거래. 따뜻한 찜질 해주면 된대.”
아아, 간밤에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남편의 장을 치렀던가. 반나절의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상상 속의 49재까지 치렀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눈에 난 다래끼였다는 희소식에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남편 몰래 마음속으로 장례식을 진행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많은 생각 중 그의 ‘삶’에 대한 생각이 쏙 빠져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죽음을 앞두게 된다면 그는 어떤 마음일까, 그의 삶은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충만했을까, 그는 지금 무엇이 두려울까,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등등 남편의 삶에 대한 생각과 연민은 다래끼임을 알고 나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맛있는 저녁밥을 최대한 정성스레 잘 차려주는 일. 그것으로 혼자만의 미안함을 달래 본다. 밥을 우걱우걱 씹어 삼키는 저 남자는 오늘 하루 어떤 삶을 보냈을까, 별일 없어도 가끔씩 생각해 보기로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