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기세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은 출근할 때부터 묘한 감정으로 범벅이 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 그리고 교사인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수업. 물론 아이들이 '그나마' 좋아하는 수업이라는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수업은 체육 말고도 또 있다. 옷을 갈아입기 귀찮아 아예 트레이닝 복으로 출근한 지도 오래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몇 년째 어떤 학년이던 1반을 배정받고 덕분에 몇 년째 체육수업은 순차대로 돌아가니 1교시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체육은 교과 수업이 아니다. 사실 정식 교과서도 있고 이론 수업도 버젓이 있는 과목이다. 하지만 교과서를 폈다간 아이들은 눈빛으로 나를 능지처참하려 들 것이다. 그래도 그 눈빛을 꾹 참아내야 한다. 기세다. 수업은 기세란 말이다. 기세 좋게 버거운 눈빛을 이겨내어 체육 교과서를 펴낸다. 알아, 알았어. 운동장 나갈 거야. 그전에 이론은 익히고 나가야지 않겠니, 이 배은망덕한 아이들아?
'술래잡기~고무줄놀이~'노래에 들어있는 그 '술래잡기'가 체육교과서에 '태그형 게임'으로 때깔도 좋게 수록되어 있었다. 들떠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기세로 눌러내고 이 운동에 쓰이는 민첩성과 유연성을 사자와 얼룩말로 빗대어 설명한다. 물론 나의 도입부 설명을 듣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업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나는 오늘 무작정 뛰지만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운동장을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좀비 떼로 변해있었다. 누군가가 너희들을 속박해 왔니, 아니면 며칠 감금되어 있었니? 내향형 선생님은 알 수가 없구나. 오늘 준비한 '태그형 게임'은 '화산이 폭발했다'라는 이름의 변형 술래잡기. 그냥 그런 게 있다. 초등학교 놀이 수업의 세계는 이렇게나 오묘하고 복잡하며... 유치한 것이다. 얼음땡 하나로는 40분의 수업을 이끌어갈 수가 없다. 다양한 게임을 준비해 변화를 도모한다. 유치함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나는 최선을 다해 "화산이 폭발했드아아아아아!" 소리치고 아이들은 순식간에 원시인이 되어 분출되는 용암과 공룡으로 분한 술래들을 피해 뛰어다닌다.
그렇게 한 시간의 체육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지쳐있다. 큰일 났다. 이제 1교시가 끝났을 뿐인데. 하지만 원래 참여하는 입장보다 준비하는 입장이 더 힘든 법. 생수를 따서 꼴깍꼴깍 마시며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 수학이다. 다 재우게 생겼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