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과 헬스장
가족 모두 출근도, 등교도 하지 않는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다. 아침 6시 30분. 다들 늦잠을 자기에 아침밥은 아주 느지막이 차려도 좋다. 아니면 과일만 던져주고 점심은 배달 음식으로 한다면 모두들 환영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9시까지 누워서 꾸물대어도 충분하다.
주말의 늦잠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갓생을 산다며 토요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본 적도 있었으나... 나는 그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유튜브 보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 뒤론 금요일 밤, 아주 늦게 잠들어 토요일 오전 시간을 넉살 좋게 이불속에서 뭉개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때론 평일과 비슷한 주말을 보내고 싶었다. 똑같은 기상 시간을 위해 전날 밤, 금요일이지만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누웠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어쩐지 금요일 밤에 보는 유튜브는 더 재미난 것 같았다. 그 마음에도 포근히 이불을 씌워두고 잠이 들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은 개운한 기상으로 보상받도록 하자.
토요일에 일찍 일어나면 생각보다 훨씬 상쾌하다. 아침 시간이 분주하지 않아서 그렇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이었지만 이제부턴 달라질 것이다. 오전에 헬스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전에 부지런히 내 몸에 투여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사실 아침이라 입맛은 전혀 돌지 않는다. 배고프긴 하지만 입으로 뭔가 밀어 넣고 싶진 않은 이 느낌! 숱하게 야식을 먹어온 밤에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건강한 삶을 올해의 목표로 설정한 후, 세 끼니를 꼭 챙겨 먹자는 나만의 규칙을 세웠던지라 입에 뭐라도 넣어야 했다. 요리하기는 너무 귀찮아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간단히 챙겨본다. 영양을 위해 반숙란 한 개와 두유 한 팩, 그리고 냉동실에 한참 있었던 단백질 스콘을 꺼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야채를 챙기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점심 끼니때 좀 더 먹기로 한다.
유튜브를 라디오 삼아 소리만 키워놓고 버석버석 스콘을 씹기 시작했다. 역시 아침 이 시간에 무얼 먹는 건 사막의 모래를 한 줌 퍼 넣어 씹는 것과 같다. 그렇다 해도 지금 굶는다면 그 허기는 반드시 오후나 저녁의 군것질로 되돌아온다. 질리지 않도록 천천히 습관을 들여야 한다.
특히 전날 밤, 폭식과 구토를 일삼고 난 다음 날이면 입속과 위장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처참해진다. 바짝 마른 식도는 침을 삼킬 때마다 칼칼하다. 위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음식만 보면 진저리 쳐진다. 공복에 따뜻한 물 한잔이 건강에 제일 좋다고 한다. 그러나 폭토를 하고 난 내 몸에 그 물 한잔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런 아침은 앞으로도 맞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다 되는 일은 아니었기에 ‘절대’. ‘반드시’와 같은 단어는 함부로 쓰지 않기로 한다. 언제고 나는 또다시 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마지막 입가심으로 두유 한 팩을 먹으니 꽤 든든해졌다. 식사 마무리 의식은 티슈로 입을 닦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나 혼자 정했지만 엄숙하다. 여기까지 왔다면 한 끼 식사는 정상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헬스장은 9시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시간도 남았으니 그동안 밀린 살림을 한다. 빨래도 정리하고 어젯밤 씻어놓은 그릇들도 수납함에 넣어둔다. 아직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고요하다.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이.
9시가 가까워져 물을 가득 담은 텀블러와 이어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 근처 헬스장이라 5분만 걸으면 도착이다. 역시 헬스장은 우리 집 화장실 변기가 막혔을 때, 얼른 뛰어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 최고다. 이른 시간이지만 나보다 나이 드신 분들의 열정적인 호흡 소리가 가득하다. 나도 이런 분들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어졌다. 담백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신발을 갈아 신고 몸을 천천히 풀어본다.
PT 수업 때 배웠던 기구 운동을 혼자 복습했다. 이리저리 자세를 잡으며 힘이 들어가는 부위에 정신을 집중했지만 역시 초보라 그런지 엉뚱한 곳의 근육만 땡땡해진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그 느낌을 알 수 있겠지. 60~70kg의 쇳덩이를 아주 쉽게 들어대는 남자들 사이에서 중년의 삐약이가 10kg을 들고 헉헉거렸다. 그래도 그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식이장애는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들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들을 귀찮게 만들어버리고 내 몸을 음식 하나에만 반응하게 조종한다.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달 내내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던 모습을 보면 분명 의지는 넘치는 나였다. 그것과 이것은 또 별개인 모양이다. 식이장애 앞에선 늘 무너졌다.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여 결국 다시 먹는 것으로 풀게 만드는 식이장애 환자들에겐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한다. 내가 딱히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 옆에만 있으면 자연스레 그 기운이 전염된다. 진작 헬스장에 와볼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 휴일을 평일과 비슷한 리듬으로 가져가는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식이장애는 조금 더 완화된다. 다른 사람들이 쉴 때 미라클 모닝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생활 리듬이 비슷해지면 몸은 절대 헷갈려하지 않는다. 금요일이니 맘껏 풀어져 먹고 토하고, 주말엔 주야장천 누워있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실제로 몸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른다. 결국 그렇게 싫어하는 ‘지방을 저장하는 몸’으로 변하고 만다. 치킨도, 피자도, 그 어떤 피어푸드도 괜찮아. 다만, 끼니로 먹어준다면 몸은 더 고마워하겠지.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하다못해 그냥 유튜브라도 보자. 세 끼니를 비슷하게 몸에 넣어주고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균일하게 맞추는 것으로 일단 몸을 안심시킬 수 있다. 사실 우리 몸은 제멋대로인 휴일보다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평일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