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승에게
그의 장마가 끝나고 그의 책도 끝났다
봉안당홈이라는 도서관 형식의 납골당에는 ‘검은 바지의 밤’이라는 책 한 권만 남아 있다 그가 생전에 쓰던 안경과 펜과 시집 세 권을 벗어버리고
그해 칠월 하순이 장마로 질척거린다
누군가의 시간을 품은 것들은 충분히 젖었다
나는 장마가 지나간 흔적들을 보고 다녔다
강물이 흘러간 방향으로 넘어진 것들이 멈춰 있었다 비닐조각이나 풀줄기, 쭈그러진 물병의 글자들이 나뭇가지에 걸렸고 둑길 웅덩이에는 구름이 까맣게 고여 있었다
검은 바지를 입은 장마처럼 장마를 입은 검은 바지처럼
신이 장마를 내려준 까닭을 생각한다
장마철에는 누구든 무성하다 무성한 것들은 쓸려가면서 장마를 벗어 버린다
그래서 그는 ‘검은 바지의 밤’을 생각했을까
창밖으로 보았을 장마
마지막 바지를 벗지 못한 매미울음이 비와 비 사이에 빽빽하다
잎과 잎, 공기와 초록,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서 장마는 맹렬했고 강물도 맹렬했다 맹렬하지 않은 것은 검은 바지를 벗은 그의 밤뿐이었다
그가 장마를 벗고 죽음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 강물이 데려가지 못한 미소가 사진 틀에 남았다
창문에 걸린 하얀 구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