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자 Sep 05. 2024

내 반려동물 이야기, 마지막

닭을 떠나보내며

 닭은 시간이 지나면서 닭장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처음엔 잠도 혼자 자고 무리에 끼지도 못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 다른 닭들과 함께 잠을 자고 친구도 생겼다.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 모습에 조금 울컥했다. 재밌는 건 밀웜이나 채소를 주려고 닭장을 열면 다른 닭들은 도망가기 바쁘지만 내 닭은 사람 손을 겁내지 않기 때문에 제일 먼저 달려와서 먹이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혹시나 기억할까 싶어 내 목소리로 닭을 불러봤다. 기웃기웃 거리면서 나를 바라본다. 완전히 잊지는 않았구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공장이 문을 닫아야 되는 상황이 됐다. 공장의 문을 닫으면 닭장도 정리해야 한다. 닭장엔 내 닭도 있다. 당장 어딘가에 닭장을 다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닭장에 적응이 된 닭을 다시 집 안으로 데려오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일 것에 고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당당하게 닭을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말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싫어하는 것은 둘째 치고, 집에서 나는 당당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고 닭의 사료를 살 돈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배변패드를 살 돈조차 없었다. 만약 닭을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소리다. 공장이 문을 닫는 판국에 엄마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저 기다렸다.


 꽤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결단을 내렸다. 닭장의 닭을 모두 잡는 것이었다. 엄마의 지인이 와서 닭을 잡아주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잡은 닭의 대부분을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내 닭에게 정을 들인 만큼 아버지도 아버지의 닭들에게 정을 많이 들였던 것이다. 나는 차마 내 닭은 잡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지금의 내 상황으로는 닭을 품을 수가 없었다. 내 무능함에 화가 났다. 엄마와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내게 닭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닭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심지어 가장 처음 잡힌 게 내 닭이라고 했다. 사람 손을 겁내지 않으니 가장 먼저 잡힌 것이다. 또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다가왔다가 죽었을 닭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무능한 내가 너무 싫었다. 어린 왕자의 말이 맞았다.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

 이날부터 나는 더 이상 내 몸이 아프다는 핑계는 대지 않았다. 이제는 일어서서 뭐라도 하려고 했다. 다음에 또 무언가를 지켜야 할 때는 무능한 모습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닭을 그리워한다. 가장 가진 게 없을 때 만났던 인연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새를 봤을 때, 아침마다 내 잠을 방해하는 새소리가 들릴 때, 이제는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항상 내 닭이 생각난다. 닭은 나를 우울한 생활 속에서 구해줬지만 나는 닭을 구해주지 못했다.

 누군가는 동물이, 심지어 닭이 죽은 것 가지고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닭을 내 무능으로 인해 죽게 둘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은 내 삶의 큰 터닝 포인트 중 하나다. 그럼 나는 대체 왜 무능했고, 무슨 병이 찾아왔던 걸까?

마음속으로 죽은 반려동물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편지가 되어 반려동물에게 전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 오랜만에 내 닭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이전 08화 내 반려동물 이야기, 세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