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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4. 2024

내 반려동물 이야기, 세 번째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

 닭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중닭이 되고 조금씩 닭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삐약삐약 소리에서 꼭꼭 소리로 천천히 바뀌더니 어느 순간 병아리의 소리는 나지 않게 되었다. 처음 닭 소리를 냈을 때도 기뻤다.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스스로 닭이 되어 가는 모습이 장하지 않은가. 점점 덩치가 커져가는 닭을 위해 큰 철장을 하나 들였다. 내가 있는 동안은 방에 풀어놓으니 괜찮지만 닭 혼자 있을 땐 그럴 수 없으니 집이 필요했고, 더는 박스로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녀석이었다. 처음엔 내 방에 철장을 뒀지만 방에서 닭 냄새가 난다는 가족들의 말에 베란다로 옮겼다. 추워지는 날씨에 베란다로 옮기려니 마음에 자꾸 걸렸다. 물론 아무도 날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닭의 깃털은 열을 가두는 역할을 잘 수행해 줬고 바람이 들지 않는 베란다는 닭에게 그리 추운 환경은 아니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 위험하지도 않은 건데 엄마 아빠가 우릴 걱정했던 이유를 말이다. 작고 연약했던 병아리 때부터 키워 온 닭은, 내 눈엔 아직도 작고 연약한 병아리 같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조금씩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닭을 위한 밀웜을 관리하러 다녀온 날, 베란다에서 위풍당당한 닭을 봤다. 얘가 오늘따라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닭장 안에서 무언가 발견했다.

닭이 낳았던 초란

달걀이었다. 내 닭이 처음으로 알을 낳은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낳지 않아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찰나에 첫 알을 보여주었다. 엄마에게도 자랑했다. 닭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닭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고생했겠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없는 동안 혼자 꽥꽥거리면서 알을 낳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괜히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틀 후 아침, 이번엔 내가 보는 앞에서 알을 낳았다. 꽥꽥 거리며 힘들어할 줄 알았던 닭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알을 하나 낳았다. 다른 닭들은 알을 낳을 때 소리를 질러대던데 내 닭은 왜 이리 조용하지? 혹시 시끄럽게 굴면 집에서 쫓겨나 닭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이만큼 자라 버렸다. 사진은 닭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던 내 의자 등받이

 다행히 시끄럽지 않은 닭 덕분에 나는 닭과의 시간을 조금 더 유지할 수 있었다. 닭이 되면 닭장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으로 데려왔던 병아리였지만 오랜 시간 키워서 성장과정을 다 지켜본 나는 차마 돌려보낼 수 없었다. 가족들이 봤을 땐 닭이 짜증 났을 수도 있다. 풀어놓으면 방에 똥을 싸고 다니고 베란다에선 닭 냄새가 났으며 철장의 자리차지도 한몫했으니 말이다. 가끔 엄마나 아빠에게서 이제 닭장에 돌려보낼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을 들으면 나는 곧 보내겠다고 말하며 조금씩 시간을 연장했다.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고 내가 닭을 잘 케어할 만큼 가진 것도 없었으니까.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가을이 왔을 때, 닭을 보내야만 했다. 철장에 갇힌 채 차에 실린 닭은 아직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다.


 닭장이 있는 아빠의 공장 뒤편에 도착했다. 닭을 들어서 닭장 안을 구경시켜 줬다. 바짝 긴장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두리번 거린다. '그래, 닭이라면 집 안보다는 이 흙바닥이 더 좋을 거야.' 혼자서 생각하고 결국 닭장 속으로 닭을 들여보냈다. 닭은 닭장 속에 들어가자마자 구석으로 달려가 꺼내달라는 소리를 냈다. 애써 무시하고 먼 곳에서 지켜봤다. '거기서 적응해야만 해.' 다 커서 독립한 자식을 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닭장이 있던 곳이 비어있다. 이렇게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구나.


 인연이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찾아와 작게 자리를 잡는다. 인연의 골이 깊어질수록 자리는 자꾸 커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떠나고 나서야 안다. 내 마음에 이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차지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후회와 상실감이 밀려오고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다. 책 어린 왕자에는 '누군가에게 길들면 눈물 흘릴 일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길들여서 좋을 게 없잖아."라고. 거기에 대한 여우의 대답은 내가 각색해서 써보겠다.


 길들여서 좋을 게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닭을 길들였기 때문에 다시 떠나보낼 때 슬펐지만 나는 닭을 키우면서 내 병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멍하게 하루를 보낼 뿐인 내게 닭은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잠을 방해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주변에 산이 있는 우리 집은 아침에 시끄러운 새소리가 가끔 내 잠을 방해한다. 이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내 잠을 방해하는 새소리는 아침마다 꼬꼭꼭 소리를 내서 날 깨워주던 닭을 떠오르게 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그리고 푸드덕 대는 새의 날갯짓은 닭의 날갯짓을 떠오르게 해 또 한 번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에게 인연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살아가면서 점점 줄어드는 행복과 웃음을 한 가닥이라도 더 잡아주는 것 말이다. 내가 싫어하거나 관심 없던 것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그렇게 한 걸음 성장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게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이야기는 내 반려동물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다. 닭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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