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랑자 Sep 03. 2024

내 반려동물 이야기, 두 번째

당신의 무언가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

 어렵게 세상으로 나온 작은 생명은 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조수석의 박스 안에서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며 삐약삐약 우렁차게 울어댄다. 집에 도착해서 방 한쪽에 병아리를 담아 온 박스를 두었다. 박스 안을 슬쩍 보니 이 녀석도 나를 힐긋 본다. 그래, 이제부터 이 방에서 우리 같이 있는 거야. 병으로 인해 하루하루 사는 것에 의미가 없었던 내게 작은 의미가 하나 생겼다.

 며칠이 지나 사료를 먹을 수 있게 되 그때부터 꽤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병아리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털 정리를 하고 날갯짓을 연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박스 위에 병아리가 앉아있었다.

스스로 연습한 날갯짓으로 처음 박스 밖으로 나온 병아리

마치 '뭘 봐? 이정돈 기본이라고.'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당당하게 박스 위에 올라와있는 병아리를 보고 난 너무 기뻤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고작 병아리가 박스 위로 올라온 게 뭐가 기쁘냐고. 하지만 하루하루 그냥 숨이 붙어있으니 살아가는 내게 이 작은 녀석의 날갯짓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은 이제 엄연히 내 반려동물이다. 잠시 책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어린 왕자는 B612라는 소행성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씨앗이 하나 툭 떨어져 싹을 틔운다. 혹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소행성을 부술 만큼 크게 자라는 바오밥나무는 아닐까 걱정이 된 어린 왕자는 그 싹을 유심히 지켜본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싹은 꽃이 된다. 어린 왕자는 꽃을 위해 물도 주고 유리 덮개도 씌워주며 바람막이도 해준다. 이 꽃은 어린 왕자에게 가장 소중한 꽃이 된다. 나중에 지구에서 똑같은 꽃인 장미를 5천 송이나 발견하고 상심하게 되지만 결국 깨닫게 된다. B612에서 만난 장미는 어린 왕자가 오랜 시간 동안 직접 가꾸고 보살핀 꽃이다. 책에 나온 말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그렇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그토록 소중했던 이유는 그 장미와 보낸 시간들, 즉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인연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는 5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도 자신의 소행성에 있는 장미가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볼 땐 수많은 병아리 중 한 마리지만 내게는 소중한 병아리였다.

손을 잘 타는 닭

 이렇게까지 정이 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제 녀석에게 이름이 필요했다. 얼른 닭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닭"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나중에 닭이 되어도 바꿀 생각은 없다. 말 그대로 닭이니까. 가끔 닭을 집에 두고 외출을 하면 엄마가 대신 밥을 주고 풀어놓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방을 한 바퀴 돌며 나를 찾는 듯했다고 한다. 나를 인식하고 있는 거겠지? 기분이 좋았다. 닭이 내게 오고 난 후로는 병에 대한 생각을 예전만큼 하지 않아서 우울하지 않았다. 가끔 쟤는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애써 웃음 지으며 얘는 먹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이라고.

이전 06화 내 반려동물 이야기, 그 첫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