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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6. 2024

무너져 내리는 과정, 그 첫 번째

희귀·난치성 질환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돈 때문에, 건강 때문에, 사람 때문에... 저마다의 이유로 벼랑 끝에 서본 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건강 때문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 취업을 하기 전에 조금의 시간을 비웠다. 전역 후 조금은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한 달은 그저 재밌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통제가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런데 몸이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새벽에도 깰 정도로 화장실을 갔다. 아침엔 항상 아랫배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피가 났다. 혈변이었다.

 아플 때마다 병원을 가기보단 나을 때까지 잠을 자거나 쉬는 게 습관이 된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을 외면한 채로 병원을 피했다. 사실 무서웠던 걸까? 잠을 자면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 잠만 잤다. 한 달이 지나도록 말이다이제는 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일어서면 앞이 흐려지고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도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뛰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던 날, 머리에 스친 한마디. '위험하다.' 내 의지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내 몸이 보낸 메시지였을까. 10초도 걷는 게 힘들어 엄마에게 부탁해 택시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식은땀이 잔뜩 난 상태로 택시 안에서 1시간은 보낸 느낌이 든다실제로 병원까지의 거리는 5분도 채 안 걸리는 데 말이다. 시간 감각을 유지할 정도의 정신도 없었던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진료를 시작했다.

 "최근 변의 상태가 어땠나요?"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을 갔나요?"

 이외의 질문은 기억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가 끝나고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뢰서를 써줄 테니 지금 당장 가야 된다고.. 큰 병원이라는 단어를 직접 들으면 가슴에 커다란 철퇴가 떨어진 느낌이 든다. 엄마는 오죽했을까.


 의뢰서를 들고 가보라던 병원에 도착했다. 2차 대학병원이라고 한다. 오후 내내 기다리다가 드디어 진료를 봤다.

 "입원부터 하셔야겠습니다."

 진료와 동시에 입원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치료를 받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입원 후 며칠간 내 몸의 모든 곳을 검사했던 것 같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 한 가지는 바로 빈혈 수치다. 남성 평균이 13 정도인데 그 당시 나는 6이라고 했다. 잠깐만 걸어도 식은땀이 나고 앞이 흐려지는 이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장의 염증. 대장 전체에 염증이 심각하게 퍼져있다고 한다. 교수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됩니다."

 입원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만났던 이름이다. 내가 알기로는, 평생 낫지 않는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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