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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7. 2024

무너져 내리는 과정, 두 번째

궤양성 대장염

 궤양성 대장염이 의심된다는 교수님의 말은 나와 엄마의 정신을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다.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이 생기는 염증성 장 질환인데, 이게 낫지도 않고 완치 방법도 없다고 한다. 평생 약을 복용하고 약에 내성이 생기면 생물학적 주사를 맞거나 상태가 심해지면 대장을 절제해야 하는 병이다.


 그게 아마 입원 후 2~3일이 되는 날 들은 말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의 말을 들은 이후, 나는 매일 밤 병실의 창밖을 보며 나오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울고 싶은 이유가 너무 갑작스럽고 와닿지 않으면 눈물이 안 나온다. 눈물도 어리둥절했던 것일까.

 그렇게 나오지 않는 눈물을 흘리는 밤,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궤양성 대장염은 복통이 말도 안 되게 심하다더라. 넌 그냥 대장염 같은 거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아들이 진단받을지도 모르는 병에 대해 찾아본 것이다. 죄송스러웠다. 건강이 최고라며 공부보다 건강을 더 챙기라던 아빠의 말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서의 밤은 너무 길었다.


 대장의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매일 스테로이드를 맞으며 치료를 받은 지 3일 차, 식사가 나왔다. 치료를 통해 급한 불이 꺼진 나의 몸상태는 드디어 정상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밥은 맛이 없다고들 했던가. 한 달 넘게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나는 5분도 안 돼서 모든 그릇을 비웠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되자 몸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다. 화장실을 갔는데 피가 안 나오는 게 어색했다. 복통이 사라진 게 신기했다. 스테로이드 치료를 통해 대장의 염증이 많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그리고 드디어 화장실을 하루에 한 번만 가게 된 날,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궤양성 대장염으로 의심 중일뿐 확실한 게 아니니 더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퇴원을 언제 할 수 있냐는 말에 들은 대답이었다. 물론 퇴원은 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큰 병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날에는 가슴에 철퇴가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더 큰 병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달랐다. 혹시 그냥 일반적인 장염이 너무 심했던 건 아니었을까? 더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궤양성 대장염이 아니라고 하지 않을까?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퇴원 후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어딘가 낯설었다. 주변의 모든 게 그대로인 게 이상했다. 나는 지금 난치병에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은 어느 하나 변한 게 없구나. 길을 걷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

 유리창에 비친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러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대답해 줬다. 유리창을 바라보느라 멀어진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내가 걷다가 멈춰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는데도 못 알아챘나 보다. 엄마도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빠져 있어서 그런 걸까? 엄마는 유리창과 무슨 대화를 했을까? 이 일이 엄마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뢰서를 가지고 3차 대학병원으로 향한 날, 2차 대학병원에서 했던 많은 검사결과를 확인하며 필요한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듣는 당일, 엄마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 궤양성 대장염이 맞습니다."

 이제는 피할 곳이 없다. 혈변을 보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내가 떠올랐다. 나는 그 공포를 계속 안고 살아야만 한다. 또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내 몸속의 대장이 왠지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이제 추적 치료를 계속할 거니까 그때처럼 악화되어 아플 일은 없을 거예요."

 안심하라는 미소와 함께 교수님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기 힘들었다. 사람은 큰 충격을 받고 나면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공포감은 쉽사리 이겨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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