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지금은 저녁 9시 53분이다. 곧 하나 둘 잠에 들기 시작할 것이고 몇 시간 채 되지 않아 우리 아파트 단지 전체가 어둠으로 가라앉을 테다. 그러나 불은 꺼져도 모두가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또 모두가 눈을 감았다고 해서 모두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런 밤들, 나는 그런 밤들에 관심을 조금 기울여 보았다. 잠에 들고 싶어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꼭 감고 터무니없는 상상들을 하다 지쳐 벌떡 일어서게 되는 그런 밤들 말이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너무 고되기에, 밤은 유일하게 주어진 휴식시간이다. 누군가에겐 잠자는 일이 너무나 소중할 테지만, 숨 막히는 일상들 사이 모든 걸 내려놓고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잠을 이루지 않고 멀뚱히 그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사색에 잠길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나는 밤을 적어나갈 것이다. 그 밤들이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칙칙할지언정 나는 써 내려가고 갈 것이다.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글을 전하고 싶을 따름이다. 곧 밤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나는 고요히 기다린다.
이 글을 분류해야 한다면, 에세이로 분류하고 싶다. 내가 굳이 분류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터다. 나는 이 글이 얼마나 서투를지 누구보다 잘 안다. 에세이보다 소설을 훨씬 더 많이 읽었던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걸 너는 곧 증명하게 되겠지, 하고 누군가가 말한다. 내가 과연 그 말을 반박할 수 있을까?
없다. 분명 없다. 그러나 나는 꽤 낙천적인 인물이다. 눈부신 성공 이전에 서투른 시작이 없다면 이 얼마나 시시한 일대기인가. 나는 분명 믿는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안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구원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글을 써본다.
전적으로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나는 이 글의 뿌리를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굵은 뿌리는 이 에세이이다. 짧고 사진이 많이 첨부되어 편하게 읽기에 아주 적합한 에세이였다. 나는 글을 읽다 생각에 사로잡혀 읽어나감과 동시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글은 그런 잡념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평안한 스코틀랜드와 위스키. 에세이는 이런 것이구나. 나는 앞으로 이 브런치를 통해 글을 써 나갈 것이고, 그 글 중 에세이인 것은 전적으로 이 에세이에 빚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것은 진솔함이다.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나는 거짓말을 꽤 많이 해왔다.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일인 것쯤은 안다. 그러나 이 새하얀, 누군가에겐 새까만 이 화면 속에 적힌 글자들은 진실을 고하고 있기를 작가인(나는 감히 나를 그렇게 불러본다.) 나는 바라본다. 때로는 내 진솔한 글이 지나치게 진솔한 탓에 구질구질해 독자들을 넌더리가 나게 만들지언정 나는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한다.
또 밤은 필연적이고, 그런 밤을 받아들이는 나는 아주 짓궂기에 이름을 붙여주고야 만다. 잠 못 이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