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13개의 잠 못 이루는 밤
지금은 새벽 1시이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개 사람들이 그러하듯 불을 끄고 이불을 덮고 더운 날씨를 조금이라도 식혀보려 선풍기도 틀어보지만, 잠은 멀리 달아난다. 잠 못 이루는 밤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밤을 시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밤을 하루의 끝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구성하는 13개의 밤만큼은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3개의 밤이라는 독특한 상상은 사실 내 것이 아니다. 어느 유명한 팝가수에게서 가져온 아주 독특한 소재이다.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앨범 Midnights다.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들은 너무나도 흔한 것이라 거들떠볼 필요도 없다고 여길 수 있으나 나는 그녀가 모은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13개(13 sleepless nights)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최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내게 있어 아주 제격인 소재였기에, 나는 오늘 이루지 못할 잠이 멀리 떠나가기를, 그렇게 내 밤이 시작되고 내 글이 쓰여 나가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 짤막한 13개의 글들 속에서 나는 내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하루 중 가장 감상적이고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몽환적이며 때로는 야릇한, 나는 밤에 대해 아주 엄밀히 적어나갈 것이다.
오늘은 그런 나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 중 가장 첫 번째 날인 것이다. 앨범으로 따지면 첫 번째 트랙. 나는 이 글의 시작점인 테일러 스위프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1월이었다. 단지 나는 여러 팝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을 즐겼을 뿐이었고, 그녀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서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 원인은 아마 그녀가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최고의 팝 스타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어갔다. 위대하지만 은밀한, 나는 그녀에게 아주 깊이 빠져든 것이다. 내 주위의 모두가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게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가지길 원하고 그 취향이 고급진 것이기를 내심 바랄 따름이다. 내게 있어 테일러는 나의 고유하고 고급진 취향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밤 단순히 테일러 스위프트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이다, 남들의 시선에 관한 것이다. 내게 있어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답할 것이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며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기괴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손가락질 세례를 받으며 행복해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에 날이 서있을지언정, 그들의 시선에 내가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많은 노래와 책과 영화와 문장들이 그러하듯,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주눅이 들어 남들처럼 보이려 애를 쓸 테다. 그러다가 그마저도 실패하게 된다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이 드는 이가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현명한 이는 늘 멍청한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에게 에너지를 쏟지 말라고. 그러나 겁쟁이인 내게 그들을 무시하기란 옥상에서 과감히 뛰어내리라는 것과 같다.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빠를지, 나는 알 수 없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릴 뿐이다. 나는 나를 싫어하는 이들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두고야 만다.
그 모든 시선들을 묵묵히 감내하고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 어느 정도 높이인지도 모를 건물의 옥상에서 대담하게 뛰어내리는 것, 진정으로 내가 되는 것. 나는 그것을 내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함으로써 내가 어떤 시선을 받을지는 뻔히 알았다. 괴짜, 별종. 그러나 나는 튀는 것을 사랑스럽게 여겼기에 그 정도는 괜찮았다. 오히려 즐겼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튄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조용한 체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지 수시로 확인할 것이다. 또다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밤이 되면 모두 침대라는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가능한 한 가장 편안한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된다. 모두가 그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밤만 되면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고 이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나를 싫어하는 그들도 곧 밤이면 모두 곤히 침대에 누워 잠을 잘 것이고, 나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가장 편안하고 안락하게 무너져도 되는 것이다. 밤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기에.
아직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확고한 내가 될 수는 없지만 , 그래도 짧은 인생을 살아옴으로써 내가 아는 나의 아주 작은 특징들 중 하나가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이다. 나는 그녀의 앨범과 노래에 열광한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확실한 나라는 존재에게 명확성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녀인 셈이다.
밤의 끝이 다가온다. 밤의 시작은 아주 늦고 그에 비해 밤의 끝은 너무나 빨리 다가온다. 그렇기에 그 짤막한 순간들이 더 소중하고 반짝거리는 것 아닐까? 시끄러운 선풍기가 돌아가고 작은 타자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이 반짝거리는 새벽.
이 글을 끝마쳐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그전에 이 글을 읽는 이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해야겠다. 앞서 나는 모두의 시선에 날이 서있을지언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그것은 너무 가혹하기에 나는 조금 수정하고 싶다. 나와 나를 사랑해 주는 몇 명을 제외한 이라는 문구를 넣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본래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함부로 낭비해선 안 되는 것이기에, 나는 이 단어를 이 글의 마지막에야 넣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 말이다.
불은 꺼지고 타자 소리도 멈춘다. 가녀린 숨소리가 곧 들려오겠지만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누가 듣는단 말인가? 그러나 새벽이라고 모두가 눈을 감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눈을 감았다고 해서 모두가 잠에 든 것은 아니다. 이 가녀린 숨소리가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하는 또 다른 밤에게 전달되기를, 또 다른 밤이 피어나기를 소심하게나마 바라보며, 잠 못 이루는 밤의 끝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