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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Sep 10. 2024

옆집 할머니 제니퍼

미국 (이 동네) 유기 동물 입양 조건


옆집 할머니 제니퍼는 올해 82세로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이다. 일찍이 이혼하고 혼자 산다. 제니퍼는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그래서인지 책으로 영어를 배운 내가 알아듣기 편한 영어를 구사한다. 문법 영어 세대인 나는 오히려 전직 영어교사 제니퍼의 칭찬을 꽤 듣는다. 자기 학생들보다 백번 낫단다 ㅋㅋ.  그러다 한 번은 웬만한 대학생보다 낫다고 승급을 시켜줬다. 뭔가 이메일 보낼 일이 있어 제니퍼에게 이메일을 쓴 후였다. 넵. 영어를 글로 배웠습니다. ㅋㅋㅋ


제니퍼는 이 동네 HOA Board (Homeowners Assosiation 운영회) 회장을 15년째 연임 중이다. 매년 늦가을이 되면 동네 안 공원에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며 파티도 하고 또 다음 일 년간 일할 회장단을 선출한다. 제니퍼는 한 번도 안 빠지고 계속 회장으로 선출됐다.


우리 동네 회장단은 회장 부회장 서기 총무 총 4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단지에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다. 회장단은 한 달에 한번 모여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가로등을 교체하거나 수영장 안전요원을 섭외하는 등 소소한 일부터 잔디와 정원을 책임질 업체 선정하기, 아스팔트를 새로 깔거나 담장을 새것으로 교체하기 같은 큰 프로젝트를 결정한다. 회장단이 아닌 일반 주민도 아무 때나 참석해서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보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명예직이다.


제니퍼가 계속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은 그도 그럴 것이 그이처럼 바지런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6시면 벌써 동네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한다. 쓰레기트럭이 아무렇게나 놓고 간 쓰레기통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강아지 똥봉투를 채워 넣고 미팅 안내나 공지를 잘 보이는 곳에 내건다. 그리곤 구석구석 망가진 곳이 있는지 살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니 현관문을 나서면 제니퍼를 볼 때가 많고 마침 옆집이라 자연스레 친해졌다. 제니퍼는 자기 집도 늘 이것저것 수리했다. 그이가 여기저기 손 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집수리 하는 방법과 재료 고르는 방법을 배워 꽤 많은 곳을 수리할 수 있게 됐다.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은 인부를 쓰는데 제니퍼의 소개로 페드로를 고용해서 일을 맡겼다. 페드로는 이름으로 유추가 되듯이 히스패닉계다. 발이 넓은 제니퍼는 페드로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영어는 짧지만 성실하고 일솜씨가 좋아서 점점 이 단지 많은 집의 굵직한 수리 프로젝트를 따냈다. 페드로는 오 년쯤 지난 후엔 영어가 꽤 유창해졌고 사장님이 돼서 직원을 부렸고 다른 동네로도 영역을 확장해서 너무 바빠진 나머지 예약 잡기가 힘들어졌다. 그 후 페드로만큼 성실한 수리공은 다신 만나지 못했다.


제니퍼는 재테크에도 밝아 주택을 여러 채 소유한 부유한 할머니지만 길을 가다 버려진 물건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 번은 제니퍼와 함께 점심 먹는다고 가까운 샌드위치집을 가는 길이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길 옆 숲 속에 버려진 우산이 보였다. 딱 봐도 많이 망가져서 고쳐쓸 수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제니퍼가 결국 비집고 들어가 우산을 들고 펴보려 애쓴다.

“Are you sure?” 묻자,

이건 좀 아니지? 하는 표정으로 우산을 내려놓고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 어려서 너무나 가난하게 살아서 물건을 함부로 못 버린다는. 한국할머니에게서나 들었을법한 말을 미국할머니한테서 정기적으로 듣는다.


제니퍼는 나이가 나이니만큼 지난번 대화 내용을 까먹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어쩌면 변덕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일은 아니어서 그냥 흘려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HOA board 미팅에 참석한 남편이 씩씩거리고 들어왔다. 제니퍼가 지난달에 결정된 사안을 완전히 뒤집는 발언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일을 할 때 혼선이 빚어지고 시행이 지연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나이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변덕을 부렸을 거란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서기가 회의록을 작성했을 텐데 뒤집힌 걸 보아 변덕이었을 경우에 무게가 실리긴 한다. 여하튼 정확한 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노령인 제니퍼의 건강이 살짝 걱정이 되는 날이었다.


제니퍼 집 앞 화단에는 깨끗한 그릇에 고양이 밥이 항상 놓여있었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매일 밥을 먹으러 오고 있었다. 반년이 넘게 밥을 먹이면서 집안으로는 들이지 않는 제니퍼의 생각이 궁금했다.

“혹시 입양 생각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며 한국과 미국의 유기동물단체에 후원하는 나는 제니퍼가 그 고양이를 입양해서 중성화도 시키길 은근히 바래고 있었다.

제니퍼는 잠시 생각하더니 원래 애완동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다만 불쌍한 고양이 한 마리쯤 밥 주는 건 좋은 일이라 자기가 이 집에 사는 동안은 밥을 주겠단다. 어쩐지 우리 강아지한테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어 본 적이 없다. 예의상 했나 싶은 정도의 cute 한마디로 끝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 강아지한테 관심이 없진 않았다. 우리 큰 강아지 대강이는 암에 걸린 전적이 있고 완치도 했다는 걸 제니퍼도 잘 알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자기 여동생에게 대강이 이야기를 했단다. 여동생이 대강이 먹이는 밥 레시피를 부탁했다기에 열심히 적어 주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제니퍼가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유기견을 한 마리 입양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더니? 기를 생각이 없다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젠 키우겠단다.


대강이와 똑 닮은 개를 한국에서 입양하게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자기는 랩독(Lap dog: 직역하면 무릎강아지. 작은 크기의 개란 뜻. 8킬로 대강이는 한국에선 중형견이지만 미국에선 소형견 취급 당함 ㅎㅎ)을 원하므로 더 커도 안되고 더 작으면 밟힐까 봐 안되니 딱 대강이 크기여야 하고 얼굴이랑 털도 딱 대강이를 닮아야 한다나. 대신 수컷 말고 암컷으로 찾아 달란다. 한 마디로 암컷 대강이를 찾으라는 거다 ㅋ… 대강이를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었다니!


입양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차고 넘치는 한국에서 한 생명을 구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오케이를 했다. 그리고 써치에 들어갔다. 금방 찾을 줄 알았다. 평소에 대강이 닮은 애를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 똑 부러진 조건에 맞는 개가 영 보이질 않았다. 그때 느낀 건데 유기동물 보호소 공고에 올라온 개들은 수컷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마침 한국에 갔다. 한국에서 대강이를 참 많이 닮은 암컷 강아지를 만났지만 아쉽게도(& 기쁘게도) 엘에이 지역으로 입양이 확정된 아이였다. 몇 달 후 빈 손으로 미국에 돌아갔다.


미국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된 날이었다.

딩동! 현관에 제니퍼가 보였다.

현관문을 열자 놀라움과 반가움이 나를 맞았다. 하하하하!  제니퍼가 하얀 강아지를 그것도 대강이와 기가 막히게 닮은 강아지를 안고 서 있었다. 말 그대로 대강이의 여자버전 강아지!  웃느라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제니퍼가 이 강아지를 어떻게 데려오게 되었는지 속사포처람 말하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폰을 가져와 사진부터 찍었다. 이건 남겨야 돼!


제니퍼의 강아지 입양 과정은 한국에선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원하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입양신청을 했다. 그리고 입양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보호소에 매일 가서 자원봉사를 해야 했단다. 두 달간 보호소를 청소하고 산책봉사를 하고 나서야 강아지 입양이 허가되었다고.


강아지를 입양한 제니퍼는 검은 고양이도 입양해 집안으로 들이고 중성화를 시켰다. 바깥 생활에 익숙한 고양이를 위해서 낮에는 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다행히도 집으로 잘 찾아드는 고양이. 길고양이 때 한 번도 집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문을 긁거나 하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단번에 집고양이, 외출고양이로 적응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동물의 세계다.


그리고 얼마 후 제니퍼는 옆 동네에 잔디마당이 넓은 주택을 사서 동물들을 데리고 이사했다. 계단이 많은 타운홈 구조에선 강아지와 고양이의 배변 수발이 쉽지 않다. 이사 후 맘껏 문을 열어놓고 동물들이 자유롭게 잔디를 뛰어다니게 되었다.


제니퍼는 이사를 갔지만 이 단지에 계속 주택을 소유하고 회장직을 수행하는 중이다. 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제니퍼가 어떻게 활동할지 기대된다.



(I am a lap dog,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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