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 많던 202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홍명보가 재선임되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역대급 성적을 보고 참담한 심정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내가 적어두었던 글을 다시금 올려본다.
2년 뒤, 12년 전의 나의 글에서 비롯된 비판과 비난이 답습될 것인지, 또는 개선되고 발전된 부분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래적 고찰(?)을 하고 싶다.
2014년 06월 27일, 17:38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은 無]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이 모두 끝났다.
기대했던 우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선전은커녕, 내 눈을 썩어버리게 만든 똥망스런 경기력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만 했다.
1. 진부하지만 엔트'으리' 선발의 大+犬 실패
(1) 유럽파= 베스트 11?
이번 국가대표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단순히 소속이 된 것이 아닌)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혹자는 말할 수 있다. 유럽의 빅 클럽에서 뛰는 것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하지만 박주영의 사례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유럽 클럽의 소속된 1명과 유럽 클럽에 소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베스트 11(또는 이에 준하는)에 포함된 주축 선수와는 엄연히 다르다. 손흥민, 구자철, 박주호, 지동원, 홍정호로 이어지는 분데스리가 라인과 기성용, 김보경, 이청용, 윤석영, 박주영의 EPL+챔피언십의 잉글랜드 라인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손흥민, 박주호, 홍정호(부상), 이청용(부상)을 제외하면 이들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들이었다. 그러나 클럽의 이름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전 혹은 이에 준하는 자리를 보장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명보는 2013년 이 팀의 감독을 맡는 순간부터 겉과 속이 다른 허울뿐인 원칙론만 언론에게 뿌려댔다.
(2) 박주영은 대체 왜 월드컵에 나간 것인가?
나는 사실 박주영의 엔트리 승선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과론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돌이켜 보아도 이 팀은 이른바 '경험론자'가 부족하다. 경험론자라는 것은 정신적인 압박이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월드컵이 어떠한 것이고 그 안에서 나의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하고 싶다. 박주영은 그 경험론자에 적합했다. 홍명보는 박지성을 그 적임자로 판단했겠지만 박지성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박지성은 이 팀에 승선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후술) 어찌 됐든 박주영은 월드컵 2회 출전 경험, 그리고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얻은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중앙 공격수로서 득점을 해보았다는 다양한 주요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홍명보는 박주영에게 2가지를 기대했을 것이다. 팀의 구심점 역할 그리고 골(Goal). 그러나 박주영은 그저 1슈팅과 1미안 1엄지로 그의 마지막 월드컵을 정리했다.
(3) 삼천포: 박지성이 바보인가?
생각해보자. 당신이 박지성이라고 생각해보자(100% 나는 박지성이다라고 가정하란 말이다). 왜소한 체격과 명지대라는 비주류 출신, 게다가 스타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허정무에게 발탁되어 열심히 까이던 나 박지성. 그 시절 대표팀에서 처음 같은 방을 쓴 영원한 리베로, 막말로 아우라 쩌는 명보형이 이제 나를 월드컵에 데려가고 싶다고 언론플레이하고 네덜란드까지 날아와서 설득한다. 말이 쉽지, 거절한다는 건 후배된 사람으로서 굉장히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답은 명쾌하다. 나는 봤다 이 똥망팀의 경기들을. 내가 이 팀에 들어간다고 이 팀의 클래스가 업그레이드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고 무릎에 물이 차고, 브라질은 컨디션 조절하기도 안 좋다. 다른 것들을 차치해도 일단 16강에 가면 본전, 못 가면 국민들은 일단 화살을 나에게 쏘아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 팀은 절대로 16강에 갈만한 팀도 아니다. 미안해 명보형...
소결: 홍명보는 애시당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막말로 그저 난 영원한 리베로이자 모든 국민들이 존경하는 2002년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니깐. 원팀 원스피릿만 외쳐대면 내 애제자들이 다 해결할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주역들 모아서 그 때만큼만 하면 16강? 그 따위 것들 다 할 수 있어 따위의 안이한 준비자세를 가졌을 뿐이었다. 8강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외쳐댈 때 나는 저 사람 미쳤구나?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할까라는 의구심부터 들었다.
2. 개인 기량의 차이? No! 無조직력과 無전술이 주범
(1) 뜨거운 냄비언론, 평소 축구는 보고 말하는가?
오늘 아침 언론에는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진다. 그 안에 개인 기량의 차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과연 개인 기량의 차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이기에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이 놈의 '개인 기량차'라는 단어 조합은 20년이 흐르도록 등장하는지... 개인마다의 기량 차이는 우리 선수들 뿐만이 아니라 각 팀별로 상대적으로 늘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 팀의 문제는 개인 기량의 차이가 아니다. 보고도 모르나? 각 개인 기량의 장점들을 결집하고 단점들을 최소화하는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팀조직력의 부족이 문제였다.
(2)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의 교집합은 없다
이번 2014 월드컵의 大+犬 실패는 비단 홍명보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트사커를 표방한 조광래의 축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색깔을 아예 바꿔버리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건 노란색을 레몬색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 노란색을 파란색으로 만드는 아주 엄청난 시도였는데도 불구하고 개뿔 스페인축구에 따라간답시고 어설픈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만약 아트사커, 패싱축구, 스페인식 축구를 하고자 했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을 변경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최강희의 축구는 닥공으로 대표된다. 닥공이란 무엇인가? 닥치고 또라이처럼 공격하라는 게 아니라 닥치고 공격할 수 있을만큼 서브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공격하고 골을 얻고 만약 실점하면 다시 재정비하고 또 공격하여 골을 얻을 수 있도록 엄청난 조직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닥공을 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조직력은 기성용 파문으로 종결되었듯이 개판이었다. 최강희의 할아버지가 왔어도 최강희의 전북색을 입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축구협회의 선택은 홍명보였다. 홍명보라는 것은 기성용 파문으로 불거졌던 바와 같이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아닌 '선수' 중심의 대표팀 구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홍명보가 내세운 것이 그 놈의 One Team. 의미는 하나의 팀으로써 톱니바퀴 굴러가듯이 한국만의 전통적인 스피드와 조직력을 가지고 유럽파들의 창의성과 공격력을 겸비한 강한 팀. 그러나 그러기에는 감독의 역량도 역부족, 선수들의 정신상태 역시 너무나 부족했다. 그리고 더욱 심각했던 건 4년간의 대표팀 운영에서 얻은 그 어떠한 수확이 없었다는 것이다.
(3) 기억하는가? 아시아 지역예선 카타르전의 졸전을.
2013년 3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브라질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암 홈에서 열리는 카타르전을 승리하면 브라질에 가는 9부능선을 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1대1. 카타르의 침대축구에 숙면을 취할 뻔 했던 경기에서 손흥민이 주어먹다시피 한 골로 간신히 살아났다. 나는 그 경기를 직관하였고, 이미 알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이 팀은 힘들다.'라는 사실을. 전술조차 없이 움직이는 선수들과 골 결정력은 개똥망 of 똥망이었던 경기를 보고 어떠한 기대감을 가지는 건 정신나간 사람이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대표팀과 우리 언론들은 그저 허울뿐인 화려한 결과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4) 無전술
내가 스포츠 기자라면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묻겠다. "홍 감독님, 우리 팀의 주요 전술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이 글을 끝까지 보고 있다면 제발 대답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대체 우리 팀의 전술은 무엇인가? 중앙공격? 측면공격? 역습공격? 전방 압박을 통한 경기 주도권 차지? 수비에 중점을 둔 수비축구? 결론은 그저 無전술이다. 우리와 한 조에 편성된 팀들은 우리 팀을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드컵 9회 진출에 2002년 4강, 2010년 16강이라는 성적을 보고, 단순하게 아시아의 변방축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무게감이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전에서 이미 우리의 無전술은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알제리는 정확하게 이를 간파했었을 뿐이고, 홍명보와 애제자들은 그야말로 뽀록으로 얻어낸 이근호의 골로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들떠있었다. 역습 시 한 번에 치고 올라가는 스피드도 없었으며 수비가 대단히 두터워 뚫기 어렵지도 않았으며 중앙에 위치한 유럽 클럽에 속한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매섭지도 않았으며 양쪽 윙백의 오버래핑은 전혀 없으며 그렇다고 윙어들의 측면 공격도 간헐적이며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강하지도 않았으니 알제리는 우리 팀을 대비하기가 생각보다 매우 쉬웠을 것이다. 그저 기성용과 한국영을 축으로 하는 중앙 미드필더진과의 싸움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느려터진 중앙수비의 뒷공간은 언제나 비어있었고, 양쪽 윙백 2명의 오버래핑이 없으니 공격진은 수비 커버부담이 없어 전진 배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원톱으로 서 있는 박주영이라는 아스날 출신 공격수는 생각보다 너무나 특징이 없는 무난한 공격수이니 그저 손흥민이라는 레버쿠젠 공격수에 집중을 하면 그만이었다.
3. 반복되는 청사진, 결과는 늘상 흑백
2002년의 영광을 되새김질하기엔 무려 12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월드컵이 시작될 무렵엔 항상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만 반복할 뿐, 2006년과 2010년의 대한민국 활약상은 간헐적으로 볼 수 있다. 4강이라는 大업적은 사실 나와 같은 오래 된 축구팬이라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고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2006년과 2010년의 대표팀은 분명 하나와 둘, 셋으로 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클래스를 높여 놓았다.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자원들을 가지고 시작한 2014년 대표팀은 흔한 언론들의 기사제목처럼 1990년 신인 홍명보의 월드컵 도전기로 회기하고 말았다. 향후 4년이란 시간 동안 또 다시 세계축구의 흐름이 바뀔 것이고 우리에게도 또 다른 스타들이 나타나 기쁨을 줄 것이다. 흐름에 맞추어 또는 K리그에서 거둔 성적을 기준으로 대표팀 감독을 제비뽑기 하듯이 대충 선정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갈아엎어버리는 뭐같은 행정력은 4년간의 고생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짓거리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CU@K리그'
2002년 월드컵 당시 마지막 카드섹션의 주제였다. 이 후, 12년이 흐른 K리그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2부리그와 승강제 도입은 분명히 긍정적인 시스템 변화이지만, 자국리그는 단순하게 순수한 경기력으로는 절대로 흥행몰이를 할 수 없다. '스토리 셀링'이 없는 자국리그를 보러 가는 이들은 나같은 축빠가 대부분이다. 표 한 장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유럽리그와 달리 표 한 장 따위 마음만 먹으면 초대권을 쓸어버릴 수 있는 K리그에 과연 당신이라면 돈 내고 시간을 투자하겠는가? 철저하게 경제성의 논리를 버린 K리그 '시장'이라면 나 역시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허구연의 기승전돔과 같이 나와 같은 미미한 축구팬도 기승전K리그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면 입으로만 그러지 말고 그럴듯한 청사진을 팬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왜 축구연맹과 축구협회는 허구헌 날 팬들과 언론에게 그 청사진을 보여달라고 징징대고 있는 것인지... 마계대전과 북패, 남패론, 수원-서울 더비도 이제는 진부하다. 수없이 많은 스토리 셀링이 없는 한, 절대로 축구팬들은 축구장에 자기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홍명보는 월드컵을 준비하며 과연 K리그 경기를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일까?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는 나를 포함한 축구팬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눈과 귀를 열지 않고 축협아빠가 다 해주는 축협보이 홍명보 감독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