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혁 군인 아저씨를 찾습니다"
|그날|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13살 때 "나의 박상혁 군인 아저씨"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수업을 마친 후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서, 다시 세수를 하고, 짧은 단발머리의 앞머리는 실핀으로 넘겨 고정하고, 옷가지를 고르려니 다 후줄근하고 또 바지뿐이라, 다시 교복의 하얀 카라를 손으로 빨고 다려서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는, 약속한 곳 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이었지만, 1시간 전에 서둘러서 가기로 하였다.
박상혁아저씨께서는 우리 동네에는 처음 오시는 거라서, 홍제 전철역 근처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다행히 날씨는 봄날이라 따뜻하였고, 해도 적당히 내려쬐는 걷기도, 기다리기도 다 너무 마음에 흡족한 날이었다.
|만남|
쭈뼛거리며 빵집 앞에서 기다리면서, 쇼윈도에 비친 모습도 다시 한번 봐보고, 단발머리도 손으로 다시 정돈해 보면서, 너무 떨리고 긴장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데, 함박웃음을 띠신 정말 멋있는 군인 아저씨께서 내 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저만치에서 보였다.
"와.. 우리 박상혁 아저씨인 것 같은데, 악 어쩌지? 뭐라고 말씀드리지? 나 오늘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부은 것 같지? 악.. 어떻게.. 거의 다 오셨는데, 웃어야 할까? 아님 고개 숙이고 먼저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릴까?"
백만 가지 생각이 그 찰나의 순간에 중1 짜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너무 부끄럽고 또 어쩔 줄을 몰라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꼭 잡고, 입술끼리 모아서 인중을 늘어뜨려보기도 하고, 애꿎은 단발머리는 계속 귀뒤로 넘기고 있는데, 아저씨께서 성큼성큼 멋진 군복에, 군인 백팩도 뒤로 메시고는 나에게 걸어오셨다.
"안녕, 네가 선영이구나! 맞지?"
"안녕하세요 박상혁 군인 아저씨, 저 선영이 맞아요 "
" 일찍 나왔구나, 아저씨도 너무 일찍 도착하여서, 동네 구경하러 가보기 전에 제과점 위치부터 알아놓으려 했는데 벌써 나와있었네. 정말 부지런하네! 배고프지, 얼른 들어가자!"
|감동- 빵집안 선영이|
아저씨께서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를, 귀여워하시는 표정으로 보시면서, 제과점 안에 테이블 쪽으로 오라 하셔서 같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선영이 빵 좋아하니? 무슨 빵 좋아해?
아저씨가 그동안 선영이 편지에 너무 고마와서, 휴가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만나러 왔어. 어차피 이번 포상 휴가는 선영이 위문편지 덕분에 나온 것이기도 하고"
"저는 원래는… 단팥빵 좋아하긴 하는데..., 아... 저는 근데 괜찮아요. 이따 집에 가서 저녁 먹으면 되는걸요"
"무슨 소리야, 또 다른 빵은 안 좋아해? 크림빵도 시켜줄까? 아저씨는 단팥빵도 크림빵도 좋아해"
실상 심한 빵순이 중증이었던 나는 (나중에 신라호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씨께서는 큰 빵 두 개와 따뜻한 우유까지 주문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형제자매가 없고 부모님만 계셔서, 늘 동생이 있었으면 했었는데, 선영이가 위문편지를 몇 번이나 보내주어서, 힘든 훈련 중에도 정말 힘이 나고 너무 고마왔단다. 그래서 꼭 직접 얼굴 보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13살의 나는 너무 감동하고 벅차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아저씨께서 사주신 정말 맛있는 빵과 우유를 행복하게 그리고 황공하게 즐기면서,
눈 오는 날 빵집 밖에서 지연이를 오래 기다리던 내가 아닌 (글, "빵집안 지연이" 참조), 멋지신 군인 아저씨와 빵집 안에서 앉아 있었던, 그 꿈만 같았던 시간이 마치 오래전에 본 감동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내 가슴속에 예쁘게 저장되었었던 것을 글을 써 내려가면서 꺼내어 보고 또다시 가슴이 울컥해진다.
|선물|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내게는 멋진 "나의 박상혁 아저씨"를 직접 만나서 칭찬과 감사의 말씀 그리고 맛있는 빵과 우유까지 사주신 것만 해도, 내가 보내드린 작은 편지들에 비하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과한 선물이었었는데, 아저씨께서는 따로 나를 위한 선물까지 포장해 오셔서 가지고 오셨었다.
너무 예상치 못했었던 깜짝 선물이라, 감사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그저 어리벙벙하여 "감사합니다"라고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던 어리숙했던 그때의 나였다.
지금의 나라면 돈도 없고 힘든 군인 아저씨를 위한 선물을 준비를 하였을 것을.... 그때 13살의 나는 버스표 한 두장 외에는 가진 게 없었고, 또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던, 미성숙의 아이여서... 죄송해요 박상혁 아저씨!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주시며, 나의 아저씨는 따뜻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선영이가 나에게 보내준 힘나는 위문편지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선물이야. 집에 가서 풀어보고, 건강하게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렴"
집에 와서 풀어본 선물은 예쁜 일기장과 그리고 내가 전부터 갖고 싶었던 시집이 들어있었다.
나는 너무 가슴이 뭉클하고 또 정말 배려 깊으시고 착하신 아저씨의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시집과 일기장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내 책상 위였었기에...
|박상혁아저씨를 찾습니다|
내가 13살이었을 때, 그 당시의 군인 아저씨는 19살에서 22살 정도였을 테니, 아마 박상혁 군인 아저씨께서는 지금쯤 마음 좋으시고 선한 인상의 60대가 되어 계실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나의 청 멜빵 사진을 보신다면, 나를 분명히 기억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처음 "소문난 이발관"을 써보기로 생각을 할 때부터 마지막 회의 제목은 "박상혁 군인아저씨를 찾습니다"로 이미 결정하였었다.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사시는 지는 몰라도, 박상혁 아저씨의 따뜻하신 마음과 격려 덕택에 그 숱한 순간들 중에도 용감하게 버텨내는 어린 시절을 보냈었고, 학생 때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큰 응원이 되었던 것 같다.
"박상혁 아저씨,
어렸었던 저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신 덕분에 잘 자라나고, 지금도 열심히 잘 살아내가고 있습니다.
혹시 제 글을 보신다면, 혹 언젠가 한번 뵐 수 있다면, 이번에는 제가 정말 맛난 음식 꼭 대접해 드리고 또 그때 너무 감사했었다고 직접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슬펐던 소문난 이발소 사건을 기억만 해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꿔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그때 저를 아들로 보신 이발소 언니가 다 고마울 지경이었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족분들 그리고 자녀분들도 다들 평온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아저씨께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편지를 쓰고 있는 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중학교 1학년 생이 되어 박상혁 군인아저씨게 위문편지를 쓰고 있는, 감사하고 설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이미지: Pexel,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