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버린 아이
귀찮은 눈초리로 눈살을 찡그리는 정해진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는 화를 삭였다.
“자는데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교과서와 연필은 필수품 아니겠습니까? 어디 있는지 찾아서 책상에 올려놔 주세요.”
아이들에게 늘 경어를 써 온 그였지만 비아냥에 배배 꼬인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그런 그의 태도를 오히려 조롱이라도 하듯 정해진은 눈을 감은 채로 책상 속을 더듬어 책 한 권을 꺼내 올렸다.
“이건 교과서가 아니잖아요? 어디 봅시다. ‘초원의 덫’이라…. 이건 판타지 소설 아닌가요?”
“……”
야마시타 겐조, 굵은 고딕체로 박혀 있는 원작자 이름이 힐끗 눈에 들어왔다. ‘수십 명의 복제된 자신을 관리하며 생을 실험한 초유(初有)의 운명론자! 그의 반란이 시작된다.’ 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 소개가 퍼뜩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책갈피를 헤쳐 보다 말고 책상 위로 책을 내던졌다.
“불온서적이군!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과 연관 없는 책이라면 당연히 불온서적이겠지? 더구나 교과서도 준비 안 된 상황이라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정해진은 말이 없었다.
“널 복제하고 싶니? 그렇다면 수업시간만큼은 제대로 복제된 널 데리고 다녀라. 연필은 어딨어?”
정해진이 천연덕스럽게 짝꿍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볼펜을 받아든 정해진이 허리를 세우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엉덩이를 의자 끝에 간신히 얹어놓은 모습이 이미 반은 드러누운 자세였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책 있고 연필 있고 일단 눈도 떴으니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 말소리만 없다뿐이지 정해진은 그를 향해 그렇게 투덜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웠다.
“야. 이 자식아.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아? 버릇없는 놈! 일어서 임마. 가방은 어딨어?”
성령에 힘입은 신도가 방언을 쏟아놓듯 그는 참았던 울화를 빠르고 거칠게 토해냈다. 그리고는 정해진의 책상 주위를 눈으로 뒤지면서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가방 어딨냐니까?”
“가방 안 가져왔는데요.”
어이없게도 정해진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이미 선을 넘어선 바에야 물러설 것 없다는 기세였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허나 이쯤에서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한 해 동안의 수업 기류가 이 한 순간의 선택에 좌우될 상황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정해진의 뺨을 쳤다. 뿔테 안경이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살갗이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정해진의 안색은 태연했다.
“야. 이 자식아. 그게 자랑이냐? 배우는 학생 놈이 교과서도 없고 연필도 없고 수업이 시작되든 말든 머리 처박고 잠만 자는 게 잘하는 일이냐?”
상황은 묘한 반전의 기미를 보이며 학생의 문제가 아닌 선생의 문제로 변질되고 있었다. 큰 소리로 다그치면서도 그는 일단 이 사태를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기야 어찌되었든 자신의 손찌검을 최대한 합리화시켜야 했다. 반 아이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상황 설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해진의 뺨을 친 건 이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도를 넘긴 자신의 폭력이 장황한 훈계를 통해 어느 정도 에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도 태연하게, 떳떳하다는 듯이 고갤 쳐들고 있는 정해진의 표정이 결국 그의 부아를 돋우고야 말았다. 정해진은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순간, 그는 정해진의 왼쪽, 오른쪽 뺨을 번갈아 올려붙였다.
“이 자식아. 그래. 네가 지금 잘했다구 내게 대드는 거냐? 어디 눈을 똑바루 치켜 뜨구 함부루 입을 놀리는 거야?”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정해진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는 내심 당황한 기색을 숨기느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옆에 앉은 아이가 정해진에게 휴지를 건넸다. 코피 한 방울이 ‘초원의 덫’에 툭하고 떨어졌다. 입 언저리에 번진 코피는 아랑곳없이 정해진은 먼저 ‘초원의 덫’부터 닦았다.
“나가서 씻고 들어와.”
그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요즘 들어 감정 추스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실 별 일도 아니지 않는가. 수업 시간에 아이가 책도 필기구도 없이 책상에 엎어져 졸고 있다면 조용히 깨우면 될 것이고 그래도 계속 존다면 집에서 무슨 피곤한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계속 존다면 내 가르치는 요령이 워낙 재미없게 들리나 보다 하고 자기 탓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도대체 내가 무슨 능력으로, 아니 무슨 권한으로 저 아이를 바꿔놓으려는 것인가. 그것도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아주 천천히 길고 가늘게 내뱉기를 두세 차례 반복했다.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정해진의 담임을 찾았다.
“불행한 일이에요. 어쩌다 그놈 담임을 2년씩이나 하게 됐으니 말이죠. 벙어리 2년에 귀머거리 2년! 그게 정답입니다.”
정해진에 대한 선생들의 평가는 단호했다. 꼴 보기 싫은 놈, 싹수없는 놈, 내놓은 놈, 재수 없는 놈……. 그야말로 놈, 놈, 놈 시리즈였다. 두 달 전 김 선생 차 뒷유리를 박살내 놓은 것이나 교무실 유리창에 돌을 집어던진 것도 분명 ‘그 놈’의 소행일 거라고 동료들은 믿고 있었다.
“집안 사정은 어때요?”
“애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는 거 같고, 엄마는 전업주부라는데 확실치가 않아요. 집안 얘기만 나오면 도통 입을 닫아버리거든요. 애 아버지나 엄마하고는 통화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뭘 자세히 물어보는 것도 꺼려지고요. 지난 번 박 선생님 일도 집안 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정년 1년을 앞두고 있는 박 선생이 정해진을 달래볼 요량으로 아버지에 대해 물었더니 왜 오버하느냐, 우리 집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 수업이나 제대로 해라 등등의 험한 소리를 듣고 있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이 자식,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냐 하면서 손찌검을 하려고 했더니 정해진이 박 선생의 손목을 꽉 틀어쥐고 정년할 때 다 됐다더니 벌써부터 치매 든 거 아니냐면서 덤볐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정해진은 1주일 간 교내 봉사 처분을 받았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담임은 푸념하듯 말했다.
“걔뿐 아니에요. 제대로 수업 듣는 애들이 손에 꼽힐 정도니까요. 수업 중에 뭔가 열심히 적고 있어서 기특하다 생각하고 넘겨다보면 학원 숙제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죠. 교실 무너진 지 오래 됐어요. 저 액자 속에서만 살아있는 거지요.”
정해진의 담임이 턱짓으로 교무실 벽에 걸린 ‘바른 품성 5운동’ 패널을 가리켰다. ‘칭찬, 질서, 공경, 봉사, 나라사랑 ……’
문득 담배 생각이 났다. 끊은 지 3년이 넘었는데도 불쑥 담배연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흡연의 욕구는 마치 꼬리를 길게 끌며 떨어지는 유성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재빨리 사라지곤 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더욱 그랬다.
그는 인터넷 창을 열고 ‘연금공단’을 클릭했다. 예상 퇴직급여는 어제 그대로였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차이가 날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정색한 얼굴로 맨 아래 단위 숫자까지 또박또박 헤아렸다. 머릿속에 명퇴신청서를 썼다 지웠다 한 것이 벌써 대여섯 달 전부터였다. ‘그만 두면 그만이다. 그만 두면 그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암시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약효 빠른 진통제랄까. 그럴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저릿한 기운이 손가락 끝에까지 느껴졌다. 살갗 바로 아래층에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기라도 하듯이 뭔가 스멀스멀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약물 중독’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런 달콤한 유희는 늘 한 순간이었다. 여지없이 그는 수업 시작종에 멱살을 움켜잡힌 채 교실로 끌려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엔 가끔씩 중국 동진 때 시인 도연명을 떠올렸다. 칠판에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첫 다섯 구절을 적어놓고 넋두리하듯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도 있었다. 도연명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도연명 자신이 스스로 붙여 부른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는 자호(自號)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요. 벼슬길에서 물러난 도연명은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6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오류선생! 그의 고향 집 옆에 심어놓았던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 거기서 연유된 이름이 오류선생이지요. 내가 마음에 그리는 모습도 그렇거든요.”
그 후, 그에게는 분에 넘치게도 ‘오류선생’이란 별명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어쨌든 ‘약물 중독’의 부작용은 가볍지 않았다. 끊임없는 회의와 망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과연 교직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가. 나에게 있어서 교직이란 생계유지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지난 이십칠 년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보람도 거두지 못한 채 교단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는 지난해, 아이들이 써놓은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수업이 지루하다. 자장가 같다. 젊은 선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ㅅㅂ. 학생의 자존심을 깎아내리지 마라.……’ 교원평가 서술형 반응란에 아이들이 올려놓은 말들이었다. 고무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가슴 쓰린 말들이 더욱 많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가르쳐봐야 소용없는 놈들, 인간미라곤 전혀 없는 놈들, 머릿속으론 애들을 욕하고 원망했지만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 학기를 시작했다.
그가 정해진과 다시 부딪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후의 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