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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Nov 20. 2024

'떡목' 세 가락

공손한 혼잣소리

 내 친구 봉희(남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뽕나무에 올라가 뽕 열매를 따 먹다가 가지를 감고 있던 뱀에게 물려 새끼손가락 반 토막을 잘랐습니다. 현수라는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리어카를 가지고 놀다가 리어카 바큇살에 발가락이 끼어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잘랐습니다. 박병운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을 다쳐 다리에 철심을 박았습니다. 재력 좋고 탄탄하던 강만이는 무슨 장 알러지라는 것을 앓다가 면역력이 떨어져 지금은 앙상하게 말랐습니다. 부산 지하철 역장을 하던 선구는 난데없이 피부암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파열된 내장 다섯 군데를 꼬맸습니다. 그러고 보면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다들 잊기 어려운 사연들을 품고 삽니다. 오늘부터는 정말 좋아서, 정말 행복해서 도저히 잊지 못할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는 교감 출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자기소개서에도 그런 사실은 일체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전형 절차를 거쳐 배봉산 근처의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었습니다. 계약 기간은 6개월로 내년 2월말까지 근무합니다. 아내는 천생(天生) 교육자입니다. 아이들 가르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백수(白手)인 나는 안식구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운전기사가 되었습니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침상을 차립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는 빼놓지 않습니다. 어제는 총각김치에 양파를 넣고 푹 지졌습니다. 슬쩍 구운 김밥용 김을 사다가 썩썩 잘라서 상에 올렸습니다. 두부를 부치고 서산 어리굴젖도 한 접시 담았습니다.

 그 시간에 아내는 세수하고 단장합니다. 오른쪽 목에는 얼마 전 수술 받은 흔적이 뚜렷합니다. 다행히 회복이 빨랐고 후유증도 없습니다. 아내를 교문 앞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 문학회 카페에 들어갑니다. 오늘도 카페에 들어오는 회원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백수인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과가 되었습니다. 


 75세 이상 노인 중 70%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감각에도 노화가 일어난 탓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스트레스도 기운이 왕성할 때에 더욱 크게 느껴지겠지요. 걸러 들을 수 있는 능력,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요령, 이런 것들은 모두 생존을 위한 자구책(自救策)일 수도 있겠습니다. 불가항력(不可抗力)일 땐 주저없이 체념하고 조금의 미련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벤치프레스 중량 100kg을 거뜬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14kg 덤벨을 열두 번씩 꺾어 올리고 40분 내내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 수술하고 나서 한 달 열흘을 쉬는 사이, 기력이 눈에 띄게 쇠약해졌습니다. 엊그제부터 근력 운동을 다시 시작했지만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주저없이 과욕을 버렸습니다. 3년 후면 칠십이라는 현실을 수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단념, 체념 같은 것들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상책(上策)이요, 자구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궤변(詭辯)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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