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꿈을 품고 날아오른 날개

내 어릴 적 꿈을 물어보거나 얘기하라고 하면 비행기 타고 여행 가거나 외국에 가서 살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비행기를 타고 접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시절엔 비행기를 쉽게 타고 다니지 못하던 어려웠던 세대였다. 

첫 번째 비행이 결혼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갈 때였고, 그때 꿈을 이뤘다. 이후 여러 번 외국여행을 가게 되었다. 늘 꿈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던 시절, 어느 해 꿈처럼 찾아온 미래가 시작되면서 거대한 나라 미국으로 2000년 2월 이민이 시작된 날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은 2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당시 미국 내 한국인 이민자들은 주로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등에 정착했다. 이민자들은 주로 언어 장벽, 직업 적응, 문화적 차이 등으로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강한 적응력과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인 이민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던 시기로, 유학과 이민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긴 비행 13시간을 날아간 곳. 여행이라면 설레고 즐거웠겠지만, 삶의 목적이 다른 여행이라 긴장감으로 느낌과 뭉클함이 달랐다. 내가 꿈꾸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달리는 비행기 안에 있는 나는 마치 어릴 적 꿈꾸던 소녀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잠시나마 행복했었다.

두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남편 없이 먼저 입성한 곳. 겁 없이 도전은 현실로 옮겨와 시작점에 있었고, 모든 생각했던 계획이 하나씩 실행에 옮겨지고 있을 때 순간 심쿵... "아, 여기가... 미국." 잠시 깊은 상념을 갖게 했다. 

순간 멍해지고 머릿속이 까맣고 하얀 도화지처럼 아무런 상상을 그려낼 수 없도록 설렘은 잠시 경직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현실을 직시하며 멈칫했으나 그래도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용감한 선택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이들은 이미 미국이란 곳에 들떠 있었고, 실수와 실망 없이 하루하루 의미를 부여해가며 잘 지내주기만 바랐다. 지켜줘야 하는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보자 약속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완전히 다른 문화생활의 지혜로움을 배워가야 했다.

잠시 쉼을 갖고 난 후, 지인들의 도움으로 하나씩 일반적인 일부터 처리하며 적응할 수 있었다. 미국엔 이미 먼저 이민 와서 살고 계신 형제분이 살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을까 결정해서 왔지만, 현실은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변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 생활로 볼 때 서로 바쁜 일상에서 기대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언어 소통에 직면하니 듣고 말하기가 힘들어 모든 것이 나 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떠나기 전의 자신감은 너무 현실감으로 다가와 마음부터 위축됐고,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때는 왜 좀 더 많은 준비 없이 가벼운 생각으로 왔나 후회가 됐다. 그러나 부끄러운 행동은 아닌 것이니 용기를 품고 열심히 몸으로 뛰어다니며 이겨내려 노력을 더했다.

한국에서 쓰던 짐이 도착하고 새집에서의 인생 2막은 희망찬 미래 꿈을 실현하고자 열심히 뛰며 행복 찾기에 온 힘을 기울이며 지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각국의 이민자가 들어와 살고 있는데, 예전 내 모습이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보인다. 

내가 살았던 이민생활을 생각할 때 불편할 여러 가지 어려움이 그들에게도 똑같지 않았을까.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있을 것 같아 공감되는 것이 많아진다. 그렇게 하나씩 미국 생활 여력이 길들여지기까지 두 아이들과 함께 힘든 여정을 겪었다. 

시작은 호기롭게 시작될 것 같았는데 막상 부딪치는 일들마다 산 넘어 고개 고개 갈 길이 멀고 어려움뿐이었다. 하지만 시작이 반. 앞만 생각하고 열심히 지혜를 모아 하나씩 씩씩하게 전진만 했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는 설렘 반 기대 이상 부푼 꿈만 가지고 있었는데, 도착 이후 현실은 일부터 새로운 인생길을 개척하듯 힘차게 도전해 나가야 했다. 어렵고 힘들지만 길은 조금씩 열려지고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겠구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세월을 낚아가듯 부딪히고 깨지다 보니 인생 나그네 길은 어느새 열심히 잘 달려 살아가고 있었다. 초행길 따라 흙길, 모래길, 자갈길, 바윗길, 고행길을 넘나들고 보니 선물 같은 행복길로 잦아들고 있었다. 

이젠 종착역 길을 남겨둔 아름다운 인생길을 위해서 다시 한번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며 행운이 가득 담겨진 꿈의 길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 할까 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물체,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생물체로 인식되어 보이지만, 위대한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낸 곳에 몸을 맡겨 날아다니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은 내 꿈의 날개 비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