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가발 가게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요즘엔 가발이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었지만 예전에는 거의 상용화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1973년 시발점이던 이후 미국에선 선풍적인 인기 품목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공하여 전수출 품목이었던 가발 산업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수출 품목 중 하나로 기여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민 사회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품목 중 하나, 그중 비중이 가장 많은 흑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기 상품이었을 것이다.
머리에 지출하는 비용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으로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머리숱이 많고 자유자재로 기를 수 있겠지만, 흑인들에게는 체형상 다르다. 우선 머리가 곱슬한 데다 뻣뻣하여 살 속으로 파고드는 습성이 있어서 머리 기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스트레이트 파마 작업을 하거나 레게 머리로 따서 유지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뻣뻣하여 강해 보이나 펴 주면 새털처럼 약하여 부스러지는 현상이 오기 때문에 많은 영양제를 발라주며 관리해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쉽게 사용하기 위해 가발을 착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수많은 가발 스타일이나 다양한 종류의 인모가 발달되어 선풍적인 인기 상품으로 한국 상인들의 사업 아이템으로 돋보였고, 흑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되었다.
웬만하면 레게 머리였던 것이 아름다운 디자인의 머리 모양으로 탈바꿈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가발의 발전은 날로 부상되는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거기에 한국인의 손재주가 더해진 미용 기술이 완벽히 갖춰질 수 있는 가발 사업으로 빛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흑인 여성들은 가발로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한다
그래서 가발 가게는 문정성시를 이루고 날로 번성하여 미국 현지에만 수많은 가발 가게가 생겼다. 손님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며 어떻게 머리 스타일을 만져 주느냐에 따라 서비스 만족도가 달라져 치열한 경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가발 혁신 문화가 퍼지면서 이민자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한 번 마음에 들면 지속적으로 찾아와 주면서 신뢰를 맺고 다가와 단골이 되었다. 우리나라 거상의 면모를 보면서 자랑스럽고 위상 높아진 선진국 국민의 자긍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한낱 가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저들(흑인) 사회에선 아름다움의 극치를 높여주는 필수적인 머리로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기에 일하는 보람을 한껏 느끼며 바라볼 수 있었다.
선조 때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나라 사람들 솜씨는 어디서든 빛나고 있었고 남의 머리를 내 머리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꾸며 줄 때 만족해하는 모습에서 힘들지만 즐거운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가발 산업 혁신을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선두가 되어 이뤄낸 대단한 자랑이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