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오작동 기록집 06
공공건축 보고서의 마침표는 언제나 ‘향후 일정’이 찍는다. 착공일, 공사 완료일, 입주일.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 그 날짜들은 단 한 칸의 오차도 없이 표 안에 박혀 있다. 현실의 시계바늘은 제멋대로 춤을 춰도, 보고서 표 안의 숫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된 그 일정표를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언제 끝나?”
질문은 대개 평온한 표정으로, 그리고 꽤 진지하게 던져진다. 어쩌면 그 질문의 진짜 의미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업이 내 임기 안에 끝나는가, 내가 그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물리적 범위 안에 있는가. 결국 일정은 존재해야만 한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반드시 보고서 안에 박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지점이 있다. 내가 실무자로 지켜본 수십 개의 사업 가운데 처음 계획된 일정표대로 마침표를 찍은 공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기획단계에서 예산 확보에 시간을 쓰고, 계약법, 건진법, 국계법 등 관련법규 검토의 늪을 지나며 시간이 보태진다. 설계 관련 주체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일정은 다시 뒤로 밀린다. 결국 남은 시간 안에 실시설계와 공사를 욱여넣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일정은 조금씩 미뤄지고, 다시 조정되고, 다시 작성된다. 그렇게 처음의 약속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지켜지지 않을 일정을 다시 만든다.
안 될 줄 알면서, 왜 또 계획하는 걸까.
비슷한 장면은 늘 반복된다. 한 번은 기획 담당부서에서 타당성 조사 등 행정절차가 늦어졌다. 예산이 내려오는 시점이 밀렸고, 당초 계획했던 일정도 함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일정이 그대로 ‘수평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앞에서 늦어진 만큼 뒤도 같이 밀린다는, 아주 단순한 물리 법칙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질문은 결이 달랐다. “설계나 공사 기간을 줄일 수는 없겠어요?” 이미 몇 번이나 난도질당한 일정 위에서 그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나는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시간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뒤로 밀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이런 제안들이 이어졌다.
“공고를 긴급으로 내보죠.”
“설계 계약 전에 미리 착수하면 안 될까요?”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였겠지만,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에서 물리적인 시간은 행정적 의지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현실의 무게를 덜어낸 낙관적인 제안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그 서글픈 격차를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일정표는 가능한 시간을 계산한 결과라기보다 이 사업이 어떤 속도로 진행되기를 ‘바라는지’, 언제쯤 끝났다고 발표하고 싶은지를 담은 ‘의지’에 가깝다. 그래서 공공건축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기대의 시간’으로 시작된다. 그 기대는 설계와 공사라는 서늘한 현실을 만나며 비로소 진짜 시간으로 조정된다.
그 과정에서 시간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단지 뒤로 밀릴 뿐이다. 앞에서 쓴 시간은 뒤로 밀리고, 뒤로 밀린 시간은 ‘공기 단축’이라는 이름으로 압축된다. 결과는 뻔하다.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설계는 현장으로 넘어가고, 현장은 그 설계의 빈틈을 메우느라 더 복잡해진다. 공공건축에서 시간은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 단계로, 혹은 다음 담당자에게로 밀려날 뿐이다.
처음에는 충분해 보였던 시간이 어느 순간 증발하고, 그 결핍은 늘 공사가 끝날 때쯤에야 뒤늦게 발견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정표는 치밀한 계획이라기보다 처절하게 조정된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안 될 줄 알면서 왜 계획할까.
어쩌면 그 일정표는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내일을 위해 미리 준비된 알리바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