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어머니, 회장을 비롯한 권력의 소유자(?)들이 며느리, 부하직원에게 저렇게 외친다. 감. 히. 너. 따. 위. 가!
너 따위는 그렇다 치고 '감히'라는 말은 참 우습기 그지없는데 대체 누가 그들에게 '감히'를 '감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을까 생각해 본다.
너는 빛이 나는 나를 좋아했다. 나를 좋아했다기보다 내가 빛나서 좋아했다.(고 한 때 너의 사랑을 폄하한다.)내 빛이 사라졌을 때 너는 떠났다. 나는 비참했다. 아픔은 네가 떠난 것에서라기보다 내가 비참함을 느끼는 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네가 처음 나를 만난 날 나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날개는 튼튼했고 깃털엔 윤기가 흘렀다.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두 눈은 까맣게 반짝였다.
오랜 시간 나를 그린 너는 결국 나와 연인이 되었다.나는 언젠가 우리가 헤어질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지만 그래서 이별을 쉽게 예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헤어졌을 때 나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회장과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감히 네가?' 보다는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에 좀 더 가까웠지만. 내 빛이 사라지니 떠나는 너를, 믿었던 심복에게 세게 뒤통수 맞은 회장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드라마 대사처럼 '끝내도 내가 끝내.'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 감히 네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나는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졌을까.
그런 생각이 어처구니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감. 히.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너에게 늘 최고는 아니었기에 감히 그런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된다 생각했다.
그놈의 역지사지 때문에 나는 너를 이해했고(전부는 아닐지라도) 감히 너를 미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를 놓치기 전에 실컷 미워할걸.. 하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오래돼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미워하지 않는 마음마저도 오만이었음을... 오만한자존심을 지키려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외면하던 조선의 사대부가 생각났다.
누군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남들이 자신을 모르는 것 같지만 실은 다 알고 있다고.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는 남들의 마음을 안다. 정확하지 않아도 느낀다. 애초에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고수의 사기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그러니 자신을 속이는 일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나는 속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리고 들키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임에 당한 것은 나다. 나약함을 끝까지 감출 수 있으리라 믿은 적은 없었어도 감출 수 있기를 기대는 했었는지도 모른다. 사대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무언가로 두려움을 포장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