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입으로 한 번 숨을 내뱉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또 후회가 밀려온다. 늦가을 어두운 새벽에(여명도 트지 않았으므로 그저 한밤중과 같다) 나는 또 왜 밖으로 나왔는가. 이 무거운 발걸음은 어찌 해결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무겁지 않을 때까지 달리는 것.
며칠 전부터 딱히 큰 계기랄 것도 없이 달리기 시작한 나는 그 흔한 조깅화도 없고, 러너들이 입는 쫄쫄이 바지도 없다. 얼마나 오래 달리기를 할지도 장담할 수 없어 그저 집에 있는 기모 운동복 바지에 맨투맨 셔츠 그리고 바람막이를 입고 달린다.
중학교 이후로는 체육 실기 시간을 제외하고는 힘을 내어 달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거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아침 등굣길 눈앞의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리는 일이라든지, 반대로 하굣길 버스를 타려고 달리는 일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달릴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사춘기가 된 이후로 교복치마를 입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일은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체육시간, 체육복을 입었다 해도 많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일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저 나만 홀로 달리게 해주소서....
여하튼, 중학교 이후로 제대로 달려본 기억이 없다는 얘기다. 20대 중반 한창 다이어트에 집중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뛰기보다는 걷기를 선택했고, 걷는 것 또한 다이어트 효과가 충분히 있었으므로 지금과 같이 본격(?)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조깅을 하고 숨 고르기를 하며 걷는 동안 떠오른 생각이,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에는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는 사실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언덕을 뛰어 올라다니고, 운동장을 달리고, 모래놀이터를 굳이 뛰어서 돌고......
여분의 에너지를 방출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몸부림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인간 본연의 모습 중 하나였을까?
퇴사를 하기 전에도 운동은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암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평일 밤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의지도 없어 누워있는 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일을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을 역행하는 일인데, 종일,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일을 하여 인간 본성을 거슬렀으니 나에게 남는 시간은 마땅히 침대와 방바닥과 평행하여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그냥 몸이 알아서 그렇게 했다. 그저 피곤했다.
그나마 목숨은 부지하고자, 일과 중 점심을 빠르게 먹고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돌고는 했는데 그것도 큰 위안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새벽에 아직 잠도 덜 깬 몸으로 달리고 나면 무언가 마음에 위안이랄까 오묘한 충족감이 든다. 내가 마라토너처럼 42.195km를 달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5km도 아니다) 매우 작고 소중한 거리를 달렸을 뿐인데도.
러너스 하이에 들 만큼 오래 달리지도 않았다. 내가 30분 이상 달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도 중력을 거슬러 다리를 교차해 들어 올리는 일은 버겁기만 하고 또 내 질량과 중력이 가중되어 땅바닥에 닿을 때는 어떻게 하면 충격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렇지만 고민은 고민이고 내 몸은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게 현실이다.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는 나도 모르고 하늘도 모른다. 겨울이 되어도 달리고 싶지만 나의 게으름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는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작심 3일, 혹은 작심 6일 아니면 9일. 그만큼이라도 달린다면 그 또한 족할 일이라고 스스로의 기대를 낮추어 잡는다. 직전 회사를 나올 때 유일하게 다짐한 것이 삶의 스트레스를 단 5%라도 줄이자는 것이었으므로.
날씨가 조금 늦게 추워지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기대보다 빨리 추워져도 하늘 탓은 안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