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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선에 서서

2025 서울마라톤 10k 참가 후기

by 잡념주자

작년 가을의 춘천마라톤이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너무 큰 사건이었던가. 이후 가을이 지나 겨울도 지나가는데 달리기에 대한, 글로써 무언가 남겨야 한다는 욕심들이 전처럼 차오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리프레쉬'하고 '리커버리'할 수 있는 마땅한 '모멘텀'을 만나지 못했다는 게, 변명이라면 변명일 수 있겠다.

가을 이후, 달리기 대회를 나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을에 미리 신청한 연말의 안양천 10k 대회도-전날 과음 이슈가 있어 달리지는 못했...-있고 런데이의 피날레런 챌린지도 참여하긴 했다. 다만 춘천마라톤을 준비하던 것만큼 마음을 다해, 성의를 갖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다. 날도 추웠고 추워진 날씨가 평소에 좋지 않던 부위들을 더 괴롭히기도 했으며 새롭게 아픈 부위가 생기기도 했다. 또 다치면 어쩌나, 작년 6월에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신청한 '동마'가 3월에 기다리고 있는데, 하는 걱정도 있었고 금연했는데 몸까지 괴롭혀야 하나, 하는 안일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1월이, 2월이 지나갔다.

달리기에 손 놓은 것처럼 써지기는 했지만 '괴롭지 않은 수준으로' 달리기는 이어졌다. 여행, 명절 때문에 쉬는 날이 많기는 했으나 1월엔 그래도 80킬로미터쯤은 뛰었고, 달리기 외에 다른 운동을 못해서 그렇지 2월엔 110킬로미터 조금 넘게 뛰었다. 대회가 있는 3월을 앞두고 꼽아보니 그래도 멈춰 선 수준은 아니구나, 안도하며 지난가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아니 현상유지는 될 정도의 기록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이어 달렸다.

대회가 엿새 앞으로 다가온 월요일, 기침을 하며 깼다. 주말 내 감기기운이 있던 아이에게 옮았나, 아이는 다행히 심한 것 같지는 않은데 문제는 내 컨디션이었다.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초장에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했던 반신욕이 惡手였던 걸까. 다음날부터 참 오랜만에 만나는 몸살기운이 한 주 내 내 육신을 괴롭혔다. 감기로 괴로운 몸에 이거 참가할 수 있을까, 참가하더라도 완주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마음을 내내 괴롭혔다. 아프지 않을 때 더 뛰어둘 것을, 뭐라도 더 해둘 것을, 후회가 떠나지 않는다. 4월에 있을 YMCA하프마라톤이 올해 상반기의 '메인이벤트'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또 언제 동마를 뛰어보겠나'하는 마음이 후회를 더 무겁게 만든다.

주 후반이 되어서야 간신히 몸이 추슬러진다. 대회 하루 전 토요일 아침, 훈련은 안되더라도 몸은 깨워둬야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목감천으로 나선다.

- 5키로?

- 5키로만 뛰자, 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기침이 완전히 잦아든 것은 아니라 평소보다 더 천천히 숨이 오르도록 뛴다. 몸살에 가장 괴롭혀지던 허리와 다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정도의 감각이 있을 정도의 통증으로 달리고 있음을 뇌에 전한다. 얼마나 천천히 뛰었는지 아내와 재잘거리는 수준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목감천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욕심이 생긴다. 2킬로미터만 더 뛰어보기로 한다. 안양천변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목격하고 다시 집 근처로 돌아온다. 한 주를 푹 쉰 덕일까. 겨우내 근심하게 했던 무릎과 발목의 통증이 없다. PB는 어렵겠지만 즐겁게 마무리할 수는 있겠구나, 안도가 찾아온다.

밤새 비가 내려 축축이 젖은 올림픽대로를 따라 잠실로 향한다. 비 맞으며 달리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흩뿌리는 비는 조금씩 무게를 더한다. 탄천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준비를 마친 뒤 대회장으로 향한다. 물 밑 가라앉은 뻘 먼지처럼 쳐지고 얌전한 성향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데 마라톤 대회장에서는 좀 달라진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고양감이 저 어딘가에서부터 차오른다. 그 고양감으로 서둘러 몸을 푼다. 축축한 도로에 차가워진 날씨, 간간이 날리는 빗방울을 보니 '오늘은 텄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어차피 오늘의 목표는 재미지게 달리기였던 것을.

광화문에 계실 배동성 형님을 대신한 진행자의 사회로 출발선 뒤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이어폰을 챙겨 오지 못한 아내의 '혼자 튀어나가면 이혼'이라는 경고를 되새기며 천천히 천천히, 오늘은 즐겁게 달리자는 마음으로 신호를 기다린다. 출발신호와 동시에 워치도 출발시키고 우리도 발걸음을 옮긴다. 붐벼서 달리기가 어려운가 싶다가 대로를 만나자 사람 사이가 성글어진다. 춘천에서보다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아내와는 연신 재밌다, 신기하다는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길은 차 타고 다녀보기만 했는데, 아이랑도 왔던 길이지, 롯데월드에서 이 길을 통해 집으로 갔었는데, 우리 그때 정말 돈 없었는데, 아 석촌호수네, 풍경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대화가 이어진다.

반환점을 돌아 지하차도를 올라오는데 이유 없이 즐거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왜 이러지 싶은데 입꼬리가 계속 올라간다.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을 때 아내가 말한다.

- 난 안 되겠어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하자. 롯데월드를 끼고 다시 좌회전을 한다. 저 앞 체육관이, 야구장이 보인다. 출발하며 보았던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와 나란히 도착선을 통과한다. 때마침 비가 잠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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