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B급인 줄 알았다.
서른의 한중간에 선 요즘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해 왔던 일, 커리어도 그렇지만
요새는 마음가짐에 대해 더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내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내가 미국에 온 후 한국에서 결혼을 했고,
물리적 거리 때문에도 그렇지만 제부도 나도 극 내향형이어서 동생과 결혼한 지 5년이 되도록 나와 제부는 접점이 전무했는데,
우연찮은 기회로 제부가 진행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아트 디렉터로 내가 참여하게 되면서 갑자기 왕래가 생겼다.
그렇게 얼마간 함께 일해본 후
어느 날 제부가 동생한테 내 얘길 했다고 한다.
(제부는 나를 처형이라 부르지 않고 누나라고 부른다.)
-누나는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더 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
-누나를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거다.
고작 몇 달 나를 겪어본 사람이 그런 후한 평가를 해 주는 데에
고맙고 벅참과 동시에
한편으론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박해왔던 게 아닐까 돌아본다.
나는 내가 '그 무엇도 A급은 아닌', 이것저것 조금씩 곧잘 하는 B급이라고 스스로 말해왔었고,
완벽하지 못할 것은 실패가 두려워 시작하지를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은 재주들을 타고났으면서도
더 잘하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위축되느라 바빴다.
나 스스로의 능력에 물음표만 던지고
고마운 마음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조금은 하찮게 여겨왔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나를 가장 소중히 해야 하는 내가 스스로를 깎아내려왔다.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특별하다'라고 하면
자기 계발서나 영상 속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진부하고 허상 가득한 멘트라 할 수 있겠지만
오차와 오답 없이 100점과 완벽을 추구하고
경쟁과 줄 세우기가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우리는,
A급, B급, 완벽의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이며
틀렸다는 누가 정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내가 가는 길에 있어 정답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찾은 나의 정답은
책에 쓰여 있거나 사회가 정한 것이 아니어도 되고,
남의 답과 완전히 달라도 괜찮고, 더 나은 답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내 답은 그대로 괜찮다.
각자의 다름이 주목받고 큰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가 마침내 온 지금
A급, B급 급수를 나누는 라벨 대신,
'나'라는 라벨을 당당히 달고
이 좋은 기회를 다 같이 누리고, 마음껏 자신의 다름을 사랑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