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9 토요일
뉴욕은 정말 멋진 도시였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 파크, 맨해튼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브루클린, 수많은 베이글 맛집들과 두 번이나 먹은 바나나푸딩, 찬란한 무대효과를 자랑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욕의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까지... 6일을 뉴욕에서 지냈음에도 그곳을 떠나기가 너무 아쉬웠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탑승한 페리에서 나는 무한한 자유를 경험했다. 바다 위로 날아다니는 저 새가 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해야 할 일이 없었고, 오직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할 일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큰 자유에는 큰 위험 혹은 고난이 따르기 마련인데... 나는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을 새카맣게 모른 채로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게 된다.
뉴욕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데까지는 약 6시간이 소요되었다. 원래는 절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차가 많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워싱턴 지하철은 뉴욕에 비해 훨씬 깨끗했다.
# 첫 번째 고난
내가 예약한 숙소는 캡슐호텔이었는데, 방 안에 6개의 캡슐이 있는 구조인 혼숙 룸이었다. 방 안에 들어가니 웬 팬티바람으로 잠을 자고 있는 백인 아저씨가 나를 맞아주셨다. 당황스러웠다. 팬티 사이로 무언가 보이는 듯했지만 그냥 눈을 흐리게 뜨기로 마음먹었다... 짐을 푸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니, 아저씨는 일어나셔서 인사를 하셨다. "니하오"라고. 아시안을 보면 니하오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유튜브 영상이 사실이었구나. 화가 나기보다는 벙찐 기분이 들었다.
대답으로 "I'm not Chinese"라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그럼 국적이 뭐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냥 "Korean"이라고 대답하면 "North or South?"라는 질문을 덧붙일까 봐, 그냥 처음부터 south를 붙인 채로 "South Korean"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Ok, umm... Welcome!"이라고 답변하시고는 다시 본인의 침대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이어폰 없이 바깥으로 소리가 나오는 채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셨다. 여전히 속옷만 입은 채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아저씨를 제외한 나머지 캡슐의 사람들은 아직 밖에서 놀고 있는지 아무도 없었다. 이 아저씨와 둘만 남아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 어두워질 시간이었지만 밖으로 나갔다. 조지타운 쪽으로 이동하여 저녁으로 라멘을 먹었고, 르뱅쿠키를 사 먹었다.
다행히도 밤은 무사히 넘어갔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 두 번째 고난
어바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바로 다음 날 오후 시간대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오니 벚꽃이 한창이었다. Tidal Basin이라는 호수에서는 벚꽃 축제가, 워싱턴 기념탑에서는 연날리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꽃놀이에 한국 생각도 나고, 이렇게 행복하게 동부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벚꽃도 충분히 즐겼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안내를 받은 시점은 비행기가 출발하기 4시간 전이었다.
자리가 남아 있는 가장 빠른 다음 비행은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즉, 약 18시간 정도를 이곳 워싱턴에서 더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밤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숙소를 1박 더 예약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머물던 캡슐 호텔은 모두 매진되어 남은 자리가 없었다. 다른 숙소들은 1박에 최소 20만 원 정도의 호텔들밖에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벚꽃 축제 때문에 남은 숙소가 얼마 없기도 하고, 있더라도 엄청나게 금액을 올린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속에 엄청난 고민이 밀려왔다. 숙소를 예약하면 동부여행의 마지막 밤을 따뜻한 방 안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지만, 무려 20만 원을 써야 했다. 비행기 한 번 취소된 걸로 이렇게나 많은 돈을 잃게 되다니. 심지어 이곳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공항으로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거의 30만 원 꼴이었다. 나는 결국 노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노숙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공항이다. 공항은 많은 사람이 의자에서 자기도 하는 곳이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워싱턴 공항은 늦은 밤이 되면 문을 닫았다가 새벽 4시쯤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포기했다.
둘째, 맥도날드이다.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 지점에 앉아 배가 고프면 음식을 시켜 먹고, 휴대폰도 충전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맥도날드를 찾아갔는데, 일단 콘센트가 없었다.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고객들에게 호의적일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휴지가 굴러다니는 등 제대로 청소도 되지 않은 듯했다. 이곳에서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는 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했다.
이 두 옵션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한국처럼 pc방이나 찜질방, 24시간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맥도날드 말고 다른 24시간 패스트푸드 매장도 찾아가 봤지만,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카페에서, 식당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밤이 찾아왔다. 약 9시간을 밖에서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나니 진이 다 빠진 상태였고, 몸에서 슬슬 냄새도 나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내 몸을 뉘일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느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이곳의 거리는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각종 펍과 클럽들이 문을 열었고, 짧은 반바지를 입은 게이들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나는 초라한데 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놀고 있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철저히 '외부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 본 동양인이 5명을 채 넘지 못했던 듯하다.
다 포기하고 그냥 길바닥에서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나의 가방은 내가 묵었던 캡슐호텔에서 아직 보관하고 있었는데, 가방을 찾으러 간다고 들어가는 겸 그 캡슐호텔의 1층 로비에서 노숙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한 고객이었기 때문에, 그 호텔을 더 이상 이용해서는 안되고 가방만 가지고 나가야 했다. 직원이 보면 내쫓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직원이 내가 가방을 꺼내갈 수 있도록 알려준 로비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서, 1층에서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해가 뜨자마자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니 지난 며칠간의 여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벚꽃 아래에서 느꼈던 벅참도, 워싱턴에서의 긴 밤이 남긴 두려움과 서러움도 모두 내가 직접 겪어낸 장면들이었다. 특히 새벽의 거리에서 정처 없이 걸으며 보낸 시간, 캡슐호텔 로비의 의자에서 웅크린 채 뜬눈으로 보낸 그 시간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불안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낸 그 밤 덕분에 이번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보다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어바인에 도착하고 나면 다시 평범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숙사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이 믿기지 않는 워싱턴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게 될 날이 곧 오겠지.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품고 어바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