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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홈리스들

2025-03-20 목요일

by may

19일 저녁, 겨울학기 마지막 시험을 마치자마자 시애틀을 경유하여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보스턴에 도착하니 그곳의 시간은 20일 아침 7시 30분.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해 피곤했는데, 숙소 체크인 시간인 4시까지는 어떻게든 바깥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페에 오래 앉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돈을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는 곳으로는 대학교가 최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학교, 하버드로 향했다.




하버드에 도착하니 빨간 벽돌의 건물들과 두꺼운 책을 들고 걸어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존 하버드 동상'이 보였는데, 이 동상의 왼쪽 발을 만지면 후손이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을 찍는 중국 관광객들 사이로 파고들어 슬쩍 발만 만지고, 더 이상 구경할 것이 없어 메인 캠퍼스 바깥으로 나왔다. 도서관을 가보고 싶었는데 외부인은 출입이 어렵다고 하여 아쉬웠다.


밖으로 나오니 역사 깊은 '하버드 북 스토어'가 보였고, 그 앞에는 뜬금없이 칠면조가 걸어 다녔다. 바깥에 칠면조가 걸어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신선했다.




도서관 대신 앉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하버드 북스토어 근처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 우연히 들어갔다. 그곳에는 테이블, 의자, 소파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노숙인들, 즉 홈리스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하버드 건물에 학생들은 다 어디에 있고 홈리스밖에 없다니,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그 건물은 'Smith Welcome Center'로,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 하버드의 건물이었다. 1층 전체와 2층 일부는 개방되어 있으나, 일부 구역은 하버드 학생증을 찍어야만 문이 열렸다. 그래서 개방 구역에는 홈리스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고, 보안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홈리스가 많은 지역에 위치한 캠퍼스는 이러한 문제를 겪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치안이 좋은 UCI 캠퍼스에서는 홈리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들이 학생들을 공격한다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드물지만, 악취가 난다거나 미관상으로 좋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레딧 등의 커뮤니티를 보면 하버드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미국의 홈리스는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은 듯하다. LA,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 크고 유명한 도시일수록 공공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인지 홈리스들이 많다. 나 또한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홈리스들을 보았는데, 그중에서는 마약을 하는 등 지나가는 것조차 위험한 홈리스들도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홈리스들도 많이 있다. 그들을 보다 보면 '어쩌다 홈리스가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몇 년을 고생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것이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생각하게 된다.


홈리스들은 처음에는 높은 집값과 의료비, 해고 등으로 인해 거리에 내몰렸으나, 점차 알코올과 약물 등에 의존하면서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하게 되고, 다시 재기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사회활동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데, 연방정부·주정부·시정부로 나누어져 있는 미국의 구조상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맡을지가 불분명하다. 홈리스가 많은 대도시들은 이제는 사람들이 별로 살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었으나, 예전에 올랐던 rent가 다시 내려가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물가는 엄청나게 비싸다. 부자들은 홈리스가 없는 근교 지역들로 빠져나갔고, 그곳의 집값은 미친 듯이 치솟았다. LA 근교에 있는 어바인처럼 말이다. (어바인은 홈리스가 1명이라도 들어오면 근처 지역들로 내쫓는다.)



하버드 캠퍼스에 자리잡은 홈리스들의 모습을 보며, 지난 3개월간 머물면서 사랑하게 된 미국은 미국의 일부분이었음을 깨달았다. 깨끗하고, 날씨도 좋고, 안전한 어바인은 미국에서 정말 얼마 없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나는 항상 '미국 생활이 좋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사실 그것은 내가 어바인에 지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뿌리 깊은 문제들과 진짜 현실들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방에 홈리스들이 있었지만, 너무 잠이 오는 나머지 가방을 꼭 끌어안고 30분 정도 낮잠을 청했다. 다행히 도난당한 물건은 없었다. 단지 공개된 공간에 쉬러 왔을 뿐인 노숙인들에게 무서워하는 마음을 가져서 죄송스러운 동시에, 이러한 공공장소를 불안에 떨면서 이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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