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9 수요일
벌써 미국에 온 지 두 달이 넘어 세 달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구글맵을 쓰며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도,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한 주문을 하는 것도 어려웠던 나였으나, 이제는 미국 생활에 조금은 적응이 되지 않았나 싶다. 햇빛이 쨍쨍한 캘리포니아의 하늘 아래에서 많이 돌아다녔더니, 이제는 주근깨도 생기고 피부톤도 예전보다 조금 어두워진 것 같다.
특히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1월에는 라스베이거스와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에 갔다. 2월에는 빅베어레이크와 산타바바라에 갔다. 3월에는 그랜드캐니언과 밴쿠버에 다녀왔다. 통장 잔고는 점점 떨어져 갔지만, 한국에서 가졌던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들도 점점 잊게 되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 겨울학기였다.
다양한 경험들이 조금씩 쌓여가며, 나는 긍정적인 변화 몇 가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우선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다.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배경, 인종,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한 나라에 모여 살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시민으로 묶일 수가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몇 번 스몰톡을 나누고 나니, 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비슷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나를 차별하는 미국인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이 아시아인인 나를 보았을 때 못생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얼굴이 평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와 같은 식으로, 자꾸만 나 자신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 두 달 동안 지내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가진 선입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을 '나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그대로 이런 편견을 가진 채로 있었을 텐데, 교환학생을 오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변화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보통 먼저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 성향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그렇다기보다는,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의 일들을 제때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청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앞에 놓인 과업이 없고, 제때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예민해질 필요도 없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요리를 하거나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운동 등, 이곳에서의 모든 의사결정은 내가 내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들어야 하는 수업을 들으며 해야 하는 과제를 했었다. 나 대신 누군가가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물론 편할 때가 있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내리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잃게 된다. 그러다 보면 쉽게 지치고 활력을 잃게 된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득 채운 하루를 살다 보니 아무리 많이 움직인 날에도 별로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교환학생이 끝나면 생각보다 긴 허무와 우울에 빠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마치 아주 행복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렇게 두려움이 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자유롭게 살았던 미국에서의 생활은 곧 사라진다는 직감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이 소중한 시간을 정신없이 지나쳐 보내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더 보람차게 놀아야겠다. 시간아, 천천히 흘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