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9 토요일
처음으로 5마일을 넘게 뛰고 난 뒤 나의 왼쪽 발등은 눈에 띄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재미를 붙였다 싶었는데 부상이라니! 심지어 나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보건소를 이용할 수도 없었고, 마땅히 쓸만한 붕대나 약도 없었다. 발이 아프다 보니 강의실까지 걸어가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도 어려웠다.
이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고마운 서울대 선배들이 발 보호대를 빌려주기도, 쓰다 남은 파스를 주기도 했다. 강의실까지 매번 차로 태워다 준 친구도 있었다. 이런저런 도움과 노력으로 최대한 발을 쓰지 않고 아낀 덕분에 다친 지 2주가 지난 뒤에는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회복이 되자마자 나는 다음 러닝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주간 쉬면서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이제 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또한 다시는 같은 부상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러닝화도 마련했다.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대한 덜어주는 맥스쿠션화로!
약 1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익숙해지자, 친구는 이제 러닝의 강도를 올려야 한다고 나를 부추겼다. 러너들은 보통 일주일에 2번 정도 가볍게 러닝을 하고, 나머지 한 번은 평소에 뛰던 거리의 두 배를 뜀으로써 장거리 트레이닝을 한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이제는 10마일(16km) 달리기에 도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10마일을 달리고 난 소감은, 정말 죽을 뻔했다. 달리기를 끝낸 뒤 하루 동안은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장거리를 무리 없이 뛸 수 있는 러너가 되고 싶은 마음에 몇 번 더 도전하였다. 러닝 코스가 질리면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며 달렸고, 날이 밝고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달리기 시작하여 밤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렸다.
그렇게 10마일을 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음 목표가 생겼다. 바로 러너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마라톤 대회이다. 마라톤만큼의 거리(42.195km)를 달릴 자신은 아직 없기에, 하프마라톤(21.0975km)을 뛸 수 있는 대회를 친구와 함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바인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는 롱비치 해변에서 부활절을 맞이하여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바로 신청하게 되었다.
아침 7시에 도착한 롱비치 해변에는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적이고 있었다.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달리기를 즐기는 모습은 나 또한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이렇게 건강하게 오랫동안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마라톤 대회는 원래 함께 달리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기분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와 똑같은 길을 3번 반복해서 달리는 코스 때문에 시간은 굉장히 느리게 흘러갔다.
이렇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를 다시 한 발자국 내딛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뛰는 날이 다시 오게 될까?'하는 생각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러닝을 할 수 있고, 충분히 재미있게 뛸 수 있는 코스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자연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평지를 달리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날씨 또한 이곳 캘리포니아는 일 년 내내 온화한 편이어서, 비가 오는 아주 극소수의 날을 제외하면 언제든지 나가서 뛸 수 있다. 그 점에서 캘리포니아에서의 러닝을 몹시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캘리포니아에 여행으로 찾아와서 이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러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친구들과 함께 인생의 최고로 자유로운 시기를 만끽하며 달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임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남은 이 시간 동안 더 달리고 쉼 없이 움직이고 싶다. 다시 이 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더 즐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