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에서 생존하기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정말 원했던 회사 면접에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아서도 아니고, 여자 친구가 바람피우는 걸 목격했단 문자를 받아서도 아니다.
또한, 20여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버지의 장례식을 이제 막 끝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다.
내 심정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진짜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맑고 높은 하늘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부분부분 검게 변하고는 불기둥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마티즈를 운전하는 엄마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직도 찬송가를 흥얼거리고 있다.
분명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우리 엄마가 맞는지 의심 되리만치 신나는 찬송가를 틀고 고개를 까딱이며 신나게 흥얼거린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영광…음음…루야. 영광 할렐루야. 으음 흐흠. 곧 승리하리라.”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엄마는 귀가 먹었는지, 벼락과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진득하니 미소를 짓고 있다.
아니, 방금 아버지 장례식을 끝냈는데 진짜 우리 엄마가 맞는 건가?
아니! 그보다 지금 저 하늘이 현실인가? 홀로그램이나 컴퓨터 그래픽 아니야?
조수석에 탄 내가 눈을 비비며 하늘을 바라볼 때, 여동생인 김나영이 뒤에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엄마! 소리 좀 줄이면 안 돼? 우리 이제 막 장례식 끝낸 사람이야. 엄마, 그게 듣고 싶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엄마의 어깨를 쳤다.
“엄마. 엄마?”
그러자 엄마가 적반하장으로 나와 동생에게 짜증 냈다.
“아, 왜 이것들아! 장례식 때문에 피곤해 죽겠는데, 노래도 마음대로 못 들어? 어? 후, 얘들아 졸음운전으로 천국 가고 싶니?
엄마는 광기 어린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되레 성을 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 지금 하늘이…”
“하하, 여기서 누가 제일 힘들겠니? 어?”
또한 엄마는 역설적으로 웃으면서 우리에게 고래고래 외쳤다.
그때, 김나영이 내 표정을 보았다.
공포에 질려 핏기가 가신 얼굴로 창밖에 고정된 내 시선에 김나영도 곧장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엄마! 달려!”
이윽고 김나영이 운전대를 잡은 엄마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엄마가 운전하던 작은 마티즈도 길에서 휘청거린다.
이에 엄마는 기어코 참아왔던 화를 터트렸다.
“뭐 하는 거야? 대체. 너네 왜 그래? 엄마가 제일 힘들다니까? 어?”
하지만 눈치 없는 찬송가는 계속 반복 재생하였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아냐! 엄마 달려! 그냥 밟아!”
“그게 아니야! 엄마! 찬송 소리 좀 꺼 봐! 밖에 소리 좀 들어보라고!”
나도 김나영과 함께 혼돈의 비명을 질렀다.
“엄마 제발, 그냥 가! 그냥 밟아!”
그때 뒤에 따라오던 포터 트럭이 우리를 지나치기 위해 속도를 내더니 곧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앞질렀다.
이에 엄마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성 높여 욕지거리하기 시작했다.
운전을 방해하는 자식들로 모자라 ‘칼치기’ 하는 트럭 운전자라니, 무너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 엄마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미칠 노릇일 것이다.
그와 함께 내가 뭔가를 잘못 눌렀는지 찬송가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이런 개 상놈의 새끼가! 어디서…”
하지만 엄마의 욕을 다 받아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끊고 계속 어깨를 흔들었다.
“엄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그냥 밟아 엄마!”
[영광 영광 할렐루야]
이런 망할 찬송가! 하지만 찬송가에 대해 언급할 시간이 없다.
“얘들이 미쳤나 왜 그래?”
“그냥 밟아!”
엄마가 성질을 내지만 나는 엄마의 어깨를 흔들다 못해 운전석을 내리치며 고래고래 외쳤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야! 김승우! 너 진짜!”
“그냥 가!”
“엄마 제발! 찬송가 좀….”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불덩이가 우리를 앞지른 트럭 옆 도로에 굉음을 내며 충돌했다.
‘콰자작!’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무시무시한 소리다.
놋그릇을 한순간에 찌그러트리면 그런 소리가 날까?
게다가 소리와 함께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앞지르기한 포터가 충격으로 크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야 엄마는 상황을 알아차렸다.
찬송가의 승리와 함께 우리는 다시 공포에 질린 외마디를 질렀다.
[곧 승리하리라]
“아악!”
“밟아!”
“얘들아 이게 도대체 뭐…”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앞선 트럭이 공중에서 돌며 꽁꽁 묶어 놓은 쇠 파이프가 풀려 허공을 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작디작고 연약한 우리 마티즈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 소리도 못 내고 이를 악물었다.
나는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조수석에는 없을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댔다.
엄마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파이프를 피하려 했지만, 곧 놀이공원에서의 놀이기구가 떨어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아, 우리 차도 공중에 떠 있는 거구나. 젠장. 무슨 영화도 아니고 진짜 이건 완전….’
살짝 눈을 뜨니 이미 모든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아니, 마티즈가 공중에서 돌고 있는 것이겠지.
팔로 얼굴을 가리고 최대한 몸을 움츠려 보지만, 결국 머리로 큰 충격이 들어오고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빠! 오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댔다.
그 탓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축축하다.
꿈이라도 꾼 건가? 눈을 떠야 하는데 떠지지 않는다.
“오빠! 야! 김승우! 정신 차려!”
‘아, 김나영이구나. 이 새끼가 어디서 오빠한테 반말하고. 처맞으려고 진짜.’
분명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려고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을 뜨니 부서진 아스팔트 파편과 마티즈의 잔해가 널려있다.
그리고 김나영이 시뻘건 눈을 비비며 울고 있었다.
“으으…. 뭐야? 왜 그래?”
나는 가까스로 일어나 비명을 지르는 내 근육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무너지는 하늘과 떨어지는 불기둥, 앞서가던 포터 트럭과 그가 흩뿌린 파이프를 떠올렸다.
그리고 옆에서 운전하던 엄마. 엄마는?
“엄마! 엄마?”
일어나 엄마를 찾으려던 그때 김나영이 내 손목을 굳게 잡았다.
“왜? 놔봐. 잠깐.”
“엄마, 엄마가….”
“엄마가 뭐? 왜? 놔 봐.”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놔 봐! 내가 봐야 뭔지 알 거 아니야!”
나는 김나영의 손을 뿌리치고 곧장 도로 중간에 기대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온갖 잔해와 뿌연 연기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엄마가 도로 중간 벽에 기대앉아 있는 게 보인다.
무사한 거 같은데, 김나영 저 자식은 왜 맨날 저렇게 오버를 하는지.
“어? 엄마?”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엄마의 몰골이 처참하다.
내가 충격받은 상태로 멈춰 있자, 김나영이 흐느끼며 나에게 다가온다.
그때 엄마가 힘없이 눈을 뜬다.
“얘들아. 괜찮니? 미안해, 엄마가.”
엄마는 자기 복부에 박혀 있는 쇠 파이프 조각을 매만졌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바라보며 사과했다.
뭐가, 뭐가 미안해.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의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떨어지며 온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나는 의대생인 김나영에게 말했다.
“야, 어떻게 좀 해봐. 엄마, 엄마가 피 흘리고 있잖아. 어, 엄마가 지금…”
하지만 김나영은 울기만 할 뿐, 대답을 못 하고 고개를 조용히 떨군다.
그때 포터 트럭 옆으로 떨어졌던 불구덩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직, 크직.]
나는 그 소리에 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119를 불러야 하나? 뽑으면 출혈이 심해지겠지? 우선 톱 같은 걸로 파이프를 잘라야 할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복부를 살피고 있었다.
이에 엄마가 꺼져가는 희미한 생명불을 불태우며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도망쳐.”
“응?”
무슨 말이야? 엄마를 두고 도망치라고?
게다가 무슨 헛소리인지는 몰라도 무엇에 도망친단 말인가.
그때 김나영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옷깃을 잡아 흔들었다.
“오, 오빠.”
“아, 왜? 뭐?”
나는 짜증과 함께 뒤 돌았다.
지금 119라도 불러야 하는 긴급한 상황인데, 이 동생이라는 얘는 헛똑똑이로 자랐나 싶어 순간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치솟았나 보다.
하지만 곧 김나영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안광,
물고기인지 새인지 모를 주둥이,
날개와 함께 달린 커다란 발톱,
곰같이 거대한 몸뚱어리.
단번에 그 정체가 무엇이라고 판정 지을 수 없는 돌연변이 생명체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괴생명체는 트럭 운전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팔을 단숨에 삼키며 파충류 같은 눈을 껌벅였다.
그것과 눈 마주친 나는 숨이 턱 막힘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건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는? 도망쳐야겠지? 저건 얼마나 빠를까?’
아직도 현실임을 자각하지 못한 나는 그저 얼음장처럼 굳게 서 있었다.
그때 뒤에서 엄마가 피를 토하며 외쳤다.
“도망쳐! 쿨럭. 달려!”
나는 엄마의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괴생명체는 우리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김나영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달려! 캑캑, 쿨럭. 달려! 꼭 살아! 쿨럭. 꼭 살아야 해!”
엄마는 계속 외쳤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터널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하늘에서 불기둥은 계속 떨어지고 엄마는 소리친다.
괴물은 곧장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동생은 울면서 나에게 외친다.
“엄마는, 엄마는 어떻게 해!”
내 눈에도 눈물 비스무리한 것이 흘렀지만, 그게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 가지 않았다.
그냥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다.
그뿐이다.
엄마가 달리라고 하니 달린다.
이것도 그 일환이다.
이제껏 그래왔던 내 삶의 연장선이다.
동생도 나와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조금은 애써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덩이가 땅에 떨어질 때마다 두 발이 공중에 떠오른다.
그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달려보지만, 불기둥이 치솟을 때마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뒹굴어 거의 팔로 사족 보행하듯 뛰었다.
게다가 아직도 엄마의 고함이 들린다.
엄마는 달리라고 외치지만, 그 의도와 반대로 엄마의 말이 내 발과 시선을 계속 붙잡는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괴물은 엄마의 처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오직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땅이 진동할 때마다 괴물도 함께 구른다.
이런 긴급 상황에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틀었던 찬송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달려! 달려!”
교회도 잘 안 가는데, 왜 이러지?
나는 찬송가 소리와 함께 죽을힘으로 터널 가까이에 왔다.
그런데 하늘이 점차 붉어지더니, 우리가 들어가려는 터널을 향해 불기둥이 내려온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저 동생이라도 살리자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동생을 있는 힘껏 터널로 밀어버리고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터널 위로 불덩이가 박히며 우릴 쫓아오는 괴물은 터널 입구와 함께 그 잔해에 묻혀버렸다.
반대로 나는 간신히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를 피해 한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팔에 생채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대자로 뻗어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허억]
“곧 승리…하….”
나도 모르게 찬송가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동생은 내 옆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고 나는 벌떡 일어나 동생을 살폈다.
“야, 괜찮아?”
“응.”
동생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에도 작은 생채기가 났다.
나는 어디 부러진 곳이 없는지 동생의 팔다리를 훑어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터널 천장을 보았다.
그래. 이 정도면, 할 수 있지. 군대에서도 다 한 건데.
나는 손으로 무너져 버린 터널 파편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오빠 뭐해?”
“이거 치워야지.”
“그걸…왜?”
이런 멍청한 김나영이 흐느끼며 당연한 걸 묻는다.
“엄마가 밖에 있잖아.”
“그만…. 이미 늦었어.”
“그건 밖에 나가봐야 알지.”
젠장, 돌덩이 하나하나가 무겁다.
“아냐. 엄마 장기가 관통되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배웠으니까. 나 의대생이잖아.”
“네가 직접 확인했어? 엄마 뱃속까지 들여다봤냐고.”
“아니, 그래도 알아. 그리고 그걸 어떻게 치워.”
“그러니까 네가 뭘 아는데. 이런 거 치워나 봤어?”
아씨, 이것만 뽑으면 그 뒤론 수월할 것 같은데.
사람 몸뚱이만큼 큰 돌덩이는 뽑힐 기미가 없다.
“엄마는 이미…”
“아이 씨! 진짜! 네가 뭘 아냐고! 어? 네가! 어? 입 씨부릴 힘 있으면 이거나 좀 뽑게 돕던가! 왜 지랄이야! 지랄 좀 하지 마! 어?”
나는 애먼 김나영에게 화풀이하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나온 거친 욕설에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돌 뽑는 것에 열중했다.
“아이 씨, 이건 왜 또 안 뽑혀. 젠장. 이런 니미. 썅! 망할! 악! 악!”
그러나 돌은 뽑히지 않는다.
뽑히지 않는 돌을 차며 아무리 욕하고 악을 질러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다.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는지. 취업도 못 해, 아버지 장례식 중 여자 친구는 바람이나 피고 있고. 엄마는…….
이에 김나영이 다가와 내 손목을 잡는다.
곧 피투성이가 된 내 손을 털어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마가 우리보고 살라고 했잖아. 꼭 살아야지. 부탁이니까 우리 꼭 살자. 응?”
끝끝내 난 입을 못 열었다.
참아왔던 숨이 차오르고 눈물이 흘렀다.
그래. 인정하자. 동생 말이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멸망해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
그래. 이제 엄마를 더는 볼 수 없다.
그와 함께 지금껏 숨겨왔던 심정이 분노 섞인 욕설과 고함, 그리고 흐느낌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를 잃은 것도 얼마 안 되는데, 엄마까지 볼 수 없단 사실이 나에겐 너무 벅찼다.
거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내 자신이 싫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엄마 말대로. 살아남아야지. 그건 엄마의 유언이니까. 동생이 나한테 부탁한 거니까.
그렇기에 우선 생존을 위해 일어나 반대쪽 터널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얘들아 괜찮니?”
주황빛 터널 조명에 비춘 사내는 익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박창용 전도사님?”
동생은 익숙하다는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박창용.
내가 알기로 그는 얼마 전 우리 엄마가 다니던 교회에 부임한 전도사다.
그는 아버지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준 인물이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던 동생은 그를 익히 잘 알았다.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해 50대 후반으로 보임에도 아직 전도사라 했다.
그런 그가 다가와 동생과 내 어깨를 뜨겁게 감싸 쥐었다.
“승우야. 괜찮아? 엄마는?”
이 사람은 날 대체 언제 봤다고 반말인 건지.
게다가 엄마는 왜 찾는 건가.
나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괜히 박 전도사에게 반감이 갔다.
하지만 김나영은 내 기분도 모른 체 박 전도사에게 대뜸 대답했다.
“엄마는…엄마는…. 많이 다치셔서…저희 보고 꼭 살아달라고 하셔서….”
“그래. 괜찮아. 많이 힘들었겠다.”
박 전도사는 입술을 꽉 깨문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를 위로했다.
그때 그의 뒤를 이어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한 명이 더 왔다.
“전도사님, 저기 구급차에 여자가 한 명 살아 있습니다. 무슨 환자인 거 같은데….”
“강 집사님. 고생하셨습니다. 저랑 같이 가시죠. 얘들아 우선 쉬고 이따가 이야기 하자. 알겠지? 참, 반대편은 출구가 무너졌어. 더 가도 별것 없어.”
그렇게 박 전도사와 강 집사는 인명 구조를 나섰고 나와 김나영은 구석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곧 박 전도사와 강 집사가 구르마에 이것저것을 싣고 왔다.
심지어 나중에는 환자복을 입은 여자까지 구르마로 싣고 왔다.
*구르마: 손수레
“저기 전복된 택배 차가 있더구나. 혹시 승우야 여기 여자분 좀 같이 옮겨 줄 수 있니?”
박 전도사가 처음에는 생수 같은 걸로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부탁이 점점 늘어난다.
뭐지? 나한테 뭘 그렇게 시켜대는 거지?
알 수 없는 반감에 나는 한동안 그를 째려다 봤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계속 부탁했다.
이에 가슴에서 울컥하며 터져 나오는 무언가가 있어 화내려는 찰나,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터널에는 항상 비상구를 둡니다. 아마 비상구를 통해 반대 차로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강 집사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지금 빠져나가죠.”
“우선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지요. 저희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니 말입니다. 이 충격이 단순한 지진이 아닌 건 아시잖습니까. 그렇지 얘들아?”
박 전도사가 우리를 보며 대답을 강구했다.
그렇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에게 밖의 상황을 말했다.
갈라진 하늘과 불덩이. 그리고 돌연변이 괴물. 괴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사실.
그러자 강 집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나라도 믿지 않겠다. 괴물이니 불덩이니.
하지만 박 전도사는 달랐다.
“그렇다면 선발대를 먼저 보내 정찰하게 하시죠. 만약 반대 차선 터널에 승우가 말한 괴물이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우선 괴물을 목격한 승우와 제가 먼저 반대쪽 터널에 다녀오겠습니다. 집사님과 나영이는 여기서 물건 좀 정리하고 핸드폰으로 밖의 정황을 좀 살피렴. 정확히 무슨 일인지, 국가는 대응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우리가 구조를 청하려면 어디로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도 알아보는 게 좋겠다.”
“네, 알겠어요.”
이윽고 박 전도사가 나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박 전도사가 명령처럼 말하는 것이 이에 뭐라도 낀 것처럼 계속 불편하다.
하지만 모두 맞는 말이니 뭐라 할 처지는 못 됐다.
그렇게 그를 따라 비상구 표시가 있는 초록빛을 쭉 따라갔다.
그러자 그의 말처럼 반대 차로로 들어가는 비상구가 나왔다.
이윽고 그가 문을 열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우리를 덮쳤다.
이에 나는 핸드폰을 켜 손전등을 켜려고 했다.
그러자 핸드폰 불빛을 본 박 전도사가 내 손을 급하게 잡았다.
“안 돼.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까지 기다려.”
“무슨…”
“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가 속삭이듯 말하며 내 핸드폰을 뒤집었다.
그래, 그의 말이 옳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로 집어넣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했다.
그러니 점차 주변 사물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보이지? 그럼 이거 끼고 몸을 낮춰 이동하자.”
박 전도사가 나에게 목장갑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목장갑을 끼고 천천히 그와 함께 이동했다.
이 터널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는지 완전한 어둠은 아니다.
그 증거로 출구와 입구 쪽에서 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다.
주변에는 자동차로 추정되는 잔해와 파편이 널려있고 알 수 없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발밑을 적신다.
나는 기름인가 하여 손가락을 찍고 냄새를 맡아봤다.
우선 이건 기름은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피? 피가 낭자하면 그 혈향이 남는다는데, 사실 난 피 냄새를 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기에 박 전도사를 불러 물었다.
“이게 뭘까요?”
“잠깐만, 이건…. ‘우블렉(oobleck)’이잖아?”
“우블렉이요? 그 액체가 되었다가 고체가 되었다가 하는 ‘전분물’이요?”
“공대생이라더니, 이것저것 잘 아는구나. 하하.”
“얘들이 장난감이라도 흘렸나?”
“이건 평범한 우블렉이 아니야. 곡물 향이 없고 실리콘 같이 화학약품 냄새가 약간 나지? 이건…”
“설마 방탄용 나노입자 실리콘 우블렉?”
*우블렉: 감자전분으로 만든 충격 완화제로 평상시에는 액체 상태이다가 충격이 가해지면 고체로 변해 충격을 흡수한다.
그가 나를 기특하게 바라본다.
기분이 미묘하게 안 좋아지려던 찰나, 그와 동시에 소름 끼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취익, 취익. 콰직.]
터널의 입구 밝은 쪽에서 괴물이 터덜터덜 걷고 있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그 형체가 보인다.
하지만 전에 봤던 괴물과 달리 한쪽 발을 질질 끄는 것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저게 그 괴물?”
박 전도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전도사는 조용히 나를 붙잡고 되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저 돌연변이의 상태를 보아하니,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조사하거나 관찰할 기회가 없을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돌아가던 그의 어깨를 잡고 괴물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다.
“다쳤어요. 조금만 더 보죠.”
이에 괴물의 눈치를 보는 박 전도사가 눈을 깜박이며 고심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나는 금방 반대쪽이 무너지지 않았나 보고 올게.”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괴물에게 좀 더 다가가 그 행동을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다리가 반대로 꺾여있고 한쪽 날개와 팔이 축 처져 있다.
혹시 터널 안으로 도망칠 때 나와 동생을 쫓다가 파편에 맞은 놈일까?
희한한 건, 옆에 죽은 사람들을 잔뜩 쌓아놓고 구경만하고 있단 것이다.
혹시 식량을 저장해놓고 천천히 먹는 습성을 지닌 것일까?
그리도 더욱 자세히 보니, 아까 흐르던 하얀 액체 ‘우블렉’이 그 돌연변이의 복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설마 저 괴물은 온몸을 방탄복, 혹은 방검복을 두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까?
다행히 빛은 여전히 역으로 쏟아져서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바람도 반대로 불어 우리 냄새를 못 맡는 듯하다.
그때 갑자기 박 전도사가 소리도 없이 다가와 나를 두드린다.
‘흡!’
나는 소스라치듯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니, 사람이 인기척이라도 내야지. 이 어둠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관찰하고 있는데, 진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기분과 달리 내 심장은 최고조로 뛰고 있다.
그러자 박 전도사가 허옇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미안. 좀 어떠니?”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은 여기까지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에 우리 둘은 조용히 뒤로 돌아 반대로 향하려고 했다.
돌아가 동생과 다친 여자, 강 집사를 데리고 몰래 반대로 향하면 그만이다.
그때 갑자기 멈춰 있던 자동차 중 한 대에서 시동이 걸리더니 라이트가 켜졌다.
“어?”
차 안에는 겁에 질린 남성이 급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돌연변이 괴물은 갑자기 차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남성은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하지만 괴물이 한 발 더 빨랐다.
괴물은 뒤에 매달린 채로 성큼성큼 운전석으로 가더니, 곧 날카로운 발톱으로 앞 유리와 함께 운전자를 꿰뚫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 차들을 모조리 박아버리니 몇몇 차들로부터 도난 경보음이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 전도사가 나에게 속삭이듯 외쳤다.
“뛰어!”
차량의 비상등과 전조등이 깜박이고 비상음이 터널을 울리자 괴물이 고성을 지른다.
그리고 하필 그 빛에 우리 모습이 비친다.
젠장, 운도 지지리도 없지.
어쩔 수 없다.
이미 발각되었으면 비상구로 전력 질주해야 한다.
괴물은 우리를 보더니 곧장 발톱에서 운전자를 뽑아 올리더니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 전도사님이 나를 앞으로 세워 뛰게 하더니, 주위에 잡히는 물건을 모두 던지기 시작했다.
아마 괴물의 진로를 방해할 목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달려왔다.
젠장, 젠장! 이럴 거면 관찰하자고 하지 말 걸!
하지만 늦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계속 뛰어!”
다행히 비상구는 가까웠고 괴물은 다리를 절뚝인다.
우리는 급하게 비상구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박 전도사님이 나를 세차게 밀더니, 비상구의 미닫이문을 닫으며 외쳤다.
“헉, 헉. 빨리 숨어!”
하지만 박 전도사만의 힘으로는 터널의 미닫이문이 닫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나를 답답하게 쳐다보았다.
“뭐해? 안 숨고!”
우리 고함에 멀리 있던 강 집사와 동생이 뛰어오기 시작한다.
숨어? 어떻게, 어디로. 양옆 출구가 꽉 막힌 이곳에 어떻게 숨으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박 전도사와 힘을 합쳐 문을 닫는 것이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다.
이에 나를 숨으라고 밀쳐대던 박 전도사에게 다가가 그를 도왔다.
그러자 그때가 되어서야 문이 ‘끼긱’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외쳤다.
“으으윽, 닫혀!”
그때 강 집사님이 다가왔다.
눈치 빠른 그는 영문도 모르고 우리가 문 닫는 걸 도왔다.
그렇게 강 집사님이 합류하자 문이 더 부드럽게 움직였고, 곧 문을 완전히 닫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에 나와 전도사님, 집사님 세 사람은 문에서 나가떨어졌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움푹 파인다.
도대체 저 생물의 정체가 무어란 말인가. 돌연변이 생물? 외계인? 지구 멸망을 위해 보낸 신의 사자(使者)?
하지만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마, 막아야 해요! 빨리!”
그러자 강 집사님이 곧장 뛰어 트럭을 운전해 왔다.
그는 능숙하게 트럭으로 입구를 틀어막았고, 결국 괴물의 진입을 막을 수 있었다.
그 정체 모를 것은 몇 번을 더 쾅쾅거리더니 곧 열리지 않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린 터널에 갇히게 되었다.
이런 망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자 셋이 무너진 터널 입구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장비 없이 무너진 잔해를 뚫긴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괴물이 터널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생존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 터널에 택배차와 구급차가 있어 물과 간단한 식료품, 의약품 등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터널에는 환풍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어 산소에 대한 문제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필품을 모아 놓고 잠깐 앉아 회의를 했다.
“우선 이 정도가 다인 것 같습니다. 우선 여기서 괴물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으니…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 전도사님의 질문에 동생이 말을 이었다.
“음…. 컵라면에 사과 한 박스씩, 생수 2L짜리 세 박스. 그 외 에너지 바 스무 개랑 과자 여섯 봉지. 이거 아껴 먹으면 2주는 버티겠는데요?”
아니, 먹는 것만 보면 그렇지만 보는 것과 다르다.
“물이 너무 부족해.”
내 대답에 동생이 반박하듯 나섰다.
“사과를 먼저 먹고 물을 섭취하면 수분이 보충되니까, 어차피 사과가 가장 먼저 상하잖아. 사과를 먹을 때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하루 한 병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사과가 16개니까 하루에 사과 한 개랑 에너지 바 한 개씩 먹어서 물 섭취를 최소화하면 가능해. 사실상 저기 누워 있는 여자까지 모두 5명이니까, 사과를 하루 한 개씩 먹으면 3일 정도는 섭취를 줄일 수 있어.”
“사과 한 개랑 에너지 바 한 개? 무리지.”
“아니야. 우리 몸에 축적된 있는 에너지도 생각해야지. 먹는 양은 처음에는 적게 가지고 나중에 점차 늘리는 게 더 좋아.”
그때 강 집사님이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 우리 청년들 싸우지 말고. 물은 차차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 저기 시체들부터 한 곳으로 몰아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청결에 힘쓴다고 해도 시체와 같이 있으면 질병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부패할 때의 악취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에 강 집사님의 말대로 우리는 시체를 캠프와 가장 먼 곳으로 옮겼다.
죽은 이들을 처음 봤을 때는 눈물이 흐르고 토악질이 났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진다.
그에 반해 동생이나 집사님, 전도사님은 이 상황에 제법 덤덤하다.
나는 그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 그런데 왜 엄마는 아버지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한 걸까? 보면 이렇게 충격받을까 그랬던 걸까? 교통사고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왜 엄마는 아빠 시신을 혼자만 봤을까?”
동생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나에게 질문했다.
“몰라.”
“우리 아빠 얼굴 기억나?”
“응. 조금.”
“나는 안 나.”
“너는 어렸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남은 건 엄마밖에 없었는데.”
동생의 말에 다시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그때 전도사님이 다가왔다.
“우선 살아남는 거에 집중하자. 여기서 나가고. 그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렇게 우리는 처참한 주검들을 모두 정리하고 화장실까지 정했다.
그때 강 집사님이 갈라진 아스팔트 구멍을 파더니 주변에서 발견한 컵을 구멍에 넣고 비닐을 덮었다.
그리고 비닐을 돌로 고정한 뒤, 정 중앙에 가벼운 돌을 놓아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이걸로 물은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습니다.”
강 집사님은 뭐하던 사람이었을까?
저렇게 물을 얻을 수 있단 사실을 강 집사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물론 나도 핸드폰으로 생존 방법을 검색하려 했지만, 이 망할 터널에서는 도통 핸드폰이 터질지지 않는다.
그리고 젠장할, 모바일 메신저는 바람난 여자 친구의 비참한 사과로 끝나있다.
정말 최악이다.
“이제 좀 쉬죠. 시간이 저녁인데, 먹을 거 먹고 불침번(不寢番)을 정해야겠습니다.”
강 집사님은 혹시 군인인가?
어쨌든 그의 의견이 옳다.
우리는 사과 한 개와 에너지 바를 먹고 정해진 양의 물만 마셨다.
그리고 둘러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 괴물, 정체가 뭘까요?”
동생이 정적을 깨고 묻는다.
이에 유일하게 괴물을 못 본 강 집사님이 자신 있게 말했다.
“총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사격은 어느 정도 합니다.”
그는 본인이 퇴역 군인으로 소총과 권총 사격에 자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까지 엽총으로 멧돼지 사냥도 자주 했던 터라 그 자신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반박했다.
“집사님. 죄송한데, 그 괴물…. 총으로 안 될 것 같습니다.”
“응? 아니, 왜요?”
“우블렉, 그러니까. 그 괴물은 전신에 방탄조끼를 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예?”
괴물을 실제로 보지 못한 강 집사님의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와 같이 그 실체를 마주한 박 전도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괴물에게서 나온 거구나.”
“네. 어떻게 생물이 그런 철갑 같은 피부와 지방층이 형성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괴물 배에서 조금씩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거, 그 돌연변이 생물. 그건 생체 병기야.”
“예?”
지금 이 아저씨는 뭘 알고 하는 소린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지?
내 의구심을 알아차렸는지, 박 전도사가 회개하듯 자기 젊은 시절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다들 예전에 ‘만능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했던 황 박사 이야기 아시죠? 언론에서는 거짓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우린 ‘프로젝트H’라고 불렀죠. 저는 거기 초창기 개발진입니다.”
“줄기세포요?”
의학에 관심이 많은 동생이 물었다.
그러자 박 전도사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응. 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 대체 장기 생산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상용화가 안 되었죠?”
“비용. 상상도 못 할 막대한 비용에 몇몇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활용할 엄두가 나지 않은 거지. 그래서 연구의 방향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어. 그게 바로….”
강 집사님이 대신 그 말을 이었다.
“생체 병기군요.”
“예. 맞습니다. ‘프로젝트K’ 배아줄기세포를 변형하여 병기를 대신 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 일명 ‘키메라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연구는 극비에 이루어졌기에 전자문서로 남아있지 않지요. 저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윤리적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전 결국 졸지에 국가 비밀을 빼돌리려는 도망자로 몰렸죠. 그래서 신분을 위장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탈주자가 생김에도 그들은 온갖 생물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전투에 최적화된 돌연변이를 만들어냈군요.”
그런데 나는 박 전도사의 말에 모순을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생체 병기를 왜 자국에 풀어 놓는단 말인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 풀어 놓는 건가요? 최소 북한에서 연구했다고 하면 믿겠는데.”
“글쎄. 그리고 아직 저렇게 완벽한 생명체는 못 만들었을 거로 아는데….”
“그럼. 전도사님은 지금 저 괴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는 거네요?”
“그래. 그런데 연구 일지를 보면 해답이 나올지 모르지.”
“그러면 저 괴물이 이동하지 않는다면, 맞설 대책이 있나요?”
내 질문에 박 전도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괴물과 맞서지 않을 걸로 단정지었는지, 표정이 매우 단호하다.
젠장. 그러면 말을 꺼내질 말던가.
하긴 박 전도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낌이 별로였다.
계속 명령조로만 이야기하고 얼굴도 음침한 것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이다.
어색한 침묵이 공간에 가득 찬 사이, 강 집사님이 끼어들었다.
“우선 불침번은 11시부터 1시까지 나영 자매가 하고, 그 뒤로 전도사님과 저 그리고 승우 청년이 하는 걸로 하시죠.”
강 집사님은 나름 우리를 배려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불침번은 처음과 끝이 가장 편하다.
그렇기에 나는 군말 없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잠을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면접에 떨어진 건 이제 일도 아니다.
면접에 떨어지고 아버지 장례식 중 애인이 바람났을 때는 세상이 무너졌음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 너무 비참하다.
엄마의 죽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바람난 전 여친 정여진이 계속 생각난다.
찌질한 건 알지만 보고 싶다.
“승우 청년. 승우 청년?”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강 집사님이 나를 깨운다.
그에 나는 결린 어깨를 풀며 일어났다.
“아, 예. 불침번. 예. 알겠습니다. 어? 그런데 그 환자는요?”
“환자?”
강 집사님이 당황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핀다.
전에 구르마로 끌고 왔던 환자복 입은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베테랑인 강 집사님이 실수라도 한 걸까? 아니면 나를 깨울 때 소리 없이 일어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끼기긱’하는 쇠 마찰음이 들린다.
설마…설마…. 터널 비상구인가?
“비상구요!”
나와 강 집사님은 비상구로 달려갔고, 그 소동에 전도사님과 동생도 일어났다.
한편, 환자복 입은 여자는 비상구를 열려고 낑낑거린다.
“안 돼!”
절박한 내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결국 작은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곧 비집어 놓은 작은 틈으로 날카로운 발톱이 들어오더니, 비상구의 철문이 뜯어져 나갔다.
“피해!”
그러나 환자복 여성은 괴물의 발톱을 피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저딴 짓을? 정신이 온전치 않은가? 아직 상황에 대해 잘 모르나?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나는 미친 듯이 뛰어 박 전도사와 동생에게 달려갔다.
“괴물이에요! 문이 열렸어!”
그러자 박 전도사님이 동생을 데리고 큰 트럭 밑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그를 확인하고 재빨리 차 뒤로 숨었다.
강 집사님은 무사할까? 괴물은 어디 있지?
몸을 납작 엎드리니 동생과 전도사님이 보인다.
전도사님은 나를 바라보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조용히 하라고? 왜?
[쿵쿵.]
괴물이 어느덧 내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다.
젠장. 소리를 죽여야 하는데 호흡이 가빠져온다.
나는 입을 막고 숨을 최대한 참았다.
그런데 콧김 같은 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리고 날카로운 발톱이 땅에 긁히는 소리도 들린다.
이에 피가 거꾸로 돌고 심장이 튀어나온다.
참자. 참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괜찮아질 거야.
“어?”
눈을 감았다 뜨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괴물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미친. 나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엄마가 살라고 했는데….
괴물이 부리 같은 주둥이를 벌리자 무수히 많은 이빨이 보였다.
죽을 때 주마등 같이 일생이 스쳐간댔는데, 그런 건 없다.
그냥 아플까봐 무섭고, 그저 간절히 살고 싶을 뿐이다.
그때 박 전도사님이 힘껏 달려와 괴물에게 부딪혔다.
“야!”
그는 한 손에는 쇠 파이프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떨어져 나간 자동차 문을 가까스로 들고 외쳤다.
마치 검과 방패처럼 그것들을 휘둘렀다.
하지만 괴물의 그를 귀찮은 모기처럼 대했다.
괴물이 팔을 휘두르자, 전도사님이 자동차 문으로 그 팔을 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찮은 벌레처럼 튕겨 나간다.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며 일어나보려 하지만 몸을 비틀거렸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괴물에게 전력 질주하기 시작한다.
[빵빵!]
“승우 청년 피해!”
강 집사님이다.
괴물은 자동차의 차체를 손으로 잡아 충격을 최소화하며 버텼다.
마치 스모선수처럼 발바닥에 마찰을 일으키며 터널 벽까지 밀려갔다.
그때 동생이 다가와 외쳤다.
“오빠! 전도사님이 구급차를 쓰래!”
“구급차?”
“심장 제세동기!”
아! 심장 충격기.
아무리 방탄조끼 혹은 방탄 가죽을 입었다고 해도 체내에 전류를 통해 충격을 주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짧은 시간에 전도사님은 그런 걸 생각했다고? 무서울 정도로 머리가 좋다.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나? 아니, 지금 잡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
나는 터널에 있던 구급차를 끌고 강 집사님을 도왔다.
“강 집사님 좀만 더 버텨요!”
나는 구급차를 뒤로 돌려 괴물에게 후진으로 들이받았다.
그러자 열린 문으로 동생이 심장 충격기를 괴물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죽어!”
동생의 고함과 함께 무언가 충전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펑!’하는 소리와 함께 동생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괴물의 머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났고, 강 집사님의 차에 그대로 힘없이 밀렸다.
이윽고 신기하게도 괴물은 액체처럼 녹아갔다.
검고 허연 액체로 녹더니 그 괴물의 뱃속에 한 흑인 여자가 들어가 있다.
그 여자는 의식이 없었다.
“오빠, 사람이야.”
“어. 괘, 괜찮나?”
여기저기 생채기와 함께 부러진 팔과 다리가 보인다.
동생은 감각적으로 그녀의 뼈를 맞추고 부목을 대어 주었다.
“다행이야. 살아 있어. 그리고 괴물은 일단 없어진 건가?”
우리는 이 사건이 일단락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고는 급하게 도로에 아무렇게 누워있는 박 전도사님에게 달려갔다.
“전도사님 괜찮으세요?”
“아니. 쿨럭. 난 끝인 거 같아.”
"예?"
동생이 전도사님을 살리고자 급하게 몸을 살폈다.
하지만 곧 눈물을 글썽였다.
“팔과 다리가 완전히 부러졌어. 쿨럭쿨럭. 그리고 숨을 못 쉬겠어. 아마 갈비가 폐를 찔렀겠지. 쿨럭.”
전도사님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껏 토하더니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엄마 유언을 들은 것처럼, 혹시 내 유언도 좀 들어줄 수 있니?”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찍이 죽음을 받아들여 버리는 전도사님에게 화가 났다.
그의 모습에 파이프가 복부에 박혀 고통스러우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이에 나는 그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회피하는 듯한 대답을 했다.
“싫습니다. 죽어도 전도사님 들고 갈 거니까, 유언 같은 거 하지 마시죠.”
피를 흘리는 박 전도사님이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세상엔 말이야. 하기 싫어도, 할 수 없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야. 잘 알지?”
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내가 대여섯 살일 때 자주 듣던 말인데, 도대체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
박 전도사님을 혹시 어릴 적에 만나 봤었나? 아니,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 생각났다.
군복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던 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말이다.
“이 열쇠를 가지고 서울 중구 충무로 ‘삼익아파트’ 311동 104호로 가.”
“혹시 당신….”
하지만 이미 박 전도사의 시선엔 초점이 없었다.
맥을 살피니 이미 멎었다.
어디로 가라는 초라한 유언을 남기고 박 전도사는 결국 죽어버렸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왜 박 전도사를 처음 봤을 때 불편했는지 이해되었다.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것이었을까?
혹은 동족혐오와 비슷한 불편함이었을까?
그렇다면 엄마는 가짜로 장례식을 치른 걸까? 도대체 왜?
그러나 이 모든 건 다 추측일 뿐, 더는 박 전도사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그저 그의 유언대로 삼익아파트로 가보는 수밖에.
그리고 엄마의 유언대로 계속 생존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온 세상에 불기둥이 치솟는다.
아, 이 세상은 멸망했구나.
그래도 나는 동생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생존한다. 반드시.
빌어먹을 이 멸망한 세계.
빌어먹을 노래가 또 맴돌기 시작한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