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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Jul 26. 2023

나의 상담묘 길고양이

고양이계의 오은영쌤


생각해보면 그랬다. 울고 싶을 때,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고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때 우리 ‘냥이’가 있었다. 냥이를 찾아가 울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울려고 찾아간건 아닌데 만나면 눈물이 났다.


인생 묘생 모두 통달한 현묘, ‘냥이’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실은 어둑어둑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듯한 나의 일상. 나는 기어코 지나야하는 이 터널을 조금이라도 즐겁고 활력있게 지나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지냈다. 끝없이 희망 회로를 돌리며 스스로를 독려하며 계획을 세우고, 그것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찾아오는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힘들 때, 나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새로운 운동을 찾아 하기도 하고, 컬러북에 색칠을 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하고, 조그만 집을 소소하게 꾸며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음식을 하기도 하고, 절을 찾아 108배를 하기도 하고, 눈에 안들어오는 책에 파묻혀 보기도 했다. 어떤 건 전혀 효과가 없었고, 어떤 건 잠깐이지만 제법 위로가 되기도 했다. 견뎌야하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이런저런 시도를 꾸준히 한 것이다.


다 말해보라옹, 뭐든 다 들어준다옹~


그 수많은 방법 중 나를 가장 강력하게, 즉각적으로, 행복감을 전해 주는 건 단 하나, 나의 친구 냥이와의 만남이었다. 기쁠 땐 기쁜 마음으로 가서 냥이를 만났고, 슬플 땐 슬픈 마음으로 가서 냥이를 만났다.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고 지금 당장 어찌 해결할 수 없는 마음 아픈 일이 생길 때면 이도저도 다 싫고 귀찮아진다. 그럴때면 냥이를 만나러 가는 시간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간다. 매일 가던 거니까 가고, 냥이가 기다릴 걸 알기 때문에 간다. 무거운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간다.


“냥아~”


부르면 풀숲에서, 혹은 벤치 아래서 기다리던 냥이가 "야옹~"


대답하며 종종종 다가온다. 그러면 순간 마음이 활짝 열린다. 그렇게 다가온 냥이가 다정하게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비면 그 순간 난 그냥 행복감이 솟아오른다. 무거운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몽글몽글 포근포근 달짝지근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아, 안 왔으면 어쩔 뻔...
오길 잘 했다, 정말 정말...



속으로 생각하며 그릇을 내려놓고 파우치 사료를 부어준다. 작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냠냠 맛있게 먹는 냥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 속 소리가 나온다.


냥아, 있잖아, 언니가 오늘 너무 마음이 안 좋아...


고양이는 먹으면서도 다 들을수 있다옹, 걱정 말라옹~


그렇게 심정 토로를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눈물이 왈칵솟는다. 기대했던 일이 취소가 되고, 이번만큼은 당선되리라 믿었던 공모에 떨어지고, 친형제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믿었던 사람이 차갑게 돌아섰을 때도, 못난 내 자신이 미웠을 때도 냥이는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눈물을 그냥 바라봐 주었다.




이런 변함없는 친구가 또 있을까. 이렇게 위로를 주는 상담사가 또 있을까. 내 속을 다 보이고도 부끄럽지 않고 후회되지 않는 든든한 존재가 또 있을까.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런 친구 냥아,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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