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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Oct 16. 2023

고양이도 친구가 필요해 2

사람 친구 인성 보소


우리 ‘냥이’에게 찾아온 친구, 치즈냥.

이 녀석이 냥이의 밥자리에 처음 올 때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였다.


응? 나? 응~ 나 치즈냥이라옹~


그동안 냥이의 밥자리에 찾아온 new 냥이는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잠시 머물다 사라지곤 했는데. 공원 밥자리의 터줏대감인 냥이와 밥자리를 공유하며 친구가 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 밥자리에 꾸준히 와야 하고,

- 냥이의 관심을 받아야 하고,

- 동시에 냥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그동안 이 조건들을 다 통과한 고양이는 없었는데, 치즈냥은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이젠 냥이의 친구이자 공원 밥자리의 공동 터줏대감이 된 것이다.




처음 치즈냥이 밥자리를 찾아오던 무렵. 난 요 녀석이 우리 냥이의 친구가 될 상인지 잠시 머물다 갈 뜨내기 상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점점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나고 어느새 매일 붙박이처럼 밥자리를 지킬 때까지도 긴가민가했다. 고알못이었던 난 냥이를 만나면서고양이의 세계에 눈을 떴는데 고양이 두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은 또 처음이었기 때문. 둘이 앞발을 들어 투닥거리는게 좋아서 장난치는 건지 싫어서 밀어내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둘이 떨어져 앉아있을 때도 안정감 있게 공간을 공유하는 건지 경계하며 떨어져있는 건지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고알못이 아니라 눈치가 없었던 걸까..)


친한 거라옹~ 무척 친한거라옹~


하지만 냥이와 내가 처음 만난 후 스며들듯 서로에게 익숙해졌던 것처럼 치즈도 어느새 이 밥자리에, 우리 냥이 곁에 스며들었다. 냥이도 치즈를 특별히 경계하지 않고 기꺼이 밥자리를 공유했다. 치즈는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공원 풀밭을 헤집고 다니고,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벌레도 쫓아다니며 그야말로 캣초딩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냥이도 까불거리는 치즈를 기꺼이 받아주는 모양새였다.




추측컨대 치즈는 길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잠시라도 엄마 고양이의 보살핌을 받았는지 아니면 태어나자마자 길을 떠돌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쩌다 냥이가 있는 이곳 공원 밥자리까지 오게 됐고. 마침 이곳엔 고군분투하며 밥자리를 지키고 있던 냥이가 있었고. 그리고 냥이는 기꺼이 이 새끼 고양이를 내치지 않고 함께 사는 선택을 한 것이다. 관대한 우리 냥이 뤼스펙!




그렇게 나타난 솜털 보송한 새끼 고양이 치즈는 이제 청소년 고양이가 되었다. 덩치는 거의 성묘처럼 보인다. 다리가 길쭉길쭉한게 호리호리한 편인데 수컷이라 그런지 이미 냥이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여전히 발랄하다. 높은 나무도 샤샤샤샥~ 거침없이 오르고, 푸바오처럼 나뭇가지에 널브러져 있기도 한다. 점프도 잘하고, 벌레도 잘 잡는다. 그리고 쫄보다. 밥자리에 덩치 큰 고양이가 나타나면 잽싸게 도망도 잘 간다. 그래도 우리 냥이에겐 좋은 친구이자 동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베프가 될줄 몰라 새끼 때 사진은 찍지 않았..


그런데!! 난 사실 처음엔 치즈냥이 마냥 반갑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철저히 나만의, 극히 개인적인, 어쩌면 좀 이기적일 수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난 우리 ‘냥이’를 만나면서 힘들었던 무기력에서 조금씩 벗어났고, 힘든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받는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애정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 우리가 매일 만나 “냥아~” “야옹~” 인사를 나누고, 냥이가 내 다리에 부비부비를 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을 나누는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 기다리는 냥이를 매일 찾아가야 한다는 책임도 더해진 것이었다.




흔히 캣맘들의 ‘길고양이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길고양이를 거두는 고단한 일상에, 그들이 겪는 불행을 고스란히 목도해야하며, 여름은 더워서 걱정이고 겨울엔 추워서 걱정이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란 의미인데. 이미 길고양이의 삶에 개입한 이상 그들과의 암묵적인 약속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감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매일매일 날 기다리는 고양이는 내게 ‘냥이’ 한마리면 충분했다! 그리고 잠시 왔다 사라지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치즈도 그럴수 있을거라 생각해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치즈야 미안..). 처음엔 차별도 했었다 (인성 무엇..). 밥자리엔 언제나 캣맘의 건사료가 푸짐하게 담겨 있었으므로 나는 냥이에게 습식을 주로 줬는데, 초반엔 옆에 치즈가 함께 있어도 냥이에게만 먹을 걸 줬었다(쓰고보니 내가 쓰레기..). 어차피 곧 사라질거라 생각해 그냥 캣맘 사료나 먹고 가라는 사인이었다.




우리 냥이가 그렇게 편협하고 속좁은 내가 준 습식 파우치를 먹을 때 치즈냥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가 줄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그냥 놓여있는 캣맘 사료를 먹곤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몇번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냥이가 내가 준 습식 파우치를 먹다가 치즈를 쳐다보곤 했다. 마치 '나 혼자 먹어도 되는 거냥?' 하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날 냥이가 치즈를 쳐다보자, 치즈가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냥이는 치즈가 함께 먹을 수 있게 살짝 비켜주는게 아닌가. 그러고 둘이 나란히 앉아 함께 먹는거다! (과거의 내가 부끄..) 먹고 있는 건 어쩌지 못해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이젠 같이 먹는다옹~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비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간 밥자리에 역시나 냥이와 치즈가 함께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 냥이에게만 습식 파우치를 줬고, 치즈는 그냥 나를 해맑은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비를 맞으면서..!! 아..!! 그 순간 난 깨달았다. 내가 해선 안 될 짓을 하고있단 사실을. 각성의 순간이었다. 치즈에게 너무나 미안한 순간이었다.


치즈야, 미안.
미안하다, 언니가 미안해.
너도 먹어, 어서 와서 먹어.

난 허둥지둥 치즈에게도 습식 파우치를 따로 담아줬고, 치즈는 어떤 원망도 없이 맛있게 먹었다. 다른 캣맘들은 적게는 서너군데부터 많게는 열개가 넘는 밥자리에 밥을 주기도 하고, 어떤 캣맘은 산에 올라가서까지 밥을 주는데, 난 고작 냥이 한마리에게 밥 주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어떻게든 나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치즈에게 상처를 줬던거다.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합니다...


밥 먹은 후 함께 순찰도 돈다옹~


그 비오는 날, 나의 작고 못난 마음을 깨닫고 반성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휴... 늦었지만 늦지 않았어. 이렇게 부족하고 바보같은 사람 친구를 원망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우리 치즈.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 나의 첫번째 길고양이 ‘냥이’의 베프가 된 치즈야. 나와 냥이에게 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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