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혼의 미립자 Sep 30. 2022

고양이 미라클 루틴 (feat 생존 루틴)

일상의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 기적같은 성과를 얻는다는 미라클 루틴! 특히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명상, 운동, 독서 등의 미라클 모닝 루틴이 있다는 점이라는데. 나는 우리 ‘냥이’를 보며 미라클 루틴을 생각해보곤 한다.


”올 시간이 지났다옹~ 5분이나!“


실제로 고양이들은 시간의 개념이 꽤나 뚜렷하다고 한다. 집고양이의 경우 주인(이라 쓰고 집사라 읽음)이 오는 시간에 맞춰 현관 앞에서 기다린다든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바람에 주말 늦잠을 자는 집사 옆에서 야옹거리며 달콤한 잠을 깨운다든지 하는.




나의 길고양이 ‘냥이’에게 밥을 주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시간 개념이었다. 지금처럼 매일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정착되기 전에는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다. 냥이가 좀 더 일찍 온다든지, 내가 좀 늦게 간다든지 하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냥이의 밥자리에 가는 시간이 일정해지자 칼같이 먼저 와서 대기한다. 마치 어디서 시계 보고 오는 것처럼. 냥이는 밥주는 시간과 사람 친구를 기억하고 왔을 뿐이지만, 어쩌다 냥이를 사랑해버린 나로선 마치 날 보고싶어 기다린다는 착각에 과도한 반가움과 감격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데 아주 간혹 이 루틴이 깨어지는 때가 있는데, 비가 아주 많이 오거나 눈이 펑펑 내릴 때다. 이런 날엔 가끔 오지 않을때도 있다. 처음엔 이런날엔 당연히 냥이가 오지 않을거라 생각해 가지 않았는데,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그날따라 혹시 하는 생각에 우산을 쓰고 가 봤다. 그런데 세상에~ 우리 냥이가 풀숲 속에서 비를 피하며 날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비를 피한다고 피했지만 털이 촉촉하니 젖은 채 날 보고 ‘야옹~ 야옹~’ 우는 냥이. 나도 같이 울 뻔... 그날 이후로는 비가 퍼부어도 눈이 쌓여도 일단 간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빈다.


오늘은 제발 오지 마라.
그냥 비 피할 수 있는 어디 구석에서라도
비 맞지 말고 있어라.


그런 궂은 날엔 냥이와의 만남이 더없이 마음 아프고, 오히려 만나지 못하고 돌아설 때 마음이 놓이곤 한다.




그러던 지난 8월, 태풍 힌남노 강남 침수로 떠들썩했던 날, 혹시나 설마 하는 마음에 큰 우산 쓰고 장화 단단히 신고 가 보었는데… 냥이가 있었다...!! 그 퍼붓는 폭우를 쫄딱 맞고 털이 젖은 채로…!!



“냐옹~ 냐아옹~”

“아오~ 냥아~!! 이렇게 비오는날 왜 기다리고 있어~~”

“야옹~”

“하 참.. 그냥 비 안맞는데 가 있지...”


심지어 비를 피할 수 있는 차양막도 있는데 굳이 풀숲에서 비를 맞는건 왜인지. 게다가 이미 일찍 오신 캣맘이 놓고 간 밥은 반 이상 먹은 걸로 보아, 단순히 배가 고파서 기다린것 같진 않고, 뭐든 자신의 일정을 반복하는 고양이 특유의 습성으로 기다린 듯하다. 그야말로 고양이의 루틴! 같은 밥자리에 오시는 캣맘과의 일정도 지키고, 더 늦게 오는 나와의 일정도 지키는 것. 매일 만나는 냥이지만 길고양이가 사람 손을 타는 건 좋지 않다고 해서 최대한 접촉은 하지 않는데 이날만큼은 비에 흠뻑 젖은 털을 그냥 볼 수 없어 휴지로 좀 닦아주려 했으나 그런 손길엔 예민하게 피하고 마는 우리 냥이.




미라클 루틴은 인간에겐 자신을 성장시키는 좋은 습관이지만 길고양이들에겐 생존의 루틴인 것이다. 참 기특하면서도 마음 아픈 루틴. 하지만 길고양이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소중한 루틴. 고양이의 미라클 루틴.

이전 16화 고양이도 친구가 필요해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