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 나뭇잎에 소복소복 내려앉은 눈꽃송이,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겨울풍경이다. 만약 오늘같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새하얀 눈까지 내린다면 그저 축복이고 낭만이다. 화이트 12월, 화이트 연말이란 말은 없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사랑스러운 표현은 있는걸 보면. 하지만 길고양이들에게 영하의 기온에 내리는 눈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나의 고양이, 길고양이 그녀, ‘냥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냥이를 사랑하는 나도 눈이 더이상 낭만이 아닌 걱정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냥이는 공원에서 밥을 먹고 풀밭에서 폴짝폴짝 뒹굴뒹굴 놀기도 하지만 잠자리는 따로 있는 듯 했다. 공원엔 눈비를 피해 잘 수 있는 공간이 딱히 없기도 하고,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날엔 나타나지 않을때도 있어, 어딘가 비교적 안전하게 잘 수 있는 잠자리가 따로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독 추운날, 혹은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 만나 밥을 줄 때는 항상 이런 당부를 했었더랬다.
냥아, 지금 비 오니까 이거 먹고 얼른 가.
너 비 올 때 자는데 있지? 비 안 맞는데 있지 그치?
거기 가서 자, 알았지?
(먹기만) ...
그런데 이번 겨울, 공원 밥자리 근처에 상자 하나가 등장했다. 평범한 택배 상자였지만 테이프로 감아 나름 방수 기능을 갖추고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는 동그란 구멍 하나가 뚫린 길고양이집. 처음엔 본체만체하던 냥이가 갑자기 기온이 훅 떨어진 어느날 그 상자 속에 쏙 들어가 있는게 아닌가.
아...!! 그랬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냥이의 평소 잠자리보다 이 조그만 택배 상자가 더 따뜻한 공간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원에 길고양이집을 마련해두면 혹시나 민원을 넣거나 훼손하는 사람이 생길까봐, 그래서 이곳을 찾는 고양이들이 더 노출돼 밥자리에까지 나쁜 영향이 미칠까 망설였는데, 내 생각이 짧았구나 싶었다. 야무지게 고양이집을 마련해주신 분이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맙다.
이후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강추위와 폭설에 대응하기로 했다. 눈이 온 후에는 혹시 깔아놓은 담요가 젖었나 체크하고 새 담요를 깔아주고, 추워서 금새 물이 얼어버려 제대로 수분 섭취를 못할 것 같아 따뜻한 국물이 넉넉한 먹을거리를 챙기고 있다.
따뜻하게 드시라옹~ 식기 전에 드시라냥~
(할짝할짝) ...
영하 10도는 우습게 내려가는 요즘, 냥이와 나, 그리고 고마우신 캣맘님들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혹시 길고양이집이나 길고양이 급식소가 여러 이유로 불편하시더라도 추운 겨울만큼은 이해해 주세요. 혹독한 이 계절, 사람도 길 위의 동물도 함께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요.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