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혼의 미립자 Feb 01. 2022

눈 오는 날이 슬퍼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는 단연코 맑은 날이다. 춥고 더운건 크게 상관없고 무조건 햇볕이 쨍하게 맑은 날이 좋다. 반면 비오는 날은 왠지 마음이 우울해져 별로다. 하지만 이 비가 겨울을 만나 눈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이 노래가 생각나는 까닭은 무얼까.. 난 왜 이 노래를 알고있나..) 눈 오는 날도 맑은 날만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냥이를 만난 이후로 이 눈이 반갑지 않다. 추위에약한 고양이들에게 원래 겨울이란 반갑지 않은 시기인데, 늘 바깥 생활을 해야 하는 길고양이들에겐 더욱 혹독한 계절이고, 여기에 눈까지 오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되기 때문이다.




눈, 비를 피할 수 없는 곳에 마련된 밥자리에서 밥을 먹는 길고양이들은 힘겹다. 밥자리까지 오는 길도 힘들고, 내리는 눈을 속절없이 맞으며 밥 먹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눈, 비가 오는 날엔 아예 밥자리에 오지 않는 (오지 못하는) 길고양이들도 많다. 우리 냥이도 1년 넘게 지켜본 결과, 비가 조금씩 보슬보슬 오는 날까진 밥자리에 오지만 그보다 많은 비가 내릴 땐 오지 않았다. 눈이 올 때도 마찬가지다. 캣맘은 날씨에 따라 조금이나마 눈, 비를 피할수 있는 곳에 사료를 두곤 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춥고 눈이 쌓여도 먹어야한다 눈물겹다



작년 겨울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늘 가던 시간에 밥자리에 갔는데 캣맘의 사료와 물은 꽁꽁 얼어있고, 냥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 만나러 오진 않아도 캣맘 밥이라도 먹고 갔다면 좋으련만 그 사정을 알 방법은 없다.


냥아, 이렇게 눈 오는 날엔 어디에 있는거니?
캣맘 밥은 먹고 간 거니?
잘 지내고 있는거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는 건 눈 쌓인 밥자리 주변에 고양이 발자국들이 찍혀 있는거다. 그 발자국이 우리 냥이의 것인지 다른 고양이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조그맣고 짠한 발자국에 작은 위안을 삼곤 했다.



그렇게 냥이를 만나지 못한 날이 열흘이 넘어가며 난 점점 걱정이 커지고 거기에 우울함과 상실감까지 더해졌다. 어떤 날은 밥자리에서 오지 않는 냥이를 기다리며 눈물을 찔끔 흘린 적도 있었다. 보름 넘게 냥이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난 머릿 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 했다. 좋은 쪽으로는 혹시 우리 냥이를 예쁘게 본 어떤 이가 냥줍해 식구로 들인건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다가. 혹시 불행한 사건 사고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어찌해야할 지를 몰라 괴로웠다. 그러다가 딱 17일째 되던 날, 냥이가 나타났다.


야옹~
냥아~!!!!!!


난 거의 부르짖듯이 냥이를 불렀고 우리 냥이도 제딴에도 반가웠던지 야옹거리며 부비부비를 해댔다. 하... 거의 울 뻔...


그동안 어디 갔었어?
힘들어서 안 온 거야?
캣맘 밥은 계속 먹었던 거지?
야옹~ 야옹~ 야옹~


겉으로 볼땐 큰 이상이 없는 걸로 봐서, 나보다 이른 시간에 오시는 캣맘 밥만 후다닥 먹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눈을 피한 것 같았다. 물론 추측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어떤 캣맘이 한 말이 떠오른다. 길고양이를 알게 된 후부터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고.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특히 요즘같은 추운 겨울, 거기에 눈까지 내리면 걱정이 두배가 된다. 그래서 난 더 이상 눈 오는 날이 예전처럼 반갑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 냥이와 다른 모든 길고양이들과 무사히 씩씩하게 이 겨울을 보내려고 한다.


이전 17화 고양이 미라클 루틴 (feat 생존 루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