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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Jan 31. 2023

넌 멋진 고양이!

민원도 눈보라도 꿋꿋하게 견디는 최강 길고양이

올 겨울은 유독 한파가 심했다. 매일 저녁 우리 냥이를 만나러 갈 때마다 기온을 확인하는 나는 어느새 1, 2도 차이에도 민감해졌다. 원래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나도 ‘엇! 좀 춥다’ 싶은 기온은 영하 5도쯤인데, 이 정도 추위가 오면 슬슬 긴장이 된다. 우리 냥이 어쩌고 있을지 춥지는 않을지 걱정돼서다.





올 겨울, 공원의 밥자리에서 밥을 먹는 우리 냥이에게 상자집이 생겼다. 비록 택배 상자였지만 안팎으로 테이핑하고 담요까지 깔려있던 애정어린 손길이 느껴지는 길고양이 집. 그 속에 쏙 들어가있던 우리 냥이. 덕분에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에도 펑펑 내리는 눈에도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는데.



어느날 그 상자 위에는 < **구청 공원 녹지과>에서 붙여놓은 철거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다.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아마도 누군가의 민원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 길고양이 상자 집은 키작은 나무 아래에 쏙 들어가 있어 애써 찾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리고 상자 주변은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냥이와 그녀의 친구인 치즈냥이는 무척 조심스럽게 이곳을 이용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오히려 되도록이면 사람들을 피하는게 고양이들의 습성인데 대체 어떤 부분이 길고양이들의 초라한 잠자리조차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싫었을까.




화가 나고 다급해진 마음에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알아보니, 구청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외의 사적인 설치물은 불법이라고 한다. 흠... 난 우리 냥이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마음이 헛헛해지고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며칠 뒤 저녁에 가 보니 상자 집이 사라져 있었다! 냥이 입장에선 그나마 꽁꽁 얼어붙는 추위를 살짝 피할 수 있었던 보금자리가 갑자기 사라진 셈이다. 그 조그만 동물에게 어떤 충격과 허탈함이었을지 짐작도 힘들다. 난 그저 주던 밥을 좀 더 따뜻한 국물과 함께 데워와서 줄 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새로운 길고양이 집이 생겼다! 이번엔 좀 더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더 깊숙이. 누가 갖다 놓았는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너무나 고맙고 다행이었다.




누군가는 민원을 넣고, 상자를 치워버리고, 또 누군가는 새 집을 놓아주고, 담요를 깔아준다. 길고양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이유는 있다. 그 중 일리 있고 타당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유난히 추운 올 겨울, 넓은 공원 한 구석에 길고양이집 하나 내어줄 작은 호의를 기대하는게 무리한 바램일까?



그리고 영하 10도를 훌쩍 넘는 초강추위가 연일 이어지던 어느날. 너무 추운날엔 상자에서 아예 나오지 않아 낮에 한번 가 보았다. 냥이와 친구도 내 마음을 알았은지 순순히 상자에서 나와 따뜻한 국물을 할짝였다. 옆에 쭈구리고 앉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하는데, 보통은 밥을 다 먹고 상자 집으로 쏙 들어가던 냥이가 기지개를 쫙 펴더니 꽁꽁 언 풀밭에서 친구와 사냥 놀이를 하는게 아닌가!



대체 오늘은 영하 몇도인가를 확인하고 혼자서 마음 졸이고 애태우던 나. 따뜻한 밥 먹고 엉덩이 씰룩씰룩거리며 사냥놀이 발동거는 냥이의 모습에 그만 마음이 확 놓여졌다.


역시 넌 멋진 고양이!
추위도 눈보라도 꿋꿋이 이겨내는 대단한 길고양이!
민원도 미움도 견뎌내는 용기있는 길고양이!
영하 7도에도 사냥놀이를 즐기는 멋진 고양이!

언제나 내 걱정보다 자신의 삶을 용기있게 헤쳐나가는우리 냥이. 내 약한 마음보다 훨씬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우리 냥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양이, 우리 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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