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혼의 미립자 Oct 06. 2021

글로 배운 고양이, 내가 만난 '냥이'

동네 공원에서 만나는 길고양이 ‘냥이’. 그녀는 나의 일상에 스며들 듯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난 인터넷 폭풍 검색으로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알아보고 EBS 프로그램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기 시작했다. 왜 그동안 무서워했던 세상의 고양이들이 다 귀엽고 예쁘고 애틋해진걸까. 나는 사료와 간식을 하나씩 사들이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고양이 관련 콘텐츠를 보며 즐거워하기시작했다. 그야말로 글로 배우기 시작한 것.     



나의 길고양이 ‘냥이’를 만나는 건 복불복이었다. 내가 동네 공원에 운동을 하러 가는 저녁 시간, 캣맘님이 사료를 두는 밥자리에서 ‘냥이’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만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둥그런 공원 트랙을 돌면서 밥자리 쪽에 다다르면 고개를 빼고 ‘냥이’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봤다. ‘냥이’가 있을 땐 반갑기 그지없고, 없으면 넘나 허전한 것. 도통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tmi. 예전 아는 남자 하나가 말했다. 헬스장에 가면 늘 예쁜 여자 한명에 시선이 꽂히는데, 잠깐 자기 운동에 집중하다가 그 여자를 놓치면 미친듯이 두리번거리며 찾게 되고 더이상 운동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그 말을 들을 땐 기가 찼는데 이젠 뭔 느낌인지 알것 같다)     

 



나의 운동 시간은 딱 40분. 비루한 나의 체력에 더 이상은 무리수. 그래서 40분 안에 ‘냥이’를 꼭 만나야 했다. 그런데 40분이 다 되도록 ‘냥이’를 만나지 못하면 '한바퀴만 더 돌자'는 마음이 생긴다. 한바퀴 더 돌아도 만나지 못하면 또다시 ‘한바퀴만 더 돌자’가 되는데, 참 신기한 건 그렇게 40분을 넘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한두바퀴 더 돌면 어디에선가 어김없이 ‘냥이’ 만났다는 것! 그럼 나는 외치는 것이다.    

 

냥아~!!   


이렇게 부르면 풀숲에 쏙 들어가 있던 냥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종종종 걸어가던 냥이가 뒤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며 샤샤샥 낮은 포복으로 걸어가던 냥이가 멈추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밥자리가 아닌 곳에서 만나면 우린 밥자리까지 같이 뛰어간다. 냥이와 나의 연결고리는 맛있는 간식이었겠지만 같이 뛰어가는 동안 나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다. 때로는 내가 앞서서 뛰고, 때로는 ‘냥이’가 나를 인도하듯 앞서 달려갔다.



      

밥자리에 도착하면 나는 비닐을 한장 깔고 간식 파우치를 붓는다. ‘냥이’는 맛있게 먹는다. 그 작은 입으로 챱챱챱 냠냠냠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곤 했는데. 다 먹고서는 혓바닥을 한번 낼름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침하게 정자세를 취한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와 나는 언제나 거리두기를 지키지만 같이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은 기분이 좋다못해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다.



그때 갑자기 <고부해>에서 배운 고양이 습성이 생각났다. 처음 보는 고양이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이 코 앞에 손가락이 살짝 갖다대는 거라고. 배웠으니 써 먹어야지... 암...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손가락을 코 앞에 살며시 갖다댔는데... 그랬는데... 놀란 ‘냥이’는 앞발을 휘저었을 뿐이고, 그 날카로운 발톱이 내 손가락에 박혔을 뿐이고, 시뻘건 피가 뚝뚝 흘렀을 뿐이다.    

악!!!!
냥!!!!


둘 다 놀라 펄쩍 뛰었던 것이다. 하... 이래서 글로 배운 지식은 한계가 있는 거구나... 그날 이후 꽤 오랫동안 섣불리 손가락을 갖다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 운동 시간에 ‘냥이’를 만나는 시간은 점점 즐거워졌다.  맛있는 파우치를 먹어서 기분 좋을 냥이, 그걸 바라보며 행복한 나.

이전 03화 아는 척은 하지만 선은 넘지 마라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