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혼의 미립자 Nov 19. 2021

널 좋아해, 하지만 따라오진 마

무엇보다 미안해


우리는 친해졌다. 나에게도 고양이 친구가 생긴거다. 하하하하!! 비록 함께 사는 반려묘는 아니지만 하루 한번 만나는 것도 아주 즐겁고 기대되는 시간이다. 사실 깊은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우울한 시기에 나의 유일한 기쁨은 우리 ‘냥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아 있을 때 그나마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우리 ‘냥이’였고, 날 기다리고 있을 ‘냥이’가 떠오를 때면 없던 기운이 조금이나마 생기고 마음이 움직였다.    

  

꽃보다 냥이


처음부터 우리가 매일매일 만났던 건 아니다. 첫 만남 이후 사나흘에 한번, 어쩔땐 일주일에 한번, 그러다 이틀만에 한번. 이런 날들이 지나면서 어느새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됐다. 친구가 된 거다. 물론 나의 공식적인 명분은 운동이다. 운동을 하러 동네 공원에 가면서 냥이를 만나 맛있는 파우치 한 팩을 선사하는 거다. 공원의 운동족들처럼 나도 트랙에 입성해서 팔을 앞뒤고 흔들며 걷기를 하다가 우리 냥이가 기다리고 있는 밥자리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그 귀엽고 예쁘면서도 짠한 눈망울을 생각하면 저절이 가슴이 뛴다. 드디어 그곳에 도착하면 나를 반기는 소리.

    

야옹~    


나의 발걸음 소리를 알아듣는 건지, 나만의 체취가 느껴지는 건지, 멀리서도 내 실루엣을 보고 알아차리는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참 신기하게도 먼저 알아보고 귀여운 사운드 “야옹~” 을 시전한다. 그러면 내 귀가 번쩍! 반응을 하고 그 자리를 보면 냥이는 날 쳐다보며 다시 한번 “야옹~”.     




“안녕”, “반가워”, “어서 와” 뭐 이런 느낌이다. 냥이를 보면 반가워 냉큼 풀밭으로 들어가 비닐 봉투를 하나 깔고 파우치 팩을 부어준다. 편하게 드시라고 살짝 으깨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냥이는 냠냠 뇸뇸 맛있게 먹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냥이가 다 먹으면 비닐 봉투를 뒤집어서 꽁 묶어 힙쌕에 넣고 나는 다시 운동을 하거나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운동을 한답시고 트랙을 돌다가 밥자리를 지나쳐갈 때마다 “야옹~” 하며 나를 부른다. 그리고 따라온다. 음.. 날 알아보고 따라오는 건 너무 예쁘고 고맙지만 걷고 달리는 많은 사람들 틈에 고양이가 함께 섞이면 위험할 것도 같고, 나도 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냥 운동을 멈춰버린다. 그러고 근처 벤치에 앉으면 냥이도 벤치 아래에 자리 잡고 앉는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약간 복화술처럼 냥이와 대화를 나눈다.      


냥아~ 넌 밤엔 어디서 자?
너 몇살이야? 어디서 태어났어?
난 오늘 해야될 일을 다 못했는데, 내일은 꼭 할거야.


물론 대답은 없다. 하지만 우린 대화한다. 대화가 된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즐겁게 된다. 한동안 복화술 대화가 이어지고, 어느덧 헤어져야 할 시간.




집에 가려고 일어나면 냥이가 따라온다. 하.. 이때만큼 난감하고 가슴 아픈 순간이 또 있을까. 날 종종종 따라오는 냥이만큼 나 또한 우리 집에 함께 입성하고 싶지만, 내가 사는 집은 자가가 아니라는 사실, 심지어 계약서에 ‘반려동물 금지’ 조항이 있다는 사실. 하.. 세상의 수많은 조항 중에 이것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조항이 또 있을까. 공원 트랙에서 따라올 때부터 난 냥이를 만류한다.   

  

냥아~ 나 따라오지 마.
내일 또 올게.
우리 내일 여기서 또 만나자, 응?     


하지만 계속 따라온다. 그러다 큰 길이 나올 때 쯤 난 어쩔 수 없이 손을 휘저으며 말한다.    

 

더 이상 안돼. 따라오지 마. 큰 길 위험하니까 어서 들어가.   


그저 빤히 쳐다보는 냥이. 결국 나는 말한다.     


     미안해    


그러면 그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망울로 나를 잠시 쳐다보다 공원 쪽으로 살짝 몸을 돌린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고개를 젖혀 나를 향해있다. 내가 빨리 가 버려야 할 것 같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고 좀 있다 다시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서 있다. 조금 부끄럽지만 몇번은 눈물이 난 적도 있다. 날 따라오고 싶지만 결국 거부당한 냥이가 안쓰러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미안했다. 하지만 세상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어디 한두개랴. 일부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며 내일 또 만나면 된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런 눈물의 이별을 몇번이나 반복한 후, 냥이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이건대로 또 마음이 아프다. 더이상 애쓰고 갈구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냥이가 너무 안쓰러운 것. 그래도 하루 한번 만날 수 있고, 우리 서로 그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만큼은 진심이니 그것만으로 소중하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달랜다.           

 

헤어질 땐 뒤돌아보지 말고 내일 만날 기대만 가슴에 담자.


 

이전 04화 글로 배운 고양이, 내가 만난 '냥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