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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 미립자 Sep 27. 2021

아는 척은 하지만 선은 넘지 마라옹

거리두기를 아는 길고양이

그렇게, 매일 저녁 운동한답시고 동네 공원에 가서 ‘냥이’를 만났다. 사실 어떤 기대를 가졌던 건 아니다. 기존에 안면 텄던 2마리의 길냥이가 사라진 후 더이상 어떤 고양이와도 친분을 만들지 않겠다 마음 먹은 터였기 때문.     


‘친분이 다 뭐야, 정도 주지 않을거고, 아는 척도 안할거야. 암~ 더이상 알고 지내던 길고양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꼴은 보지 않을거야! 절대 절대!’     



그런데 내 뱃살을 휘감고 있던 쌕에는 왜 고양이 파우치와 간식이 들어있던걸까? 하.. 신비하고 오묘한 미스테리.. 나의 이중성.. 그렇게 절대 친해지지 않으려는 마음과 간식을 주고픈 마음이 혼란하게 갈등하는 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냐옹~     


그렇다. 우린 이미 아는 사이가 돼 버렸다. ‘냥이’도 날 알아보고 나도 ‘냥이’를 알아보게 됐다. 그리고 서로를 보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사이가 됐다. 날 부르는데 매너없이 싸가지없이 그냥 쌩 지나칠 수는 없는 법. ‘냥이’의 부름에 트랙을 걷던 발걸음을 냉큼 풀밭으로 옮긴다.     


냥아~ 잘 있었어?
냐옹~


‘냥이’는 날 반짝 반짝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절대 가까이 오진 않는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면 뒷걸음질하고, 내가 멀어지면 살짝 다가온다. 선을 지키는 쿨한 고양이, 거리두기를 아는 스마트한 고양이다.    

  

아는 척은 하지만 선은 넘지 마라옹~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나도 길고양이를 만질 자신은 없었다. 친해지고 싶지만 약간의 무서움도 있었기 때문. 그렇게 우린 적당한 거리두기로 선을 지키며 만났다.   

  

냥아~ 밥 먹었어?
냐옹~     

먹었다는 말일까? 안 먹었으니 뭐라도 내 놓으라는 말일까? 조금 먹었지만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단 말일까? 참, 우리 동네 공원엔 캣맘이 계신다. 근처 주택가를 영역으로 삼고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이 이 공원으로 밥을 먹으러 온다. ‘냥이’도 그 중 하나다. 그러니 굳이 나의 먹을거리는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주고 싶다. 그래서 늘 건식 사료와 물을 주시는 캣맘이 계시니 난 파우치를 선택했다. 캣맘의 사료 그릇 위에 살포시 파우치를 부어준다.     


     냥아, 먹어     


냥이는 나를 한번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접시에 코를 박고 냠냠 뇸뇸 할짝할짝 맛있게 먹는다. 먹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다시 걷기 운동 고고. 프리랜서로 거의 집에서 일하는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 안에서만 지내게 된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 없이 지내다보니 특정 시간에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다. 매일 저녁 운동도 꾸준히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냥이’를 만나면서부터 운동하러 공원에 가는 일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부디 ‘냥이’도 하루 중 나를 만나는 짧은 시간이 즐겁기를.


캣맘님 길고양이들 사료와 물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살짝 숟가락만 얹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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