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니 Apr 07. 2016

어느 겨울 밤 거실에서 우리는

수저색 이야기



 지난 겨울이었다. 퇴사라는 큰 결정을 앞두고 부모님께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내던 밤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왜 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설명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두 분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는 어디서 들었는지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보면 우리딸은 흙수저에 가깝더라, 만약 네가 금수저였더라면 일을 그만 두든 안두든 그게 지금만큼 큰 결정이 아닐텐데, 직장 하나 그만 두는게 그렇게 몇 달씩 생각해야하는 일이었냐고 하시며 도리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애정을 듬뿍 갖고 몇 년동안 열심히 해 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나는 당차게 말했지만,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이 열정만 가지고 덤비는 듯해서 안쓰럽다고 했다. 엄마의 붉어진 눈 때문에, 미안하다고했던 아빠 때문에, 씩씩했던 나는 울고말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스케치북에 공주님이라던가 예쁜 구두라던가 내가 말하는 대로 예쁘게 그려주었던 그림 선생님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날에는 밖으로 나가 나란히 누워서 구름 모양으로 동물 맞추기 놀이를 하던 친구이기도 했다. 그보다 조금 더 자랐을 때엔 나와 동생을 데리고 공연장에 가서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여주었고, 우리가 집에서 숙제나 일기를 쓰는 동안 늘 좋은 음악을 틀어주었다. 엄마는 클래식을 즐겨들었고 팝송을 좋아했다. 책을 좋아했고 일에 열성적이며 여행을 동경했다. 내 삶의 가치관, 내가 좋아하는 나의 감성은 모두 엄마가 만들어 준 것이고 엄마가 내게 쏟은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없을 것이다. 


'딸바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딸 밖에 모르는 사람' 이라 불렀다. 어렸던 내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다리가 부러졌을때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빠의 파란 얼굴이, 아빠가 나를 업고 병원에 가던 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을 주었던 아빠이기 때문에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야단 맞을때면 나는 특히 더 서러웠다. 꺽꺽 숨넘어가게 울었던 건 모두 아빠에게 혼난 날이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심리학 교수님과 상담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어쩌다 가족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말하시기를 나를 보면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어른들이 어렵지 않은것도, 스스로를 잘 표현하는 것도 모두 집에서 존중받고 자랐기 때문이라면서, 오늘 저녁엔 돌아가서 고맙다고 꼭  말씀드리라는 이야기를 건네주셨다. 

그 날따라 왜인지 조금 부끄러워 교수님의 조언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몇 해가 흐른 그 날 밤엔 말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서, 나를 나답게 키워주어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나는 흙수저 아니야!"


엄마도, 아빠도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내게도 엄마아빠에게도 어려웠던 그 겨울의 어느 밤, 거실에서 우리는 울고 웃었다. 아팠고 또 행복한 시간이였다. 


작가의 이전글 사치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