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식 Sep 09. 2024

[오리지널 소설] 빛을 향해가는 캔버스

미술품 경매사 던의 이야기(27)

작가의 말 :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한 인간만의 능력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인과관계를 밝히기 힘든 인간의 직감. 저는 직감을 단련하고자 합니다.




베를레인의 2층에 위치한 던의 개인 아틀리에, 던은 점점 캔버스를 채우는 행위에 몰입했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희미한 영감조차 없이 단지 수초뒤의 점만을 생각하며 그려갔고 어느새 주위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캔버스 4개를 다 채우고 5개를 그리기 시작할 때쯤 자동화가 되어 입력된 텍스트를 몽환적인 이미지를 바꾸어주는 기계가 된 듯 머리를 비워도 붓을 든 손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시야에서 줄어들던 캔버스도 더더욱 작아져 하나의 점으로 인식되는 순간이 찾아오자 이제는 점만 찍어도 하나의 캔버스에 모든 색옷이 입혀졌다. 어느새 캔버스는 소실점 그 밑 허수의 공간으로 사라지게 되고 어둠만이 작업실을 무겁게 채워나가기 시작했지만 던은 팔은 여전히 계속해서 이상한 나라의 모터가 달린 듯 움직였다.


허무하게 텅 비어있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밀려오는 밀물처럼 채워지기 시작했다. 던이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달에게 밀려난 투명하며 새까만 소금물이 의식을 전부 덮어버린 후였다.


"마테오, 내가 말했지. 우리가 살기 위해선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 했잖아. 앞으로는 조심해. 너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원장실을 빠져나온 던이 마테오에게 말했다.


"형,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지금 생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마테오가 손을 뒤로 뻗는 동시에 발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는 깨닫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늦어.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던이 최대한 화를 참으며 다정하게 말한 후 무릎을 굽혀 마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테오는 기분이 좋은지 던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손에 조금 더 가져다 댔다.


"알겠어. 다시는 말하지 않을게. 사실 아까 원장님이 말하면 블록 장난감을 사준다 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어." 마테오가 살짝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게 되면 원 없이 사줄게. 지금은 조금만 참아줘.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던이 마테오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위치한 보육원, 처음 던이 들어왔을 때만 해도 보육원에 먼저 살고 있던 아이들은 던을 피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던에게 처음 다가온 소녀는 노아였다. 노아는 틈만 나면 던에게 질문을 했고 처음에는 회피하던 던도 정성껏 대답해 주기 시작했다. 보육원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가 부모를 잃은 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던은 그런 소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보육원에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후원자가 있었고 매주 한 번은 후원자와 별도의 접대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던이 보육원에 들어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알게 된 룰이었다. 원장에게 설명을 들은 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세상에 대한 따뜻한 감정까지 느껴졌었다. 후원자와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느 날처럼 배정받는 생활관의 접이식 메트릭스 침대에 누워 지루한 소설을 읽던 던을 원장이 호출했다. "매주 1시간 후원자랑 시간을 보낸다는 말은 전해했었지? 이따 2시간 뒤에 잡혀 있으니까 몸 깨끗이 하고 5시까지 접대실로 가. 참, 들어가기 전에 노크하는 건 잊지 말고." 던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원장실을 나왔다. 원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굳이 씻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던은 그냥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가 책을 마저 읽었다. "오늘 후원자님이랑 만나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노아가 가 있었다. 던은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결말까지 얼마 남지 않아 빨리 마저 읽고 지루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가 없더라도 끝을 보지 않으면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던에게 노아가 다시 말을 걸었다. "처음이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니까. 너무 거부감은 갖지 마." 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할 말을 다 마쳤는지 노아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고 다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접대실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똑똑, 조심스레 노크를 두드린 던은 들어오렴, 하는 고운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머리를 뒤로 묶은 여인이 손을 공손히 올려놓은 채로 앉아있었다. 접대실에는 조그마한 침대와 베이지 소파가 2개가 놓여있었고 안락하고 소박한 느낌이었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여인은 던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옆에 와 앉으라는 뜻일 것이다. 던은 쭈뼛거리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듣던 대로 참 잘생겼구나." 여인이 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일단 이거 한 잔 마시렴." 여인이 투명한 액체가 담긴 머그잔을 건넸다.


"네?" 갑작스러운 칭찬에 던은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머그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던은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후원자라는 사실만 알 뿐 그 외에 어떠한 얘기도 들은 바가 없었다.


"이름이 던이지? 부모님 일은 참 안타깝다고 생각해. 그래도 걱정하지 마렴. 내가 있잖니." 여인이 말을 마치고 슬며시 소파에서 일어나 던의 옆에 와 앉았다. 그리고는 던의 손을 꼭 잡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감촉이었지만 던은 어딘가 불쾌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도움을 받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는 무력감 때문인가. 처음 본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곧바로 던은 끔찍한 불쾌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나이가 16살이라고 했지?" 여인이 몸을 던에게 조금 더 밀착시키며 말했다.


던은 살짝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접촉 때문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쉬는 날에는 보통 어떻게 시간을 보내니? 요즘 남자아이들은 칩 게임기를 즐겨한다던데. 너도 하니?" 여인이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던은 고개를 가로지으며 소파에서 살짝 엉덩이를 뗐다.


"이따 시간이 끝나고 나갈 때 앞에 높인 쇼핑백을 들고 가렴. 네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넣어놨단다." 여인의 손이 던의 허리를 감쌌다. "가만히 있어보렴." 말과 동시에 여인의 한쪽 손이 불쑥 던의 영어로고티 안으로 들어왔다. 던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따뜻한 손이 점점 가슴을 쓸며 올라왔고 여인의 하악거리는 숨결이 점점 귀에 가까워졌다. 여인의 손가락의 주름이 고스란히 살갗을 통해 던의 뇌로 흘러 들어왔고 면도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만.. 해주세요." 던이 자신의 젖꼭지로 올라온 여인의 손을 다급히 막으며 말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던이 여인의 반응을 살피려 고개를 살짝 돌린 순간 너무 놀라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밖에 없었다. 처음에 고상하게만 보려던 여인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알을 낳지 못하는 케이지 속의 닭을 쳐다보듯 여인의 눈에는 경멸이 가득 차 있었고 여인이 천천히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경직되고 속이 너무 메스꺼운 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여인의 입모양은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이. 가. 축. 보. 다. 못. 한. 새. 끼. 가. 어. 디. 서. 감. 히. 손. 을. 막. 아


여인이 돌변해 던을 밀쳐 소파해 넘어뜨린 후 무릎으로 던의 가슴을 짓눌렀다. 던은 너무 놀라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제발 누군가가 저 문을 열고 들어와 주길 끊임없이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 "살려주세요. 원장님."


"노아. 살려줘."


거의 울부짖으며 외쳤지만 두꺼운 계란포장지가 방의 모든 벽을 감싸고 있는 듯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고 여인의 입술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입술이 닿는 꺼림칙한 감촉에 던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피하려고 했다. 그때, 여인이 던의 뺨을 때렸다.


"원장님." 던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소리쳤다.


"원장님? 소용없어. 애미도 애비도 없는 너네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다 우리가 돈을 후원하기 때문이야. 이런 기생충 같은 놈들.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니니?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를 감히 거부하려 해?" 여인의 목소리는 이미 사람의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흉측했다.


던은 계속해서 몸부림쳤지만 어느 순간 가위에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야 약효가 드는 모양이네." 여인이 유리 테이블에 올려진 머그잔을 바라보며 말했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던의 티를 벗긴 후 배의 아래쪽부터 혀로 햛기 시작했다. 어린 몸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따금씩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던을 바라보았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리는 던의 입에 혀를 밀어 넣었다. 그 뒤로 소파가 덜컹거리기 시작했고 일정한 간격의 덜컹임은 몇 분간 지속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